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도 영화 보다가 웃음이 터져나오긴 했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이 영화 전체가 불가연성 쓰레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충 분리수거를 해보았습니다.

영화는 크게 1. 오프닝 파리 전투 2. 전원일기 3. 최종전 파트A 4. 최종전 파트B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요 대충 각 부분들의 평을 하자면

1. 오프닝 파리 전투는 괜찮았어요. 이전 작들인 파나 Q처럼 개성적인 컨셉 하에 스케일 큰 액션 장면들이 나오는데 전 썩 만족스러웠거든요. 어쨌든 에바 아니면 거대 전함들을 마리오네트처럼 실로 조종해서 빔포를 막고, 날아간 전함 잔해가 에펠탑을 부러뜨리는 장면을 어디서 보겠습니까. (그 에펠탑 잔해를 들고 적에게 갖다 박으면서 실례할게요 에펠! 하는 센스 ㅋㅋ)

2. 전원일기 파트도 좋습니다. 3.11 이후를 다루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겠는데 따뜻한 분위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게 안노 스승인 미야자키 하야오 생각도 나네요. 덕후로서는 에바 시리즈를 처음 봤을 때 어린 아이였던  캐릭터들이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 준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게 됩니다. (+나도 늙었구나 라는 생각도…)

3. 최종전 파트A는 애매합니다. 적당히 액션도 있고 반전도 있지만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좀 건성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도 시각적으로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여기도 나름 본전치기는 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4. 문제의 최종전 파트B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에도 이번 영화를 보고 불만이 터져 나온 부분이 거의 여기에 집중되어 있더군요. 그야 그럴만한 게 기괴하고 촌스러운 시각적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제작자의 에고가 가득 담긴 설정 풀이가 줄줄줄줄 이어지거든요. 안노의 멘토인 이쿠하라 쿠니히코, 혹은 이쿠하라의 스승인 테라야마 유지의 영향을 받은 듯한 메타픽션적인 장치들은 “이건 다 픽션이야! 여기서 나와서 현실을 살아라!”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재미있긴 해요. 하지만 방향성은 그렇다 쳐도 그것이 시각화된 방식이 썩 세련되지 못 한 것도 사실이지요.


-정도 되겠네요.

그리고 소소한 부분에서 한 가지 불평이 있는데, 서비스씬이 좀 남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야 오덕 대상의 작품이니 어느 정도 있을 수는 있는데, 중요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여자 캐릭터의 엉덩이를 중점으로 잡는 화면을 보면 뭐랄까, 이건 좀 아니지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이 영화로 에바는 끝이 났고(혹은 그렇게 믿고 싶고), 이제는 에바의 주박에서 벗어나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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