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2 15:41
- 1998년작. 스티븐 킹 원작으로 브라이언 싱어가 만든 스릴러 영화죠. 1시간 51분이고 스포일러 없게 적겠습니다.
(이 포스터를 20년간 봐 왔는데 남자애 졸업식 모자에 입혀진 사진은 방금 처음 알았습니다. 관찰력 제로. ㅋㅋㅋ)
- 영화 속 배경은 1985년입니다. 미국이구요. 공부 참 잘 하고 머리 좋은 우등 고딩 브래드 랜프로가 주인공이에요. 이 녀석이 수업 시간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우고선 그 끔찍함에 매혹(...)되어 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구할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다 늘어 놓고 사진 하나하나 수십번씩 보고 또 보면서 빠져드는데... 어익후?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사진 속의 인물을 발견하네요. 나치 전범이 우리 동네에 숨어 있었다니!!
그런데 우리의 똑똑한 주인공은 이걸 그냥 신고해서 포상금 탈 생각을 안 하고... 갸가 갸가 맞다는 증거를 확보한 후 찾아가서 협박을 해요. 주인공의 엉뚱한 소망은 이렇습니다. 신고 안 할 테니까 니가 그때 저질렀던 짓들을 낱낱이, 실감나게 나에게 들려줘. 호기심이 돈과 정의를 이겼네요.
졸지에 동네 고딩에게 약점 잡혀 호구가 된 우리 매그니토 할배는 결국 이 페이스에 말려들어 호구잡이를 당합니다만... 그래도 간지나는 경고 한 마디는 잊지 않죠. 명심해 고딩. 넌 지금 불장난을 하고 있는 거야.
(그야말로 산교육의 현장.)
- 23년전 과거인 이 당시로 돌아가보면, 브라이언 싱어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초대박으로 장래가 매우 촉망되던 젊은 감독이었습니다. 그러고 3년 후에 만든 게 이 영화인데, 유주얼 서스펙트로 인한 기대치에 비하면 좀 자잘한 성과였다는 반응... 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영화의 완성도 자체는 대체로 호평이었죠. 그리고 2년 뒤 뮤턴트들을 만나면서 엑스맨 전문 감독(...)의 길을 걷게 되구요.
그래서 지난 20여년간의 브라이언 싱어를 구경한 후에 이 영화를 이제사 보니 당시에 봤음 별 생각 없었을 포인트 몇 가지가 보입니다. 홀로코스트와 동성애요. 일단 영화의 소재 자체가 홀로코스트, 나치, 유태인 학살이구요. 그리고 영화 시작부터 괴상할 정도로 주인공의 미모를 과할 정도로 강조해서 드러내죠. 특히 중간에 나오는 샤워장씬은 거의 브라이언 싱어가 영화로 사심 채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다가 나중엔 아예 동성애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이후로 브라이언 싱어의 작품 세계를 지배할 테마를 티징해주는 영화였던 겁니다. 브라이언 싱어 비긴즈! 왠지 모르게 칙칙한 느낌의 화면빨까지
(아니 감독님 왜 자꾸...)
- 아무래도 원작 버프도 있긴 하지만 영화의 도입부는 정말 근사합니다. 소재 자체도 신선하게 흥미를 끌구요. 빠르게 본론으로 훅 들어가면서 불꽃을 튀기는 템포도 좋습니다. 똑똑하지만 어린 청년 vs 큰 약점을 잡혔지만 만렙 나치 전범이라는 대결 구도도 흥미진진하면서... 거기에 리즈 시절 브래드 랜프로 & 이안 맥켈런의 연기 호흡도 아주 좋아요.
순수하지만 나쁜 유혹에 흔들리는 젊은 영혼 & 사악한 능구렁이지만 은근슬쩍 약한 구석을 내비치는 노인... 이런 식으로 둘 다 복합적인 면모를 갖춘 인물들인데 배우들이 참 잘 살려냅니다. 물론 마성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빌런 역할의 맥켈런이 보여주는 연기가 훨씬 강렬하고 폼이 납니다만, 젊은 에너지로 무장하고 맞부딪히는 랜프로의 연기도 충분히 훌륭해요. 좋은 배우 구경에 취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둘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장면들만 봐도 흡족하실 듯.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장면.)
