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7 02:12
전 월남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월남전을 다룬 영화들 때문에 관심이 갔고,
여러가지 미국의 최신 무기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졌다는 것도 관심거리였고,
한국군이 갔던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기 때문에도 관심이 갔고,
처음엔 정의로운 군대로 가서 좋은 일 하고 온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뭐랄까 참 더럽고 비열하고 치사졸렬한 의도로 가서
젊은, 그것도 힘없고 가난한 집안 아들들의 피를 팔아서는
박정희 정부가 참 치사졸렬하게 착취해 먹었고,
한국의 재벌이라는 작자들도 그걸 이용해서 정말 치사졸렬들 하게
게걸스럽게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했고,
뭐 이러저러한 것들.
그리고 한국군이, 전설처럼 전해들어왔던, 그 '태평양 전쟁때의 일본군보다 더 악랄한'
한국군이었다는 것도 충격이더군요.
이 글에서는 걍, 도대체 박정희가, 좀 잘 살아 보겠다고, 솔직히 남베트남의 수호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이, 돈 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베트남전에 갔던 한국 병사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좀 서 보겠습니다.
제가 중고딩시절 학교 선생님으로 부터 들었던 월남전 병사 보수 이야기가 있었어요.
당시 미군 월급은 200달러였는데, 한국군 월급은 처음에 50달러밖에 안 줬다.
(한국군 월급을 미국이 줬습니다! 이거 아셨는지? ㅋㅎㅎ)
그래서, 박정희가 미국 대통령하고 담판을 해서, 미군하고 같은 월급을 받게 해 줬다.
(이건 사실이더군요, 정말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담판을 해서 그렇게 했답니다.
웃긴 것은, 당시 한국 안에서 군복무를 하던 병사의 월급은 5달러? 정도였다고 합니다)
자 그런데,
박정희가 바라는 건 그 병사들이 받는 '딸라'를, 현지에서 쓰지 않고 모조리 한국으로
가져 오는 거였습니다.
이건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간 병사들의 이익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왜 거길 갔나요? 돈 벌러 갔어요. 한달에 100달러 받아서,
한 15달러 밖에 안 하던 소니 워크맨 사오고, 한 100달러 200달러 하던 소니 텔레비전
GE, 웨스팅하우스 냉장고 사 오면 한국에서 그걸 몇 배로 팔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 사와서 한국에서 팔아서 그걸로 대학을 가건 가게를 내건 하려고 했던 겁니다.
자 그런데,
박정희가 처음에는 50달러 받던 거 뺏지 않았는데, 강제로 뺏지 않으니까 병사들이
그 월급을 한국으로 송금을 별로 안 하는 겁니다. 안 하고 물건을 사서 돌아왔죠.
월남 갔다 돌아오는 병사들이 모두 다 일제 티비를 사 온다고 했답니다.
이건 박정희나, 당시 컬러 티비를 만들어 미국보다 몇 배나 비싼 값에 국내에 팔던
금성 삼성 대한전선 등 한국 회사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비싸게 팔고 미국 유럽에선 덤핑을 치던게 그들의 기본 경영 전략이었는데(이따위 것이 경영전략?),
국산 TV보다 훨신 좋은 미제, 일제 TV가 1년에 수천대나 들어오고 그것의 값까지
지들이 파는 것보다 싸다는 게 널리 알려지면 아주 곤란한 일이었겠죠?
박정희는 그래서, 파병 시작하고 시간이 좀 지나자, 몇가지 조치(...)를 합니다.
우선 병사가 받는 돈의 80%인가를, 강제로 미리 저축시키고 고작 20% 정도만 병사들이
현금으로 가져갈 수 있게 했습니다.
두 번재로는, 월남 갔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TV나 냉장고, 에어컨 등을 가지고 돌아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불러 일으킵니다.
월남전에 지원하는 병사들의 수가 확 줄어들었고, 현지 병사들의 사기가 놀라울 정도로
떨어져 버립니다. 그들이 열심히 싸울 이유가 대체 뭐가 있었겠습니까? 월남 사람들을
도와주고 베트콩을 쳐부수기 위해 월남전에 지원한 한국 병사가 열에 하나나 있었겠어요?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월급을 현지에서 찾으려는 갖가지 시도도 그칠 줄을 몰랐고,
어떻게건 짐 안에다 텔레비전이나 워크맨 등을 넣어오려는 시도도 그칠 줄을 몰랐으며,
어쩌다 걸려서 빼앗기면 엄청나게 항의를 하고 소동도 나는 일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박정희는, 병사 1명당 TV 1대만 갖고 들어오게(이게 TV 1대만인지, TV 냉장고 에어컨 등을
다 합쳐서 가전기기 1개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규정을 완화합니다.
그 전에는 몇대씩도 가지고 돌아왔던 거겠죠?
