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2 16:50
2014.02.02 16:53
2014.02.02 17:08
하하 닌스트롬님다운 글입니다.
저기서 레빈탈 박사가 9회에 걸쳐 아동을 인터뷰했는데 "질을 만졌느냐"는 질문에 아동이 "그렇다"와 "아니다"를 일관되지 않게 진술한 게 중대한 문제일 수 있다고 했죠. 그 다음 박사가 한 말에 주목합시다, "우린 두 개의 가설을 갖고 있다. disturbed 아동이 마음속에서 만들어 내서 고정시킨 이미지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주입한 기억일 수 있다." 이걸 보니 박사는 아동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은 아예 가정하지 않고 있군요. 박사는 "미아 패로가 아동에게 특정 진술을 강요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미아 패로가 순이에게 앨런을 빼앗겨서 질투로 아동에게 부정적인 일화를 주입했을 가능성을 질문하자 가능성이 높은 얘기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디 앨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미아 패로 가정의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다며, 앨런에게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는군요.
이 기사를 새삼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도하신 바와 다른 방향으로 많은 걸 알게 되네요.
그리고 한겨레 21에서 작년에 다뤘던 시리즈에서, 보령실종사건의 허위자백은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 때문이었고, 상급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성폭행 혐의의 경우 피해 아동이 얼굴을 모르는 범인을 용의자 여러 명의 사진 중 골라내야 했던 경우였지요(법정증언에서 허위기억의 문제는 이 경우 많이 제기됩니다). 앨런-패로 사건처럼 면식범에 대해, 강요의 증거가 없으며, 사건 초기부터 인터뷰와 조사가 계속된 경우는 이와 다릅니다. 그리고 레빈탈 박사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법정은 기소는 하지 않는 대신 딜런 패로에 대한 우디 앨런의 접견권을 박탈했습니다.
2014.02.02 17:13
2014.02.02 17:14
2014.02.02 18:32
자료 감사합니다.
1. 레빈탈 박사는 미아 패로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계속하면서도 "우리에게 미아 패로가 딜런 패로를 coach 하거나 direct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님이 제공한 링크의 기사에서 피해 의심 아동의 엄마와 경찰관이 어떻게 잘못된 진술을 이끌어냈는지에 대해 기술된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앨런-패로 소송은 일차적으로 딜런 패로의 양육권과 접견권에 대한 것이었고, 님이 제공한 링크의 기사에서 법원이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과 달리 코네티컷 법원은 레빈탈 박사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우디 앨런의 딜런 패로 양육권과 접견권을 박탈합니다.
2. 님이 따로 제공하신 부분은 미아 패로가 딜런 패로의 기억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겠죠.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미아 패로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계속한 레빈탈 박사는 정작 조작의 증거는 찾아내지 못합니다. 같은 논리라면, 님이 따로 제공하신 부분은 딜런 패로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설을 이미 세운 레빈탈 박사가 인터뷰에서 "면담자의 기대나 선입견"을 반영했을 가능성 또한 지지할 수 있겠습니다.
3. 레빈탈 박사가 딜런 패로의 증언의 비일관성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질을 만졌는지"에 대해 일관된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진술이 "rehearsed quality"를 가졌다는 겁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이유가 서로 상반된다는 데 주목합니다. 인위적인 암송이 의심되는 진술인데, 왜 중요한 "질을 만졌는지" 여부는 일관되지 않았을까요? 진술이 너무 매끄럽기 때문에 가짜같은데, 진술이 덜컹거리기 때문에도 가짜같은 건가요?
님이 따로 제공하신 그 부분에서 "‘예/아니요’ 답을 요구하는 선택형 질문이나 면담자의 기대나 선입견을 암시하는 유도질문보다 아동의 자발적인 기억 회상을 촉진하는 개방형 질문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딜런 패로는 "질을 만졌는지"에 대해 어떤 질문을 받았을까요? "아빠가 네 질을 만졌니"라는 선택형 질문이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개방형 질문에서 "아빠가 내 질을 만졌어요"를 포함시켰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여부로 9회 인터뷰의 일관성을 측정했을까요?
