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습니다. 꿈을 꿨는데 입 속에서 구멍을 내고 내려오는 벌레를 보고는 놀라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삼시충이구나 짐작했습니다. 때마다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상제님에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조악한 실시간 보고서를 날린다는 그 전설상의 곤충말입니다. 시각적으로 징그럽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것들로부터 도망가야겠다는  절박함 뿐이었어요. 꿈은 깨면 되는 것이니까요. 냉큼 벗어나버리고 말았죠. (살다보니 꿈꿀 때는 아, 꿈이구나 하는 걸 자각하게 되더군요. - -)

# 저의 뇌조직에 누가 사는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습니다. 제 뇌는 그냥 방이고, 저는 몸에 세들어 살 따름이니까요. 그것은 일종의 공간 대여에 해당하니, 실제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저에게 보고되지 않습니다. 보고라는 것은 물리적 통증의 신호이죠. 뇌는 통각세포가 없습니다. 제 머리통을 만져보지만 아무것도 알아낼 게 없을 수밖에요. 

# 대학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절에 가서 일주일 정도 묵고 오곤 했습니다. 암자에서는 며칠 묵고 가겠다는 여성은 일단 거절하고 안 받아줍니다. 그러면 툇마루에 앉아 절 마당을 바라보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며 앉아 있죠. 그러다 해가 지면 보살님들이 어쩔 수 없이 방 하나를 마련해주십니다. 그시절 다니던 사찰 중 어느 여름 해인사에서 주지스님과 나눴던 대화 한토막이 생각나서 기록해봅니다.

나> 스님 마음이 뭔가요?
스님> 마음 마음 그러는데 마음은 없소. 특히 불가에서는.
나> 어떻게 없어요? 매순간 느끼는데요.
스님> 없으니까 없다는 거요. 뭔가와 얽혀서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게 마음은 아니오. 나 같이 수행하는 사람은 갈등을 찾으려 도를 닦는 거요.

나> 세상사에는 갈등이란 게 있고 중생들이 다 도를 닦으며 사는 거 아니잖습니까.
스님> 다양성을 인정해 주면 되지. 그리고 최소한으로 추구할 수 있는 선을 그어주면 되는 거요.
불교에서 공을 설명하는 것이 여기 공집합에 딱 떨어지는 것이라오. 백 개를 더해도 그래 봤자 0이요.  0이지만 하나인 거고. 
나> @@

스님> 흔히 개인적인 욕망은 절제해야 하고, 불교에서도 욕망을 없애야 한다고 하잖소. 하지만 실제 그 욕망을 살아나게끔 하는 게 바로 ‘공’이오. 욕망을 없애면 안되는 거야. 없애는 건 아니오.
돌멩이는 욕망이 없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우리가 보는 가장 좋은 깨달은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욕망은 살려줘야 하오. 

돈을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 보통 세속의 삶이 그렇게 돌아가잖소. 그 속에서도 ‘아니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겠어’ 그러면서 뚜벅거리며 걸어가는 거잖소? 그건  누군가가 보기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겠지. 혹은 ‘어 재밌는 사람이네’ 그렇게 구경하는 시선을 보낼 수도 있고. 

그렇게 자기 재미대로 (신념이란 말은 말자) 사는 거야.  그래서 또 세상이 바뀌는 것 아니오?
 그런 욕망,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그거지 뭐. 그러니 대가를 안 바라고 남한테 피해도 안 주고 내가 하고 싶은 일, 거기서 그나마 삶의 의욕이 생기는 거고. 그걸 마음이라고 칭하면 마음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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