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들어가기 전에,  제가 웹툰작가나 영화감독이면 이런 작품은 안만듭니다. 민주화 세대의 숙원과 현재(미래) 세대의 과제를 동일한 복수극의 정서로 다룰 순 없죠. 대사나 정서도 감동과 오그라듦의 아슬한 경계에 있고요.

 

근데 제 취향을 떠나서 보면 예상보다는 잘빠진 영화였습니다. 허지웅의 트윗만큼 엉성한 영화라고는 생각되지 않고요. 오늘자 경향에 허지웅 글이 올라왔는데 영화적 비판은 '컷들이 잘 안붙는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짧은 기사 형태의 글이라서 그런지 예시 같은 건 없었어요. 근데 과연 편집이 그 트윗 만큼의 수준이었냐면 그렇진 않았고 오히려 장황한 원작이 나름 무난하게 축약됐다는 느낌을 줍니다. 까놓고 말해서 생략된 강풀의 인물들 이야기들 설명들이 고스란히 채워진다 해도 크게 근사해 질 건 없거든요.

 

솔직히 제가 허지웅에게 느낀 건 어떤 '스탠스'를 취하기 위해 사물을 억지로 배치한다는 느낌이에요. 정서적으로 올바른 것 같은 스텐스에 먼저 선 후에 논리를 맞추는 거죠.

 

정말로 이 작품을 비판하려면 고작 생략된 이음새나 에피소드에 대한 투정이 아니라 원작 자체를 말해야 될 거에요. 내용적으로 약간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원작은 좋은데 영화는 재앙이라고 말할 정도의 차이가 없어요.

 

허지웅(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광주라는 역사와 더불어 원작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은데, 솔직히 한번 말해보죠.

 

강풀의 26년이 그렇게 좋은 작품인가요?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대사들, 동화적으로 느껴질 만큼 순수하고 착한 캐릭터들, 그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끔찍할 만큼 계몽적인 설명조의 대사들, 그리고 아까 언급한 설정 -후세대의 역사인식과 과제를 전세대의 복수극으로 동일시- 자체의 미숙함.

 

제가 앞에서 말한 '감동과 오그라듦의 아슬한 경계'라는 건 강풀 스타일에 정서적으로 도킹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그게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핵심이에요. 그러므로 원작은 이 영화의 숙명이에요. 이 영화가 새삼스레 전의 것을 망친 것같이 말하는 허지웅은 차라리 원작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 광주와 예술의 태도에 대해 얘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고요.
 
차라리 저는 영화쪽이 좀더 와닿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서 강풀 스타일에서 약간은 벗어난 느낌도 있었기 때문인데요. 시간의 한계상 자연스런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뻔하고 긴 대사와 이야기들이 줄어들고 중요 장면에서 긴테이크와 감정연기를 적절히 넣었습니다. 이게 연기자들의 좋은 연기력과 맞물리면서 굉장히 큰 효과를 봤습니다. 적어도 화려한 휴가(이게 진정한 망작이죠)보다는 돈 안아까운 영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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