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심장(끌로드 소떼)

2021.07.26 00:45

thoma 조회 수:451

26693037530F502813


'연애를 다룬 창작물' 하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 써 봅니다. 디브이디로 보고 나중에 극장에서도 한 번 봤었어요.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금지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다가 요즘은 원제대로 소개되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내용 다 있어요. 내용 다 알고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스테판과 맥심은 바이올린 수리, 제작 일을 함께하는 동업자입니다. 스테판이 공방 일을 하고 맥심은 영업을 맡아 운영합니다. 이들 사이에 까미유라는 아름다운 연주자가 있어요. 맥심의 애인입니다. 맥심은 곧 이혼하고 이분과 결혼하려 생각 중입니다. 그런 맥심의 이중생활이 스테판은 약간 역겹습니다. 둘 사이에 우정은 없어요. 예상이 되시죠? 스테판과 까미유는 맥심으로부터 소개받던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고 서로를 의식합니다. 스테판은 출장 간 맥심 대신 까미유의 녹음실을 방문하고 휴식 시간에 카페에서 잠시 만나 서로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돼요. 결국 까미유는 스테판에 대한 마음을 맥심에게 고백합니다. 까미유는 자기 상황을 정리하고 스테판에게 갈 준비를 한 겁니다. 녹음을 마친 날 (마지막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암시를 하며)둘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까미유에게 스테판은 '뭔가 잘못 알고 있다. 나는 댁을 좋아하지 않는데.' 라고 말합니다.

이후 스테판은 까미유에게 '아무것도 아닌 공허한 인간'이라고 욕도 먹고 맥심에게 뺨도 맞고 사업도 갈라서게 됩니다. 스테판은 왜 그랬을까. 연습하는데 찾아가서 뚫어지게 쳐다보고 녹음실 갔던 날의 카페에선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누가봐도 고백 비슷하게 들리는 말까지 했으면서.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습니다. 까미유와 호감을 느끼던 날 중 하루, 스테판은 맥심을 따라 수리 중인 아파트엘 갑니다. 까미유와 들어가 살 집인데 여긴 까미유의 연습실로, 여긴 침실로 하며 맥심의 의도적이며 자랑섞인 안내를 받다가 스테판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낍니다. 맥심이 건넨 물을 마시고 겨우 정신을 차리죠. 아마 이 순간이었을 겁니다. 까미유와 자신이 지금 한 걸음 더 내디디면 어디로 가야하는지가 보였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표현하고, 마음을 확인한 후, 이어질 일이 파노라마로 눈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집'이라는 물질의 이미지로. 그 단단한 현실로 말입니다. 맥심의 진지함에 압박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치기어린 행동의 가벼움에 어지러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서구의 영화들에서 두 사람이 좋은 감정이 생기자마자 마지막 단계로 '일단은' 가보고 그후에 생각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그 마지막 단계가 오로지 목표인 전개를 보다가 이 영화를 보니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현실에서 이처럼 한치 앞을 보여주는 파노라마가 작동되어 준다면 좋겠구만...아니 경고음은 언제나 울리는데 우리 스스로가 무시하는 거겠지만요. 왜냐하면 스테판처럼 혼자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겠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스테판은 재결합한 까미유와 맥심을 만나 안부를 주고받고 연주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카페에 앉은 채 봅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홀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길 잘 했지? 내가 맥심 너만 못해서 혼자 있는 게 아니란 거 잘 알았겠지? 난 공허한 사람이 아니야, 나에겐 일이 있으니까? 역시 커피는 혼커피야? 나는 홀로 늙어갈거야...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는데 다니엘 오떼이유의 표정이 매우 쓸쓸하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것 같습니다. 차가운 심장의 소유자면서 그걸 알고 그 길로 충실했으니 잘 된 겁니다.


@ 라벨의 바이올린 피아노 협주곡이 매우 아름답게 오래 나옵니다. 엠마누엘 베아르가 배웠다는데 잘 하더라고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97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206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482
116853 어떤 선생님에 대한 기억. [7] 01410 2010.10.18 3080
116852 하자 있어 보이나요? [23] disorder 2010.10.18 4174
116851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클래식 음악 [2] 부엌자객 2010.10.18 1656
116850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나서 올리고 싶은 네이버 지식인...(부문:성정체성) [9] 라일락 2010.10.18 2829
116849 올랜도 블룸-히트텍 광고 [6] 자본주의의돼지 2010.10.18 3291
116848 mbc 주말의 영화 '상성' 오랜만에 본 양조위와 금성무(스포없음) [4] 스위트블랙 2010.10.18 2250
116847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보시는 분 없나요? [9] 자본주의의돼지 2010.10.18 4494
116846 이노래 부르다 울컥했습니다 [1] pingpong 2010.10.18 2297
116845 영화를 찾습니다. 이 영화를 아시는 분? [2] 스위트블랙 2010.10.18 1720
116844 생각없이 웃을수 있는 영화... [14] 청춘의 문장 2010.10.18 3214
116843 [변희재] " 나는 경쟁의 원리를 지지한다" [1] 의미없지만익명 2010.10.18 2330
116842 SM의 무시못할 경쟁력 중 하나는.. [15] 아리마 2010.10.18 6532
116841 잘 틀리는 맞춤법 [34] jim 2010.10.18 3995
116840 10년만에 다시 본 동사서독 [6] catgotmy 2010.10.18 2299
116839 아이폰 쓰시는 분들.. DMB가 아쉬우신가요? [7] 가라 2010.10.18 2934
116838 [듀나인] 재개발 관련한 문의 [8] 녹색귤 2010.10.18 1644
116837 '클리세'같은 단어가 그렇게 어려운 어휘인가요? [50] mily 2010.10.18 6455
116836 [bap] 시인 이상 오감도, 음악으로 부활하다 / 인문학 고전 라이브 특강 [5] bap 2010.10.18 2752
116835 김영하씨가 왜 뉴욕에 있나요 [2] loving_rabbit 2010.10.18 3830
116834 공문서 쓰기에 가장 간지나는 폰트는 무엇일까요. [22] Paul. 2010.10.18 3437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