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 보고 왔습니다

2021.06.21 02:36

Sonny 조회 수: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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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기에 얼렁 보고 왔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를 그냥저냥 아시는 저같은 분들에게는 꽤나 재미있을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기후위기를 외치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고 왜 저렇게까지 열을 올리는지 궁금하시다면 이 영화가 아주 좋은 교보재가 될 겁니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딱히 어렵거나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제가 이것보다 훨씬 더 재미없는 다큐멘터리(왕빙 감독의... -ㅠ-)들을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영화는 그레타 툰베리가 어떻게 유명해졌는지부터 해서, 그가 유럽 전역에 끼친 영향과 그 속에서도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그레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짧은 기간 동안의 성장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두시간에 가까운 영화가 그레타 툰베리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내내 떠드는 내용이라면 지겨워서 버틸 수가 없죠. 이 영화는 그레타 툰베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레타 툰베리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관객들을 한껏 고양시키는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데뷔(?) 장면은 꽤나 초반에 나오고 이 후부터는 반복되는 세계정상들과의 만남과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속에서 그레타 본인이 회의하는 모습들을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그레타에 관심을 갖지만 그레타가 제기하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번드르르한 대답들만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중반에 가면 그레타 툰베리를 모셔놓고 어떤 정치인이 하나마나한 대답을 하는 컨퍼런스에서 그레타는 그 대답이 번역되어 나오던 헤드셋을 아예 벗어버립니다. 티백 따위를 친환경적으로 바꿔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자기가 멸종을 운운하지도 않았을거라면서요. 그레타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세계 정상들이 각자 국가에 스스로 압력을 발휘해서 모든 생산과 소비를 줄이게끔 하는 방식밖에 없습니다.


그레타 툰베리의 화법은 공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선명합니다. 그는 절대로 기후 위기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거나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후 위기를 기성세대의 문제로 분명히 못박아놓습니다. 지구가 무한한 것처럼, 그리고 아무리 파괴하고 착취해도 충분히 자생할 것처럼 자원을 소모하고 탄소를 배출해온 기성세대와 각 나라 및 기업들의 책임자들이 가장 큰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후위기란 문제를 보편적인 화법으로 누구도 기분상하지 않게 하면서 적당히 구슬리는 방식의 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지구를 망쳐놓았고 우리 세대가 그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화를 냅니다. 오죽하면 그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버지가 이 단어는 좀 심하지 않냐고 연설문을 작성하는 옆에서 걱정을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레타는 단 한번도 그 책임 소지를 모두의 것으로 놓는 주장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그의 주장은 듣는 사람의 기분과 상관없이 사실입니다. 


이 영화가 그레타 툰베리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그의 자연스러운 일상도 이 영화를 통해 보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사진에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는 자주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투사로서만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투사로도 살고 있는 인간이니까요. 그레타 툰베리는 의외로 춤을 추는 걸 좋아합니다! 그가 춤을 출 때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10대 여자애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sns를 읽으면서 이른바 "쪼개는" 걸 듣고 있으면 괜히 웃기기도 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활동가로서의 그레타와 그냥 청소년으로서의 그레타가 뒤섞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뉴욕 기후정상회의에 가기 위해서 영국에서부터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기로 결심합니다.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탄소배출 때문에 그레타는 기어이 배를 타고 2주간 걸려서 뉴욕까지 가기로 한 겁니다. 당연히 쉬울리가 없죠. 그 어떤 악플이나 비난에도 덤덤하게 대처하던 그는 이 때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가끔은 파도가 몰아치고 변변한 화장실도 없는 그 작은 배로 2주간이나 멀미에 시달리며 바다를 건너는 건 어지간한 성인에게도 무척 고된 일입니다. 중간중간에 음성으로 일기를 기록하던 그레타는 그런 말을 합니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책임이다... 이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 나는 16살의 아이인데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우리가 그를 대단하다고 우러러보는 동시에 그는 평범할 권리를 잃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정말 너무 무거운 책임과 영웅의 자격을 그의 허락없이 맡겨버린 것인지도요.


그리고 도착한 뉴욕에서, 그레타 툰베리의 가장 유명한 연설 "how dare you"가 나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vF8yG7G3mU


이 영상을 영화의 맥락에서 보면 그가 왜 이렇게 분노하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레타의 격한 반응은 그를 그렇게 칭송하고 여기저기 초청을 하면서도 탄소배출량을 결국 절감하지 않고 하던대로 하는 위선적인 어른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요트를 타고 오며 느꼈을 2주일간의 어지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그보다 더 긴시간을 자신 혼자서만 호들갑 떠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어른들의 턱없는 낙관... 그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의 이 비난조의 연설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 어떤 사람들은 수치를 느끼고 그레타의 분노에 뒤흔들리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영화는 기후위기 행진을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그레타를 보여주며 끝납니다. pain in the ass가 되어서 기어이 이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얻어내고 말겠다고 그레타는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평이한 영화입니다. 예측을 빗나가는 일 없이 그레타라는 사람의 사상적 행보와 개인적인 삶을 그대로 담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대중적이고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저처럼 중간중간에 울컥할 것 같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를 찌푸린 얼굴의 여자아이로만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영화는 기후위기 활동가로서의 그레타 툰베리를 다루는 동시에 청소년, 여자, 채식주의자, 장애인으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려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회운동이든 반드시 다면적인 동시에 한 개인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어렴풋이 가늠하게 되기도 합니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영화가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다가간 것 같아 그 서사의 가능성이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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