- 아쉬운 점이라면...
일단 뭐 소재를 그렇게 깊이 파는 영화는 아닙니다. 여기에서 나치는 그저 '거대한 악'의 상징일 뿐 역사적으로 뭐가 어떻고 유태인들이 어떻고 이런 건 이야기 속에서 전혀 건드리지 않아요. 그래서 매그니토 할배 캐릭터도 그에 따라가는데... 이런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뭔가 더 제대로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더군요. 배우가 잘 살려내긴 했지만 그걸 걷어내고 따져보면 사실 그렇게 깊이 있다고 할만하진 않습니다. 캐릭터도, 이야기도.
그리고 마무리가 좀 아쉽습니다. 되게 나쁘다기 보단 그냥 좀 아쉬운 느낌인데...
둘의 대결로 시작된 이야기이고 그 둘의 대결이 워낙 매력적이었다 보니 끝까지 그렇게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엔 둘이 갈라져서 각자의 결말을 맞이해 버리니 뭔가 에너지가 팍 사그라들면서 늘어지는 느낌. 사족을 구경하는 기분이 좀 들었구요.
또 그 마무리가 좀 쉽습니다.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랄까... 좀 무리수를 두더라도 더 강렬하게 끝을 맺어줬음 좋았을 것 같아요. 본지 하도 오래 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원작 소설의 엔딩은 좀 더 거창했던 느낌인데요. ㅋㅋ
- 암튼 대충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재미있어요. 마무리가 좀 아쉽긴 해도 적어도 그 직전까지는 상당히 집중해서 보게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대단한 깊이나 충격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장면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잘 만든 스릴러 아닌가 싶었네요.
특히나 배우들 '연기 대결' 구경 좋아하시는 분들은 재밌게 보실 거에요. 취향에 따라 랜프로의 연기가 맘에 안 드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뭐, 무적의 간달프&매그니토 할배가 계시지 않습니까. ㅋㅋㅋ
+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잊혀지긴 했지만 이 브래드 렌프로도 사실 장래가 대단히 촉망되던 배우였죠. 세상을 등지기 전에 이미 출연작들의 실패와 마약 중독으로 커리어가 무너져 있긴 했지만... 그래도 비주얼로나 연기력으로나 많이 아까운 배우였습니다.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급으로 인기가 많지 않았다고 해도 그 시절엔 나름 팬들도 많았던 기억이구요. 암튼 참 아깝네요. 명복을 빌어요.
++ 그 시절 영화, 드라마들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다 기억하실 배우가 한 분. 그냥 아무나 다 아시는 배우가 한 분 조역으로 나옵니다.
조슈아 잭슨. 기억하십니까. ㅋㅋ 검색해보니 요즘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내고 있더군요. 짧았던 리즈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그리고 이 분이야 뭐. ㅋㅋㅋ
그러고 보면 이안 맥켈런이 참 희한합니다. 함께 공연했던 젊은이는 세상을 떠나고 다른 젊은이들이 세월 어택으로 푹푹 삭는 동안에도 건재하게 버텨내신... 그때 너무 늙으셨던 걸까요. 하하. 그리고 이 양반이 나치 역할과 유태인 생존자 역할을 다 해 보신 경우라는 걸 이제야 눈치챘구요.
+++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가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재판 중이라는 것도 이 글을 적으면서 알았습니다. 아......;;
2021.06.22 16:18
2021.06.22 17:24
국적은 그냥 심플하게 영국인인데 말이죠. ㅋㅋ 말씀대로 좀 예스러운 캐릭터가 잘 어울리고 특히 독일인 역할이 잘 맞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고 이 배우를 처음 봤을 땐 독일인이거나 독일 쪽이랑 무슨 관련이 있나보다... 했었어요.