4. 허위기억(false memory)에 대해서는 Elizabeth Loftus가 70년대서부터 많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바로 90년대 초반에 허위기억의 주입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으며,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첨예한 대립이 존재합니다. 로프터스의 연구는 딜런 패로와 같은 경우보다는 오래된 과거의 억압된 기억(repressed memory)을 되살려낸다고 하는 일부 상담기관이나 책의 폐단을 지적하는 데에서 출발했는데, 법정에서 재생된 기억을 받아들이는 범위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그 기억을 정교하게 검증하도록 하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재생된 기억(recovered memory)은 딜런 패로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르지만, 아동 성폭력의 증언에 대한 패로의 기고만으로 우디 앨런의 혐의를 확정해선 안된다는 님의 주장(주장 맞지요? 본인 의견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자료를 한두개 던져놓으셔서)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딜런 패로의 최근 기고에 대해서 허위기억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딜런 패로는 본인의 글에서 "나는 (의사가) 내 어머니가 성폭력의 기억을 내 머리에 주입한 거짓말쟁이라고 부를 줄 몰랐고, 내가 내 이야기를 여러 명의 의사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하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법정 싸움의 일부로써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조사당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아동 성폭력에서 피해아동의 진술이 허위기억에 기반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반면, 아동 성폭력에서 피해아동의 진술이 아동에 의해 진술되었기 때문에 아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에 의해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고 기각당할 가능성 역시 존재합니다.
앨런-패로 사건에서는 누구도 형사적으로 기소되지 않았고, 따라서 혐의에 대해 무죄와 유죄가 가려진 바도 없습니다 (간접적인 양육권 분쟁 결과를 제외하고). 그러므로 누구도 확증을 할 순 없이, 드러난 사실의 다발만으로 유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딜런 패로가 본인의 기억과 입장을 진술한다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습니다. 그간 딜런 패로의 진술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아예 잊혀져 왔다가, 새로운 요소가 추가됨으로써 우디 앨런에 대한 판단에 변동이 일어났고, 그래서 저같은 오랜 팬도 판단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죠.
2014.02.02 19:43
범죄에 있어서는 항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든 아동성추행이든 이것은 하나의 원칙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기억은 많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던 어렸을 때 진술이 사건을 평가하는 데 정확하지 않을까요.
2014.02.02 20:02
위에 말했듯 앨런-패로 사건에는 형사기소가 없었으므로 유무죄 여부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여기서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법적 결과물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딜런 패로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것이란 레빈탈 박사팀의 증언과, 코네티컷 법원이 민사 이혼소송에서 우디 앨런의 양육권이 아닌(입양자이자 주양육자인 미아 패로가 양육권을 가져갈 근거가 충분했다고 보여지므로) 접견권을 박탈했다는 점입니다. 앨런과 미아 패로가 사실혼 관계였기 때문에 양녀가 패로의 성을 따르긴 했지만, 미아 패로와 함께 양녀를 입양했고 이혼 소송에서 양녀를 데려오려던 앨런이 접견을 금지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순 없는 사건이라고 하지만, 제가 닌스트롬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듯, 현재로선 우디 앨런을 아동 성추행범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요, 코네티컷 법원의 이혼 판결을 알고 있는 저는, 마찬가지로 닌스트롬님의 accusation에 대해 확신할 수 없습니다. 즉, 딜런 패로가 거짓말을 했다고 추정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닌스트롬님이 제공해주신 레빈탈 박사의 증언(전체 인터뷰는 우디 앨런과 미아 패로 양측의 검토를 거쳐 상당 부분 삭제된 상태로 공개되었습니다)을 읽어보니, 그간 알려져왔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의료진이 중립적이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리고 닌스트롬님이 딜런 패로의 증언이 허위기억의 결과물일 거라고 주장하기 위해 제공하신 한겨레21의 시리즈는 딜런 패로의 사례에 직접 적용될 이유도 없고 직접 적용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아동 성폭력 혐의에서 아동의 증언이 허위였다고 해서, 그게 다른 아동 성폭력 혐의에서 아동의 증언이 허위였다고 추론할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기억은 많이 변하게 마련입니다"라는 말씀하셨는데, 그럴 법한 일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성 또한 성장한 후 사건에 대해 보다 복합적인 심경을 밝힌 바 있지요. 그런데, 딜런 패로의 7세 당시 진술과 현재 진술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딜런 패로는 당시에도 아동성추행에 대해 진술했고, 딜런 패로에 따르면 그녀는 성장기 내내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고 현재에도 당시 진술을 번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간이 많이 흐르면 기억은 변하게 마련이라기보다는, 로프터스의 허위 기억 연구에서 한 번 주입된 재생된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된다는 연구결과를 참고하시면 이에 대한 반박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던" 딜런 패로의 어린 시절 진술은 로프터스가 말하는 재생된 기억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만.)
