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4 23:31
책을 읽는데 진도가 엄청 안 나갑니다.
마쓰이에 마사시라는 작가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 라는 소설입니다. 아직 100페이지 정도 읽은 상태라 작품 자체에 대한 섣부른 감상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건축사무소에 갓 입사한 젊은이가 화자입니다. 이 회사는 여름 한 철 별장으로 짐싸들고 가서 근무를 하는데 소설은 활화산 기슭의 별장 동네로 가서 보내는 여름 동안의 이야기가 내용입니다.
아직 초반인데 자꾸 인상을 찡그리며 읽게 됩니다. 원래부터 껄끄러웠던 일본적인 특징 또는 그런 것을 드러내는 표현에 거북스러워하는 내 안의 뭔가가 더 강화된 모양입니다.(일본 소설 읽으면서 일본적인 것에 거북해 하면 어쩌라고 싶지만 안 두드러지는 것도 있어요...하지만 저도 이 증상에 약간 심란해지네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여긴 건축사무소니 도면 그리며 연필을 사용하는데 연필을 깎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아침과 오후에만. 저녁에는 깎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름 이유는 있어요. 수시로 깎는 경우와 달라서 연필 사용량이 일정해지고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을 정성껏 다룬게 된다, 주의를 기울여 일하게 된다, 이런 거예요. 답답해집니다. 이 사람들이 맛 있는 거 먹고 마시는 내용을 디테일하게 소개하거나 오디오 일체가 영국산이라고 굳이 명기하거나 자기 일 철저하게 잘 한다는 말 반복하는 것이나(꽃 소리도 한두 번이지 듣기 싫은데?) 최근의 일본 문학을 읽으려면 소위 항마력이 필요한 걸까요.
뭐 그런 부분은 마음을 달래가며 읽어가다 보면 또 좋은 지점에 도달하겠죠. 이 글 쓰게 된 건 요즘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서요.
이 소설에서 화자가 여기 취직한 것은 소장인 노건축가에 대한 존경 때문입니다. 규모를 키우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내실 있는 실력가이며 소박하나 특징적인 아름다움과 건실한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여서 자기 업계에서 유일하게 존경한 사람. 별장에서 함께 생활하며 화자는 노건축가의 한 말씀 한 동작 유의미하게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문득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 없는 것 같구나, 다른 사람들은 이 소설의 화자처럼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역사적인 인물로는 저는 어릴 때 읽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가 생각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모르는 사람 대신 나서서 죽음을 청한 신부였습니다. 어릴 때 얇은 책자를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잊고 있었는데 지금 쓰며 떠오른 건 트위터에 이분 돌아가신 날이라고 듀나님이 알리셨더라고요.(이런 거 어떻게 알고 다 챙기는지 놀랍죠.)
역사적인 인물말고 동시대에 또는 생활하면서 '존경'이라는 감정을 경험해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2021.08.15 01:24
2021.08.15 10:58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2021.08.15 02:06
2021.08.15 10:33
노회찬은 존경보다는 호감을 가졌었고, 맞습니다, 전태일이 있네요. 동시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저도 20대 초에 이분 평전을 읽고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었습니다. 현대사의 중요인물로 좀더 조명되어야 할 분인데 꺼리는 세력이 여전히 많은 형편입니다.
책 속의 인물인 경우 저 주교 외에도 선승이나 도승이나 이런 득도하신 분들은 많지 않을까요ㅎㅎ
2021.08.15 02:23
취업 초기에는 직장에 존경할만한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와서 보면... 다행히 크게 망가지진 않으셨는데 그래도 이젠 '존경'까진 아니고 그냥 호감가는 분 정도네요.
근데 그 정도도 워낙 드물어서 그냥 존경하는 셈 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제가 그 나이, 그 짬밥 때 그분만큼 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은 안 드니까 뭐.