2021.06.22 17:26
2021.06.22 16:39
2021.06.22 17:29
일단 본인이 유태인이고 인터뷰 때문에 시오니스트 의심을 받을 만큼 사상도 투철(?)해 보이구요. 그러니 이 영화와 엑스맨 시리즈, 그리고 작전명 발키리까지 에서 연달아 나치를 까는 영화들어낸 흐름은 자연스럽긴 합니다. 그리고 사실 나치 군복은 그냥 역사적 맥락 빼고 생김새만 봤을 땐 멋지긴 하니까(...)
소송 건 사람들 중 하나가 이 영화 보조 출연자였다는 건 읽었는데, 나머지 셋도 여기 나온 사람들이었나보군요. 이거 참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보고 나서 기분 찝찝해지는 게 '꿈의 제인' 이후로 또 불쾌한 체험이네요. 흠...;
2021.06.23 17:28
2021.06.23 17:46
유대인 고아인데 양부모가 독일인이라... 정체성 복잡한 사람이었군요;
2021.06.23 18:12
2021.06.22 17:31
오래 전 옛날, 사람들이 아직 공중파 방송으로 영화를 보고 블로그라는 것을 열심히 하던 시절, 언젠가 EBS에서 이 영화를 해 주었는데 방영 당일과 그다음 날 이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블로그 포스트가 여럿 올라와서 반가웠던 적이 있어요. 물론 더욱 오래 전 옛날, 학생들이 전날 밤에 TV에서 해 준 영화를 다들 보고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그럼 체험과는 이미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는 그런 체험이 재현된 듯한 감흥이 있었죠. 아, 인터넷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하면서. 그래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번도 안 보다가 재작년엔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블루레이가 나와서 (미국에서는 한참 전에 나왔다가 절판됐고 다른 나라에서는 블루레이가 안 나와서 은근히 고화질로 보기 어려운 영화였거든요) 다시 봤는데... 네... 저는 그 시점에 브라이언 싱어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를 대강 듣기는 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에게 범죄 혐의나 전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 자체를 지우고 거부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그냥 과거의 좋았던 기억(+ 그 사이에 읽은 스티븐 킹의 원작에 대한 애정)을 되새기며 어쨌든 잘 만든 영화 아니었던가, 하며 봤는데... 다시 보니까 이건 정말 '이 새끼가?' 싶게 불순한 거예요. 영화가 끝난 뒤 심란한 마음을 안고 브라이언 싱어의 혐의에 관한 정보를 더 찾아봤는데, 브라이언 싱어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영화계에서 그를 지워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였지만, 이미 1997년에! 바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바로 그 샤워실 장면에서!!!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채울 목적으로 미성년자 엑스트라들에게 누드 촬영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더라고요. 크억.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끝났는지 법정 밖에서 합의를 했는지는 불분명)
그래서 이 영화는 제게 그렇게 특히 즐거웠던 경험과 특히 불쾌했던 경험을 모두 제공해 준 아주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2021.06.22 17:38
아 그나마 그게 또 강요해서 촬영한 거였단 말인가요;;;
일단 주인공이 자꾸만 상의 탈의를 하고 땀에 젖구요... 그 외 남자애들도 자꾸 상의를 벗구요... 브래드 렌프로의 얼굴을 정말 심혈을 기울여 아름답게 잡아내는 데다가 크리티컬이 그 샤워장씬... 글에 적은 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전 브라이언 싱어의 성추문들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아, 이거 사심 채우는 것도 좋지만 좀 과하시네...' 이러고 있었는데요. 다 보고 나서 글 적다가 검색해보니 이런 게 나오고, 거기에다가 댓글로 제가 몰랐던 게 더 추가되고. 허허허...; 제게도 아주 기억에 남는 영화이자 기억에 남는 후기글이 될 것 같습니다. ㅠㅜ
2021.06.22 17:42
싱어의 피해자들에 관해 다룬 기사를 에스콰이어에서 막아 버리고 디 애틀랜틱에서 냈죠. <보헤미안 랩소디>아카데미 상 못 받을까 봐. 그 기사도 아카데미 후보 발표나고 나온 거 보니 엠바고 걸어 놨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피해자가 한 두 명 아니었죠. 라미말렉은 싱어 이미지가 안 좋으니 사이 안 좋았다고 언플했죠. Mplex에서 가끔 하던데 안 봐요. 스티븐 킹 소설 안 좋아하는 이유가 묘하게 소아성애 느낌이 있어서 그래요. 브랜든 렌포르는 게이 감독 조엘 슈마처가 데뷔, 슬리퍼스에서도 간수한테 성적 학대당하는 역으로 나왔을 걸요
싱어는 몇 개월 전에 피해자한테 주라고 법정에서 명한 배상금 안 줘서 또 고소당했어요. <퀴어 애즈 포크>미국판에 레즈비언으로 나온 미셸 클루니와 아들이 있던데 제대로 키우기나 하는지
2021.06.22 21:25
음... 또 새로운 정보 추가가. ㅠㅜ
2021.06.23 17:32
2021.06.22 20:04
브라이언 싱어 관련 몰랐는데 알게되었습니다. 헐리우드는 참 까도까도 계속 나오는군요.