2014.02.02 20:15
2014.02.02 20:22
거기서 닌스트롬님과 제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본인의 입장을 먼저 써주셨으면 좋았을 걸 그랬네요.
그렇지 않고, 딜런 패로가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한 레빈탈 박사의 인터뷰와, 앨런-패로 사건과 직접 연관을 찾기 어려운 한겨레 21 시리즈의 사례를 던져 놓으시면 "한 쪽이 확실히 결백하고 잘못했다는 판단"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앨런-패로 사건을 중립적으로 보고 싶으시다면, 레빈탈 박사의 인터뷰와 이에 대응하여 앨런의 접견권이 박탈당한 근거를 보여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겨레 21 기사 같은 경우는 관련성이 희박하다고 생각됩니다.
2014.02.02 18:13
19세애 입양딸이랑 성관계 맺고 결혼하는거 보면 충분히 성추행하고도 남을 위인이죠.
2014.02.02 19:39
다른 사건에서 살인을 저질렀건 성폭행을 저질렀건 독립적인 사건이라면 심증만으로 의심해서 확정할 수 없습니다.
2014.02.02 20:12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기소가 있을 때 해당하는 얘기 아니던가요? 개개인의 판단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전가의 보도가 될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간 지켜본 바, 함부로 판단 내리지 않아야 한다는 조심성에는 동의하나, 그 조심성이 닌스트롬님의 경우 일관되게 한쪽 방향을 향해 있다고 생각됩니다. 쉽게 성폭력범이라 불러서는 안되는 것처럼 쉽게 아동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고 운을 떼어도 안되겠지요 (이 표현은, 본인의 의견은 제시하지 않고 자료를 던져놓으시는 닌스트롬님 식의 토론에서 제가 닌스트롬님의 주장을 애써 추출한 결과임을 밝혀둡니다).
2014.02.02 20:23
같은 논리로 따지면 쉽게 종북주의자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새누리당은 맨날 종북 타령만 한다고 운을 떼어서는 안 되겠는데요?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정에서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뒷담화에서 이상한 얘기가 많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어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일단은 헛소문일 가능성을 생각하죠.
2014.02.02 20:30
아뇨. 여기서 약간 삐끗하시는데, 새누리당이 종북이란 언급을 종종 하는 것은 사실인 반면, 딜런 패로의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우회적으로 주장하신 건 님의 가치판단이 많이 들어가 있지요.
위에서 한쪽이 완벽하게 결백하거나 잘못했다고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인정하셨지요? 유/무죄를 나누는 것이 법정의 영역이라면, 개인의 판단은 지금까지 나와 있는 사실과 진술을 합산해서 이루어지고(타인이 "확실한 증거" 없이 "뒷담화"한다고 그렇게 쉽게 폄하하시면 안되죠. 예를 들어 님은 제가 계속 언급하는 코네티컷 법원의 판결이나, 레빈탈 박사팀의 결론에 대한 의문에는 입을 다물고 계십니다. 님의 판단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한다면, 제 판단은 사실과 그에 대한 추론으로 이뤄집니다), 현재 저의 의견은 우디 앨런이나 딜런 패로 모두에 대해 유죄도, 무죄도 아닌 영역에 있습니다. 제 위 댓글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개인적인 생활에 적용하시는 것은 닌스트롬님의 원칙으로서 존중될 수 있겠으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타인의 판단에 강제하실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2014.02.02 19:17
이게 한겨레 기사에 언급된 사례와 동일선상에서 판단될 사안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시 익명님의 말씀 처럼 이 사안은 '면식범에 대해, 강요의 증거가 없으며, 사건 초기부터 인터뷰와 조사가 계속된 경우'에 속하고, 한겨레에 언급된 사안은 이 사안과는 제반 상황의 차이가 크니까요. 그다지 논리적인 연결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특히나 이제 딜런 패로가 막 입을 뗀 상황에서 그녀가, 잠시익명님이 이야기한 '증언이 너무 매끈해도 문제, 덜컹거려도 문제'식의 편견에 갇혀버리지는 않을까 전 오히려 그게 더 걱정이네요. 성폭력 피해자(생존자)들에 대한 지레짐작과 편견이 만들어낸 이상한 덫 말입니다.
저는 잠시익명님의 의견이 더 수긍이 갑니다.
잠시익명님의 좋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2014.02.03 02:24
우디 앨런의 영화는 좋아해요. 링크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