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2 10:18
미국의 리버트 피핀이라는 교수가 미국 문화의 속물화에 대해 뉴욕 타임즈에 쓴 글 일부를 인용하며, 어느 블로거가 미국에서 사는 소감을 쓴 글입니다.
블로그 주인장이 사람 유입을 싫어하는 분인 듯 하여 링크는 생략합니다.
(이하 전체 다 퍼온 글)
(로버트 피핀: ) 문화전쟁’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마저 없는 듯싶다.) “미국 정신의 종언”이니 “문화 文解”(Cultural Literacy)니, “교수들의 사기”니 “종신직 얻고서 과격분자가 된 사람들”이니 하는 표현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을까 싶다. 그때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이따금씩 다시 나타나기는 한다. 96년에 앨런 소캘─’소셜 텍스트’ 사건도 있었고 글을 가장 엉터리로 쓰는 사람들(註 ─ 대개 글을 가장 개판으로 쓰는 사람들은 ‘탈구조주의’니 ‘해체’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틀로 문학, 문화 비평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을 둘러싼 소동도 가끔씩 벌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학과 대학의 사명 및 문화 전체에서 대학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 등은 완연하게 변했다.
설령 그때의 문화 전쟁이 빛을 밝히기보다는 열만 냈을지언정 적어도 그것은 가치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었다. 지성인이 알아야 할 것들, 대학의 목적에 관한 논쟁이었다. 그러나 지난 십 년 남짓 세월 동안 그러한 담론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종류의 담론이 들어앉았다. 곧, 대학 학비, 대학 운영비에 관한 담론, 이른바 ‘명문’ (elite) 대학에 자식을 들여보내려 목매는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 대학 졸업장 있어봐야 졸업하고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탄식, 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표절 문제,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 받지 못하면서 우리 학부생들의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시간강사들, 책의 종말, 독서의 종말. 그러나 이러한 비용과 근심 밑에 깔려있는 것, 궁극적인 것에 대한 담론은 요새 들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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