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고백합니다.


저도 한때는 국뽕분자였습니다.



한국의 언론과 공기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국뽕을 날마다 마음껏 들이마시고,


한국은 수메르나 다른 4대 문명권보다 먼저, 8천년인지 9천년 전에


원나라 만큼의 대영토를 정복했던 대제국이었다는 황당고기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을 나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증거가 있어야 믿는다고? 애국심이, 민족자긍심이 모자라군! 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남한은 무조건 북한보다 착하고 도덕적이며 뛰어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그 믿음은 차차 깨졌습니다.


한국보다 더 나은 나라, 민족들은 많이 있었고,


환국의 바이칼호 문명인지 뭐시긴지는 유물 한 점도 나오지 않고,


유럽 지역을 정복했다는 고구려 장군 고선지는 읭? 당나라 장군이네?



저도 국가주의자, 민족주의자였던 적이 있었고,


현재의 한국이나 한민족의 상황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너무 한심했기에


그렇게 증명할 수 없는 과거의 영광을 떠드는 게 마음에 들고 멋져 보였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런 것들을 믿고 싶어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제가 국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많은 부분이


한겨레나 경향 등에서 소개한 유럽 출신 사람들의 논리였습니다.


특히 박노자의 글들은 정말 깨달음과 충격의 연속.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와 어떻게 이런 시각을 가졌을까? 하다가,


점점 더, 그의 말이 국뽕스러운 말들보다 훨씬 더 옳고 맞고 논리적 합리적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벗어나는 첫걸음은, 뜻밖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한국인, 한민족으로 태어난 것은,


무슨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고, 그런거 다 구라입니다.


순전히 우연이죠, 순전히 우연으로, 나는 여기에 태어난 겁니다.


아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나는 내 부모의 성욕이나 번식욕에 의해 그들의 생식세포들에서


생겨난 겁니다. 혼이 따로 있고, 그게 수정란이 생긴 뒤에 무작위로 신이 쏘아 보내는 것이라면


나는 순전히 랜덤으로 내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거고, 혼이 따로 없다 해도 제가 된 바로 그 정자,


바로 그 난자를 어느 독일인이 냉동 수정란으로 사 가서 자기 뱃속에서 길렀다면 저는 동양인 유전자를 가진


독일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경우, 나는 독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독일을 사랑했겠지요, 음 과연 그랬을까요?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를 겪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바마 대통령은 집안에서는 백인인데 집 밖에 나가면 흑인이 되는 상황을 10대때가지 힘들어 했다고 하더군요.

(백인인 엄마와, 엄마의 부모, 그러니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랑 살았더군요, 집 안에서 자기만 흑인)



나의 국적과 나의 종족은,


내가 무슨 사명을 띄어 천부적으로 나한테 주어진 게 아닙니다.


순전히 우연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종족은 바뀔 수 없으나, 국적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국적에 무슨 운명의 데스티니 같은 건 없습니다.



오늘도 한국 사회에 넘쳐흐르는 듯한 국뽕스러움을 여기저기서 보니,


이 글을 두드리고 싶어 졌네요.


모두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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