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혐오한 여자들

2016.08.17 00:38

익익익명 조회 수:3771


1.

저의 분노 포인트는 어딘가 잘못되었는지도 몰라요.


고귀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애국선열의 얼굴을 아헤가오로 만들다니. 아, 그러면 안되지.

하지만 저는 머릿속 뒤편으로 어린이부터 온갖 미성년자 아이돌 사진을 캡쳐해 놓고 "아헤가오"라고 버젓이 올려놓는 수많은 게시물들을 떠올립니다.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어린이들을 욕하다니.

어린이집에서 같이 지내는 남아들에게 여러차례 성추행 당한 여아들의 기사들을 떠올립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욕하다니.

저는 장애인들의 성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한 토론 카페에 가입했을때 "섹스해달라"는 쪽지 폭탄세례를 못이겨 며칠만에 탈퇴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어요.


노인들을 욕하다니.

...말을 말죠. 제 기억속의 노인들은 가장 끔찍한 여성 혐오자이자 성추행범들이었으니까요.


메갈은 패륜이다, 패륜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인 여자들의 영상을 모아놓고 "보라니"라고 낄낄대는 댓글들을 보았을때,

교통사고 당한 여학생이 찍힌 CCTV 영상을 보안업체 직원이 유출시켜서 신상을 털고 속옷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저는 큰 분노를 느끼지만, 또한 빠르게 식기도 합니다. 어차피 익숙한 수많은 단어들에 "보라니"하나가 더해졌을 뿐이니까요.


어차피 패륜이 난무하는 세상이니까요.  "저것은 패륜이다!"라고 외치며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순수함이 부러울 지경이에요.

꼭 에덴 동산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더러운 것을 본 사람들 같죠. 보아라, 이 쓰레기들은 메갈이라 불리는 곳에서 가져왔노라.



2.

메갈의 등장으로 인해 혐오 발언이 "더욱 많아진" 세상이 저는 싫지 않습니다.

다른 글에도 적었었지만, 어차피 잃을 게 없는 게임이니까요.


남녀가 더욱 갈라져서 싸운다고 해서 더 나빠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란 뭘까요?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립한다?

남자가 여자를 차별한다?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한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지않는다? 그래서 한국인이 멸종한다?


보세요. 잃을게 없죠?



3.

친구 중에 예쁘장하고, 벌레하나 못죽일게 분명한 아이가 있어요.

메갈에 대해서는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아버지와는 보기 드물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짝사랑 하는 남자도 있고, 좋아하는 남자연예인도 있는 보통의 20대입니다.

어린시절 성폭행 경험이 있고, 그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모쏠이구요.

그런데 얼마전 티셔츠 사태가 터진뒤 그 친구가 다니던 커뮤니티에서도 메갈 이야기가 나온 모양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불쑥 이런말을 하더군요.

자기는 이제까지 자신만 남자들을 혐오한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남자들을 혐오하는 여자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요.


메갈 사태가 터지고, 이제까지 제가 들었던 말 중에서 어쩌면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6.9도 모르고 한남충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마냥 착하기만 해보이는 친구의 입에서 "남자를 혐오한다"는 말이 나왔으니까요.


입 밖으로 내어서 말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전 어찌보면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행운이 아니었나 싶어요. 비꼬는게 아니라요.

바로 당신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친절하고 웃고 있지만, 

단지 "이제까지는 그럴수 없어서" "그렇게 말할 언어가 없어서" 말하지 못했을 뿐, 당신을 엄청나게 경멸하고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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