2016.09.24 00:57
http://media.daum.net/foreign/japan/newsview?newsid=20160921130530574
무심코 일본의 고령사회에 대한 기사를 읽던 중 결혼에 관해 언급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 우치다 교수는 결혼을 두고 “살면서 처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에 서로 협력하는 관계의 형성과정”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과거 부부의 모습은 지역사회와 혈연관계에 순응하고 맞춰가며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친구로 신뢰를 쌓은 반면, 지금 50대 이상은 이러한 관계가 무너져 개인화, 핵가족화로 '우리'보다는 '나'를 우선시하게 돼 부부의 의미가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우치다 교수의 평소 가치관이 잘 느껴지는 견해였어요. 이 결혼에 대한 정의를 읽고 나니, 조선시대 아닌 요즘도 선보고 세 번쯤 만나고 일사천리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비로소 이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줄곧 왜 그렇게까지 결혼을.. 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애초에 결혼 제도가 생겨난 이유를 생각해봐도 그렇고, 결혼에 대한 갈망이란 안전한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기본 욕구에 다름아닐 수도 있는데, 지금껏 사랑이나 행복같은 이상적인 기준으로만 결혼에 대해 개념지은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결혼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던데, 아마 신간 출간 행사(?)의 일환인 것 같더군요.
Ep. 0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결혼을 한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1324
Ep. 02 왜 결혼한 뒤에 단점이 보일까요?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2226
Ep. 01을 읽고 결혼제도 존속의 이유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Ep. 02의 조언은 조금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친절한 코칭을 장착하면 정말 상대방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배우고 개선하게 될까, 사람은 잘 안변한다는데, 바쁜 생활 속에서 서로 할 일은 쌓였고 하니 그냥 씨름하다 덮고, 어느 한 쪽이 참거나 떠맡고, 그렇게 무심해지고 덤덤해지는거 아닌가.. 결혼 생활은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가족 속에서 살아오며 받은 느낌은 종종 그랬거든요.
위에 언급한 우치다 교수는 공동체적 삶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온 분으로 기억하는데, 이 분의 저서 중 <하류지향>을 재밌게 읽은 적이 있어요. 일본 학생들이 왜 공부를 안하는지에 대한 분석이 주된 내용인데, 2000년대 중반 쯤에 처음 나왔을땐 왠지 반응도 그닥이고 절판돼서 좀 안타까웠던 기억입니다. 근데 몇 년 뒤에 재발간 되더니 이번에는 나름대로 널리 읽히는 책이 된 것 같더군요.
자타공인 보수적 관점을 가진 저자의 견해가 다 동의가 된다기 보다는, 개인 중심의 사고를 하는 제게 많은 충고가 됐다는 느낌입니다.
[... 자립은 자기소개가 아니라 남이 불러주는 호칭이다. 주변 사람들이 "저 이는 자립한 사람이다"라고 승인을 해주어야 한다. 자립은 집단적인 경험을 통하여 사후에나 획득하는 외부평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립한 사람은 적이든, 친구이든, 보호해야 할 사람이든 많은 타인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그 네트워크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조형하고, 해체하고, 재개정해서 격을 높여가는 사람이 바로 자립한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1980년대 이후부터 일본 사회는 '고립한 사람'을 '자립한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인간의 고립화는 다양한 병적 형태를 취한다. '공부로부터의 도피'도 초기 증상의 하나이다. 고립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의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이댄다. 아이가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서 초래하는 리스크는 자기가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사칙연산을 못하고, 알파벳을 모르고, 한자를 못읽는다.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 벌레가 파먹은 듯이 의미의 구멍이 숭숭 뜷린 세상이 별로 불쾌하지 않다는 듯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선선히 받아들인다.]
- <하류지향(2007)>, 우치다 타츠루, 민음사, p.130
나는 자립한다고 했던게 실은 고립으로의 나아감이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혼 얘기로 시작해서 의식의 흐름같은 끝맺음입니다.ㅎ
2016.09.24 01:01
2016.09.24 01:26
간단히 읽고 간단히 생각하면 우치다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전래적 삶이 무조건 최선의 인간적 삶이라고 할 수는 없죠.
그런데 몇번도 아니고 한번 보고도 결혼합니다.
혼자 살기 보다 둘이 살기가 더 편해서 그럴 뿐이죠.
2016.09.24 01:48
일부러 꾸는 슬픈 꿈입니다.
2016.09.24 04:12
알랭 드 보통 글 흥미롭네요.
어릴 때 제 친구가 자기 부모님이 맨날 싸워서 하루는 자기 아버지한테,
이렇게 싸우는데 왜 아직 어머니랑 살고 있는지 물었더래요.
그랬더니 자기 아버지가, 같이 사는 게 힘들지만
오랜 세월 인내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데 즐거움(?)이 있다고 그랬대요.
그 말 듣고 친구와 저는 둘 다 참 이해가 안간다고 그랬는데
위에 보통씨 글을 보니 뭔가 그 마음이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2016.09.24 10:17
2016.09.24 21:37
저는 전인적인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최선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타츠루씨는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고 했지만,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한 깊고 방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훌륭한 오타쿠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죠.
2016.09.25 12:51
책에 보면 대학생인데도 기본적인 단어들의 한자를 모른다거나, 그런데도 그게 문제라는 인식도 하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저자가 대학 교수라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봐온 듯한데, 일본은 워낙 공교육이 무너진지 오래이기도 해서 기본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보는 것 같았어요. 우치다 교수는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이 되는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 사회 상식을 갖추는걸 더욱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건너 들은 얘기로 일본은 학력에 따른 능력 차이가 무척 심하다고도 해요. 상상 이상으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무책임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직접 경험한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얘기입니다만.
자립이 실은 고립으로 나아감...이거 섬뜩하면서 찔리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