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4 11:05
황태자 알렉세이와 황녀들(아나스타샤는 막내 딸)
최순…아니 라스푸틴이 사라지고 난 뒤 러시아 황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기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공주의 전설!
다음은 라스푸틴 이후의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황녀 아나스타샤에 얽힌 이야기죠.
지난 1991년에 소련의 옐친 대통령의 특별 명령으로 시행된 황실 가족 시신 발굴 작업과 DNA검사에 의해 황녀 아나스타샤에 대한 진실이 드러났죠…
전 사실 아나스타샤가 무사히 살아서 도망쳤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당시 뉴스 보도 듣고…
여튼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역사평설작가 이주은 선생의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royalsweet16?Redirect=Log&logNo=110171368766&from=postView
참고로 이 말기 제정 러시아 황실은 우리 조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896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대한제국 사절단
(예, 고종의 대한제국 모델이 바로 러시아 황실입니다....유럽에서 역할 모델 하나는 제대로 찾은 듯)
허동현 선생(경희대, 한국사)은 이태진(서울대, 한국사)교수의 대한제국 모델이 정조의 절대왕권 강화 정책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그 보다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전제정이 대한제국의 모델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었죠. 저도 허동현 선생의 견해가 더 맞다고 봅니다. 그냥 딱 외양만 봐도 대한제국은 유럽 황실이 모델이에요.(생뚱맞게 정조는 무슨....)
양복차림의 고종황제
석조전 오찬에 참석하러 가는 고종황제
군복 차림의 고종황제
군복차림의 대한제국 황태자와 관리들
황실 궁중연회의 무용수들(프랑스의 고고학자 에밀 부르다레가 1903년에 촬영함)
창덕궁의 황실 궁녀들(잠시 방문한 일본의 귀부인들과 기념촬영을 한걸로 보이네요)
덕혜옹주(소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장면. 1925년)
대례복 차림의 황실여인 (덕혜옹주의 어머니 양귀인)
이토 히로부미와 이은 황태자(오른쪽) 초대 통감께서는 유달리 황태자 전하를 귀여워하시며 아끼셨죠. 그냥 말로만 아끼고 사랑한 정도가 아니라 죽은 뒤에는 진짜 막대한 유산도 남겨주심...(물론 전후 미군정이 다 몰수해버렸지만, 만약 그대로 그 유산 가질 수 있었다면 진짜 엄청난 재산일거라고 합니다. 유산 대부분이 부동산이었는데, 지금 도쿄시에서도 젤 비싼 땅들 중 하나라고...대한제국 황실과 국혼을 치른 일본 황실의 나시모토미야 모리마사왕(메이지 천황의 조카) 일가. 일본 황실의 모델 역시 유럽의 여러 황실들에서 역할 모델을 빌려왔죠. 러시아 황실, 독일 황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 영국 황실(이때는 대영제국)...끝도 없...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내부의 1900년대 초 모습
1900년 당시의 파리 만국박람회장의 한국관 내부 모습
다시 러시아 황실 이야기로 돌아와서...
1903년 겨울궁전의 무도회에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모처럼 중세 복장으로 나타난 황제 부부. 러시아의 중세라면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고 동로마 제국식 복장과 문자(키릴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10세기 전후가 가장 주요한 변화가 있었던 때죠. (키예프의 올가 여대공) 황제의 존칭 '차르'도 여기서 유래했죠.(동로마 제국의 계승자, 모스크바 대공국 이반 3세, 1440~1505, 오스만 투르크에게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1453년) 마지막 동로마 제국 황제의 조카딸과 결혼하고 사위로서 동로마 제국의 계승을 선언)
물론 정식 황제 칭호와 제국의 호칭을 러시아가 갖게 된 것은 표트르 1세(1672~1725) 때의 일로 훨씬 이후의 일입니다.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인 1721년) 표트르 1세는 본격적인 서방정책을 실시하여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동로마 제국식 복장을 폐지했었는데, 그 때문에 18세기 내내 동로마식 복장은 황실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이후 19세기 후반부터는 종종 이렇게 중세식 복장을 한 황실 가족들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19세기가 민족주의 시대라서 이 동로마 제국의 의상이 러시아 민족의 '전통의상'으로 인식된 듯 합니다.
1911년의 러시아 황실 일가
2016.11.04 11:27
2016.11.04 12:51
2016.11.04 12:30
예전에 저 유해발굴과정 담은 다큐를 티비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다큐에서 공주들이 옷속에 온갖 보석들을 다 숨겼었다든가
그런이야기며 허름한 농가같은 곳에서 황제 가족들이 감금당한채 꽤 고생스럽게 살았었다는 이야기등 꽤 흥미있었던 다큐였었네요.
2016.11.04 13:06
시베리아의 유배지에서 난방을 위해 땔감을 톱질하는 황제와 황태자의 모습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해서 절대왕정이 있었던 왕조의 마지막은 모두 동일하더군요. 인간적으로는 참 딱하긴 합니다만...
2016.11.04 13:09
2016.11.04 13:14
늘 믿고 보는 빅캣님 글... ^0^ 이주은 선생님 블로그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푸틴이 머리를 잘 굴리는군요.
2016.11.04 13:24
2016.11.04 16:10
로마노프 황가 아이들의 최후는 인간적으론 참 안타깝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애써 이뤄놓은 혁명을 무위로 만들 반동의 구심점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까요. 칼을 뽑았다면 어중간한 데서 멈추면 안 돼요. 우두머리 뿐 아니라 나중에 화근이 될만한 그 수족과 추종세력까지 완전히 씨를 말린 뒤 눈물을 흘려야죠. 그러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우리 역사는 잘 알려주고 있고요. 이번에는 과연 칼을 뽑을 수 있을지, 그리고 칼을 뽑았다면 타협없이 반동세력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릴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2016.11.04 16:16
중세 프랑스 속담에 '왕을 향해 칼을 빼든 자는 칼집을 버려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나는 다만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2016.11.04 17:13
2016.11.05 08:55
kill방...아,아닙니다.
2016.11.05 03:06
실제 아나스타샤가 잉그리드 버그만이랑 많이 닮았네요.
어릴 때 저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정서에 끌렸다가 로마노프가에 실존인물이었다는걸 알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제 마음에 아나스타샤는 버그만입니다
2016.11.05 08:57
저도 어렸을적 주말의 명화에서 흑백으로 이 영화 보고 그 비극적 정서에 확 빠져들었던 생각이납니다.
저 애들에게 총질할 수 있었던 볼셰비키들 존경합니다. 얼마나 미치면 그럴 수 있는건지 아니면 다들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