2021.08.15 10:46
'다행히 크게 망가지진 않으셨는데..' 에서 슬픔이와 기쁨이가 동시에. 그래도 주변에서 그런 감정을 맛보셨군요. 실제 주변에서 존경의 염을 갖게 될 때는 쉽사리 극적으로 변질되어 혐오나 경멸의 감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가진 긍정만큼의 크기로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요.
제 주변에선 그런 마음을 갖게 한 분이 생각이 안 납니다. 봐도 못 본 척하는 습관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못 믿는 마음이 단단해져서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져버린 것 같습니다.ㅎㅎ
2021.08.15 10:27
2021.08.15 10:57
소설은 2012에 나왔고 이야기는 80년대가 배경이긴 합니다만 50년대 아니 30년대라 해도 이상하긴 합니다.
생활 속의 이런 정교한 규칙성 자체를 본인들은 아름답게 여기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기질이 좋은 물건들 만드는 비결이겠지만, 저는 잘 쌓아놓은 도미노패 같은 그 질서 안에 들어가서 마구 흐트러트리고 싶은 충동이.
2021.08.15 10:49
2021.08.15 11:17
저는 배울 점이 있다, 라는 생각은 살면서 만난 사람에게 자주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경' 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이의 인격 자체를 우러러 보는 상황은 경험의 폭이 좁고 만남의 기회가 없어서인지 기억에 없어요. 또 기질상 그런 존경심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2021.08.15 11:29
2021.08.15 11:38
주로 아이티업계 경영자들을 존경하시는군요. 이 경우는 전방위적 인격이라기 보다는 어떤 점을 존경한다, 라서 배울 점이 있다가 맞지 않나요ㅎㅎ
2021.08.15 18:37
2021.08.15 19:35
2021.08.15 13:25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존경의 감정까지는 절대 안생기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빠심도 잘 안생깁니다. 판타지와 실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편이에요. 말, 글이 빼어나도 실제 겪으면 다른 경우들을 워낙 많이 봐서요. 냉소적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인지라 존경하는 인물 1도 없이 살다가 딱 한 명 만났습니다. 리더십, 영민함, 추진력, 통찰력, 실행력, 타인에 대한 배려, 가치관 등... 이후 행보에서 실망한 지점도 있었지만 인간적 한계다 싶고, 그 한계 때문에 뭔가 더 수평적 관계가 된 것 같아(저 혼자 그럼. 실제 관계는 없음) 딴은 만족스럽달까요; (못난 자아..) 존경이란 감정은 꽤 괜찮아요. 삶의 나침반이 되긴 하더군요.
2021.08.15 14:30
매체를 통해 보는 건 보여주고자 하는 바, 보고자 하는 바가 뒤섞인 이미지니까요. 근데 저는 환상과 실제를 명확하게 잘 구분을 못 하는 편입니다. 특정인에 대한 존경 같은 감정은 못 느끼지만 많은 부분이 환상과 실제가 서로에게 개입되어 사는 것 같습니다.
리더십, 배려 등 나열하신 덕목을 갖춘 분을 주변에서 보시고 기준점의 경험을 하셨다니 행운이시네요. 삶이 풍부해질 것 같습니다.
2021.08.15 15:31
존경이라는 게 꼭 흠이 없이 완벽한 인간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닐테지요. 완벽한 인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별개로 하더라도.
저는 제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 비슷하게라도 흉내내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2021.08.15 16:51
부모님 존경한다는 얘긴 매스컴 같은 데서만 들었어요. 그런데 해삼너구리님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몇 년 전에 지인에게서 들었습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존경할 수 있다는 것이 일단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싶다는 모델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축복 같기도 해요.
2021.08.15 19:38
2021.08.15 21:05
전체적으로 존경하기보다는 그 상황마다 존경하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우선 아이 넷을 집에서 혼자서 탯줄잘라가며 낳았다는 점에서는 시엄니를 존경합니다.
2021.08.15 21:35
시엄니 경우에 저는 존경보다 놀라고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마치 특별한 고난 체험에서 살아난 사람들을 보듯 멀리서 보니 그런 것 같고 채찬님에게는 관계 맺는 가까운 사람이라 존경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