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에 꽂히다

2010.10.17 10:33

걍태공 조회 수:5042

처음부터 샌드위치는 좋아하는 음식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더랬죠. 하긴 빵쪼가리 사이에 냉장고에 남은 음식 찌끄래기를 넣어먹는 것이 땡길 이유가 없지요. 냉장고에 남은건 양푼에다 털어넣고 고추장과 참치 통조림을 털어넣고 썩썩 비비는게 정석인걸요.


직장인이 되면서 거기에 약간의 트라우마까지 더해졌어요. 초년병 시절 외국의 한 호텔 회의실에 보름 가까이 갇혀서 일을 해야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죠. 식사 시간이 되면 호텔 직원들이 은색 트레이에 샌드위치를 듬뿍 담아서 갖다줬습니다. 샌드위치의 종류는 매일 바뀌었다고 하지만 제게는 똑같은 샌드위치일 뿐. 보름동안 샌드위치로 연명하고 나니 샌드위치의 샌드 얘기만 들어도 토할 것 같습디다. 농구의 농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던 강백호 같았죠.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약이라, 샌드백을 두드린다는 처자를 만나도 샌드위치를 떠올리며 화장실로 달려가지 않게 되었슴다. 직업땜시 코크고 눈파란 친구들과 엎치락 뒤치락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생존을 위해 좋건 싫건 샌드위치는 계속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신선한 빵과 파삭한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간 BLT 샌드위치를 무심히 먹었는데, 머리속에 노란 전구가 켜지는게 느껴집디다. "어.... 이거 맛있다."


그 후 BLT 샌드위치와 비프 파스트라미의 차이점을 알게 되고, 죠이가 왜 밋볼 샌드위치를 샌드위치의 최고봉으로 치는지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엔 신선한 재료로 샌드위치와 숲을 만들어서 저희 집까지 배달을 해주는 가게가  생겼더군요. 여러가지 다른 샌드위치를 시켜서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쁨다.  이젠 대그우드 아저씨와 죠이를 만나면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샌드위치............ 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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