실제로 한국에서 일본제 전기제품에 대한 선호가 막대하게 생긴 것도 월남전 이후라고 합니다.
45년부터 65년까지는 서울의 상류층들이나 밀수된 일본제 물건들을 썼지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까지
다 쏘니 나쇼날 히타치를 알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목숨 걸고 번 돈인데 나라에 대부분을 강제로 빼앗기니, 병사들은 현지에서
벼라별 비리에 가담하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어떻게든 달러를, 또는 한국에서 인기있는 외제 물건을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한국군은 전장에서 소모한 무기나 탄약 수를 거의 언제나 부풀려 게산해서 미군한테 더 많은
보급품을 받아내어 그걸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몇번이나 그런 한국군의 군수 부정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으나, 미국으로서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군대를 보내고 정말 죽기살기로
악마, 마귀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베트콩과 싸우고, 미군은 감히 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 다 죽이기
등의 일을 '작전'이라고 태연하게 하던 한국군과 척을 질 수는 없었기에 결국 어쩌지 못하고
계속해서 '속아 주었다'고 합니다.
너무 안좋은 이야기라 금방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정말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한겨레에서 나서서 했던 월남전 한국군 만행에 대한
기록 및 사과 활동이나(기사로 여러 편이 나왔습니다, 한국군 파월용사회 등이 가서 깡패짓도 했음)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이런 것들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황색인 이란 소설에서 이런 내용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얀 전쟁 에서도 아마 좀 묘사되었을 겁니다)
제자는 스승을 능가한다고,
한국군이 월남전에서 한 행동들은,
20여년 전 일본군이 태평양에서 한 행동들과 그 맥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리고 그 일본군으로부터 이른바 '근대적 군대'를 배운 자들이 윗대가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당시 한국군의 DNA가 어디서 나온 것이고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월남전이 잘 보여 주었던 겁니다.
2014.05.17 07:34
2014.05.17 10:57
워크맨이 아니면 프레스맨이었을 겁니다. 워크맨 만들기 전에도 소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던
소형 카세트 레코더, 플레이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이 1960년대부터 컬러 방송을 했고
남동 해안 지방에서는 역시 1960년대부터 컬러 방송을 하던 일본 방송을
많이 보았습니다. 당시 한국의 티비 방송 프로그램들의 질은 형편이 없었고
수많은 한국인들은 일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2014.05.17 08:43
월남전과는 상관없이... 개인이 외국에서 사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가전제품을 제한하는 건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거나 지금도 그러는 거 아니였나요?
2014.05.17 10:59
여행 갔다 오는 것 하고는 다르죠.
그리고 박정희때는 국민들은 여행, 쇼핑 목적으로 외국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업인들이나 군인들은 외국에 갔다 오면서 일제 티비, 일제 카메라, 일제 카세트 라디오 밥솥 등을
들여와서는 자기들이 쓰고 남대문 시장에 팔고 가까운 사람들한테 주고 하며 뻐기던 시절이죠.
2014.05.17 08:54
제목 보면 월급이라도 강취한 줄 알았는데 월급 올려주고 강제로 저축시킨 거네요. 60년대 한국 경제상황을 보면 그냥 농업국가나 다름 없던 상태였으니 지금 기준으로 경제정책을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겠죠. 그리고 한국군이 일본군보다 더 악랄했다 이런 수사적 표현 대신에 그 구체적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어쨋든 현재 한국-베트남-미국의 관계는 중국의 대국굴기로 본의 아니게 우호적인 상태고 역대 대통령들이 우회적인 사과나 묘소 참배를 해왔으니 이부분에서 한일관계만큼 꼬인 건 아니라고 봐요. 그리고 현 베트남 입장에서는 침략이겠지만, 한 편으로는 남베트남의 동맹군이었죠. 전후 해외로 망명해야만 했던 베트남인들에게 한국군은 분명 우군이었구요. 그리고 한국전쟁 때 도움을 받은 한국으로선 당시 경제상황이 좋든 나쁘든 간에 월남전 참전에 대한 국제사회(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2014.05.17 10:53
이해가 안 가세요? 사실상 갈취한 겁니다.
현지에서 물건을 사서 가져오면 몇 배의 차익이 생기는 거고,
달러 그대로 가져와도 박정희때는 공식 환율이 5백원이면 암달러 환율은 7백원 8백원 1000원이었습니다.
지금같았던 세상이 아닙니다. 만성적인 무역 적자가 나던 시절이고, '대한중석'이라고 안정적으로 자원을
수출하는 회사가 한국에 단 하나 있었는데, 그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을 '중석불'이라 했습니다. 그 중석불을
대출받기 위해서 엄청난 로비와 뇌물이 오가던 시절입니다.