2021.06.22 21:26
저도 지금 몹시 당황 중입니다. 허허허헐...
2021.06.22 20:58
아직도 기억나요. 당시 시상식 In Memoriam 코너에서 렌프로만 싹 뺐던 거..
2021.06.22 21:00
2021.06.22 21:25
이것도 전혀 모르는 사건인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뭐가 이렇게 계속 나오죠. ㅠㅜ
2021.06.22 22:52
https://people.com/awards/why-was-brad-renfro-missing-from-in-memoriam-montage/
“There are too many people to include everyone." 이 아카데미 측 답변
2021.06.22 23:10
2021.06.22 21:34
2021.06.22 21:09
저는 도슨의 청춘일기에 한참 빠져있을 때라 조슈아 잭슨 때문에 본 영화였습니다.
너무 오래 돼서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도 잊었네요;;;
로스 나온 건 오늘 첨 알았어요. ㅋㅋ
조슈아 잭슨 때문에 스컬스 인가 그런 영화도 봤는데 별로였던 기억이..
아무튼 다이앤 크루거랑 잘 어울렸는데 헤어졌더라고요. ㅠㅠ 다이앤 크루거는 워킹데드의 노만 리더스 만나서 벌써 딸까지...
2021.06.22 21:29
로스는 상담 선생으로 나왔어요. 나름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하는... ㅋㅋ
아마 실망하셨겠네요. 비중이 정말 작더라구요. ㅋㅋ 연도를 확인해보니 도슨이랑 같은 해에 공개됐군요. 뜨기 직전이었으니 그럴만도...
스컬스 그 영화 저도 기억 나요. 주연 맡은 거 보고 와 이제 확 뜨는구나... 했는데 음. 하하; 근데 지금 보니깐 같이 주인공격으로 나왔던 배우가 폴 워커네요. 흠... 왜 이렇게 명복 빌 일이 많은지. ㅠㅜ
2021.06.23 17:35
2021.06.22 21:35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는 영화 제목과 여기 댓글들의 내용이 무언가 연관성이 있네요. 자꾸만 드러나는 추한 비밀들.ㅎㅎ
2021.06.22 21:36
2021.06.22 21:38
리버 피닉스요?
2021.06.22 21:49
2021.06.22 22:27
듣고 보니 그렇네요. 역시 노래가 영화는 제목을 잘 지어야...
뭐 이건 번역제지만요. ㅋㅋㅋ
2021.06.23 17:43
2021.06.23 18:10
네 여러모로 이젠 다시 보기 싫은 영화가 되어 버렸네요. ㅠㅜ 영화 볼 때마다 감독과 배우 근황에 대해 미리 검색이라도 해야 하나 봐요.
2021.06.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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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할배는 나치에 유대인 생존자뿐만 아니라, 나치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평범한 독일 소년이 전쟁을 전후에 살인자에 악질 범죄자가 되는 역도 맡았지요 리처드 3세도 그렇고 2차 대전+독일 쪽 연기가 잘 어울리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