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누가 그토록 여러 번 그 도시를 일으켜 세웠던가? 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케사르같은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
흔히도 노래되는 비쟌틴에는
비쟌틴 주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 짖었다.
(중략)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
승리의 향연을 위해 누가 요리했던가?
십 년마다 한 명씩 위인이 나온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
그렇게 많은 의문들.
-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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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면 많은 왕이 나오고 주인공이죠.
여기 한 문학가가 의문을 품습니다.
시민이나 노예는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단순한 밥벌레였던가.
역사는 어떤 특정한 견해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만을 보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선택되고 결정된 것이죠.
한가한 오후 아테네 역사를 읽다가 기록되지 않는 스파르타 사람이나 비참하고 고단한 노예의 삶이 궁금할 수 있죠.
역사와 마찬가지로 문학작품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인에어>의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모두 하악거리고 있을 때 어두운 방에 갇혀서 광인이 된 여성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남자주인공 아내에게 대사 한마디 주지 않고 광기의 유전자라고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독자는 왜 그녀가 파괴되어서 감금되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남자주인공의 아내를 괴물로 만들지 않으면 독자의 이해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여자주인공은 감당도 이혼도 못하는 남자주인공 곁을 떠납니다.
남자주인공이 모든 것을 잃고 불구의 장애인이 된 후 여자주인공은 그의 곁으로 오지요.
여기서 모든 것이란 자살한 아내도 포함됩니다.
괴물이 되어 아내는 스스로 죽어야 되며 사랑하는 여성은 남자주인공의 계급에 맞게 상속녀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제인에어>의 작가는 여자주인공이 아니라 미쳐버린 남자주인공 아내를 닮았습니다.
그 시대 무시당했던 수많은 일반 여성의 모습을 한 작가였지만 소수의 여자주인공이 되고 싶었지요.
환기하면 피부가 다른 남자주인공 아내의 어떠한 변호도 하지 않지만, 여자주인공을 상속녀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타파하고 싶었던 것이었지요.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에어>를 신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작품에서 당시 여성이 억압당한 자유에 대한 경련과 분노를 쏟느라 작품을 뒤틀리게 하였다고 말이죠.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이 얼룩져서 너덜너덜합니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등장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영화가 있어요.
남자주인공이 사랑과 감정이 시들해지자 여자주인공을 떠나고 그녀는 홀로 일상을 맞이합니다.
<제인에어> 여자주인공이 상속녀가 되어서 장애인이 된 남자주인공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연민이 먼저 떠오릅니다.
아니면 계급상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일지도.
스웨덴에서 사회 고발성 작품을 쓴 작가의 여자친구는 그토록 오랜 기간 사실혼이었지만 인세를 받지 못합니다.
작가는 사회의 적으로부터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아이러니하죠.
혹자는 유럽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동거나 사실혼이 법적인 평등을 보장하는 장치처럼 선전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군요.
결혼을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는 실패했을 때 상대방에게 지불한 재산분할, 양육비 등이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겠지요.
<비포 선셋>에서 남자주인공은 너무 수척해 보여서 안타까웠어요.
서로의 약속은 어긋났지만 가장 빛나던 시절 젊음을 공유했던 이를 만났지만, 서로의 불행을 일부러 감추지 않더군요.
반대로 서로 행복한 척 연기를 했다고 해도 이해를 합니다.
여기에서 재회는 이 둘 관계의 어떠한 큰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끝납니다.
<비포 미드나잇>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면을 보는 눈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군요.
적어도 이곳 게시판에서는.
P.S <[스포일러]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의 불편함>을 읽고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저도 이게 흥미로운 모티브라고 생각하는데요, 제인 에어의 대극이 앙투아네트인 것이 아니라 제인에어가 붉은 방에 갇히고,
자선학교에서 교육받으며 억눌리고 감춘 그녀 안의 야성적이고 광기에 찬 면이 버사 메이슨라는 의견도 있더군요. 브론테가 그것을 알았건 몰랐건 간에요.
[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모티브를 사용한 걸 모아볼까 생각중이에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건 <인셉션>인데요,
아리아드네는 제인에어고 멜은 버사라는 해석을 들었는데 그럴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