이렇던 시절에, 피묻혀 번 돈을 강제로 예금하게 하고는, 오로지 원화로만, 오로지 공식 환율로만
찾아갈 수 있게 한 겁니다, 그것도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
월남에 가는 사람이 이를테면 기대하고 간 기대 수익이 1억원이라면, 한 1000만원~2000만원만
벌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렇기에 그렇게 폭압적 정권이었음에도 엄청난 항의를 받았던 거고요.
베트남전에 얽힌 박정희 정권의 부도덕에 대해서는 한국 안에서도 이미 꽤나
많이 연구되어 있고, 다큐멘터리도 몇 편 만들어져 있으니 한번 찾아보세요.
박정희 월남전 요 두 키워드 만으로 유투브를 찾아도 많이 나옵니다.
제게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국이 요구하기 전에 박정희가 먼저 미국에 가서는
'한국전 경험이 있는 백전 노장들을 베트남에 보내주겠다, 그러니 나를 한국의 실권자로
인정하고 경제 원조와 무역상 특혜를 달라'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재건국회최고회의 인가? 뭐 그 의장일 때 썬그라스 끼고 미국 가서 케네디한테 그 제의를 합니다.
미국의 강권에 강권에 못이겨 파병을 결정한 것처럼 한국 대중한테 알려져 있는데, 완전히 거짓이죠.
2014.05.17 11:14
정부에서 암달러 환율까지 고려해줘야 했다는 건가요. 뭐 이세상에 좋은 전쟁이 어디에 있겠어요.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의 행위를 모두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일제의 식민지침략과 남베트남의 동맹군으로서 월남전에 참전한 것을 비교하는 건 무리가 많죠. 경제적 측면에 집중하시는 거 같은데 본질적으로 우린 미국의 돈을 받아냈으면 받아냈지 베트남의 자원을 수탈한 건 아니었죠.
2014.05.17 12:17
세상에 좋은 전쟁이 어디에 있겠는가? 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인류사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시대를 끝내고 GATT도 생기고
선진국들이 중후진국한테 시장을 열어주게 만들었으니
그나마 좋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사실, 2009 로스트 메모리스에서 묘사되었듯이
일본이 전쟁에 지지 않고 그냥 조선 대만 만주를 가진 일본제국으로 존재했다 해도
아마 한국인들은 별 불만 없이 살았을거 같네요, 요새 한국 사람들 투표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꼬라지들 보면요.
그리고 만약 일제시대에 세월호 사건같은 게 났다면 총독이 나서서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도 아마 백은 구해 냈을 겁니다, ㅋㅎㅎ
2014.05.17 09:06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하셨는데, 전투병은 아니었고 베트남 현지에서 물품을 보내는 수량을 정하는 행정병? 같은 거였다고 하시더군요. 비리를 저질러서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전혀 하지 않으셨죠.
군대 얘기도, 그때 얘기도 거의 하질 않으셔서 월남전에 대해 모르지만요.
2014.05.17 10:56
월남전에 대해 한번 마음 먹고 알아 봐 보세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정말 당시 한국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저질스러운 나라, 사회였으며
박정희가 얼마나 나쁜 놈이고 악랄한 놈인지 알게 되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탐욕과 야만 덩어리였습니다.
박정희 정부 윗대가리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국민들도 그랬습니다.
재벌도 중소기업 사장들도 일반 국민들도 그저 월남전 붐에 편승해
기회를 잡으려고, 돈을 벌려고 눈들이 벌겠습니다.
우리가 비난 비판하는 일본제국 시기의 일본하고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2014.05.17 10:01
월남전은 다녀온 분들중 누군가에겐 영광이었지만 또 누군가에겐 평생의 고통입니다.
전두환 같은 놈에겐 장미빛 미래의 발판이 되었고 참전 32만명중 16만명에겐 고엽제 환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5천 여명은 전사를 했고 11000명 이상은 부상자로 돌아왔던 전쟁입니다.
제 국민의 피로 벌어들인 돈을 돌려서 결국 자기의 정치자금으로 썼으며, 국가의 잘못으로 죽거나 부상당한 참전용사들에게 정당한 배상을 하라는 사법부의 판결에 온갖 권력을 행사해서 제1차 사법파동을 일으켜 대법관 9명의 옷을 벗기고 망신을 주고서 사법부를 장악해 헌법을 파괴하고 유신을 한 후 죽을 때 까지 독재를 하는데 일조한 전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만약 이게 정당한 참전이 되려면 그 돈을 올바르게 쓰고 사심이 없었으며 당사자들에게 정당한 배상과 보상을 했어야 정의로운 전쟁으로 기억에 남기라도 하겠죠.
2014.05.17 13:09
2014.05.17 13:44
맞습니다, 월남 가서 하던 그 짓거리를 광주에서 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