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6 22:01
- 1999년작입니다. 에피소드 열 개에 편당 50분 정도.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한국에선 윗쪽 절반만 잘라서 포스터 이미지로 쓰던데, 드라마의 실체는 하단에 가깝습니다.)
- 경찰 특공대를 일본에선 SIT라고 부르나봐요. 암튼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임무 수행 중인데요. 쌩뚱맞게 신참 하나가 으어어어! 하면서 팀 리더를 향해 총을 쏴요. 어이쿠 망했군? 이라고 생각하는 리더님의 모습을 보여주다 화면이 느려지더니... 엉뚱하게 총을 쏜 놈이 쓰러집니다. 총알이 되돌아갔어요.
장면이 바뀌면 리더님은 윗선에게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다가 미친 놈 소리 듣고 좌천을 당하구요. 그런데 그 좌천으로 간 곳이, 안 쓰는 창고 같은 외지고 부실한 공간이구요. 괴상하고 황당한 소리를 하는 신고 사건들을 맡아 대충 처리하는 척 하다가 캐비넷에 미결로 넣어두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많이 익숙하죠... ㅋㅋㅋ
암튼 그렇게 그 곳으로 흘러들어간 우리의 주인공 '세부미'가 그 곳에서 먼저 일 하고 있는 대식가 천재 경찰 '토우마'와 콤비를 이루고선 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괴사건들을 해결하고 다닌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멀더 & 스컬리 콤비의 일본 망가 버전... 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습니다.)
- 일단 보시다시피 '엑스 파일'을 그냥 대놓고 베낀 이야기입니다. 단순하게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상반된 성격의 남녀 캐릭터가 왕따 부서에서 일하며 초자연적 현상을 파헤친다... 는 걸 넘어서 더 비슷한 설정들이 더 많이 나와요. 비밀 결사와 적(?) 조직과의 인류의 운명을 건 암투라든가 뭐 등등.
다만 그걸 아주 철저하게 일본화 해놓았습니다. 그냥 '일본화'라고 하면 좀 그렇고 일본 만화책화... 라고 하는 게 좀 낫겠네요. '엑스파일'의 UFO와 외계인을 일본 만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능력자들로 바꿔 놓았고. 이들이 '능력'을 시전하는 연출도 딱 만화책 실사화 느낌이에요. 주인공 캐릭터들 역시 그렇습니다. 일본 만화식으로 아주 비현실적으로 과장들이 되어 있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은 쓸 데 없이 귀엽고 예쁜 데다가 계속 귀엽고 예쁜 짓을 하죠.
(참고로 되게 진지한 상황입니다.)
- 매번 '사건' 수사를 하는 이야기로 전개 되지만 당연히 본격 수사물 느낌은 거의 없습니다. 사건을 저지르는 놈들이 (거의) 초능력자들인데 뭘 어쩌겠습니까. ㅋㅋ 간혹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사건들도 있지만 그래봤자 별 차이는 없습니다. 언제나 패턴이 똑같아요. 내용상 기-승-전 정도까지 진도를 빼고 나면 여주인공이 사무실에서 붓을 들고 사건과 관련된 아무 단어나 종이에 써갈깁니다. 그리고 그걸 조각조각 찢어서 자기 머리 위로 던진 후 '잘 먹었습니다!!!'(???) 라고 외치면 팟! 하고 깨달음이 찾아와요. 대체 뭡니까 이게. ㅋㅋㅋㅋ 설정상 걍 이 분이 천재급으로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는데. 사실은 이 분도 '추리 능력'을 갖춘 초능력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잘 먹었습니다!!!)
- 그럼 대체 뭘 즐겨야 하냐... 면.
첫째는 주인공 둘이 꽁냥거리며 서로 정 드는 러브라인 전개입니다. 매사에 쓸 데 없이 진지하고 성질 급한 남자 주인공이 대식가에 사회성 떨어지는 천재 여주인공과 서로 타박하고 놀리고 구박하고 다니다가 서서히 정들고, 마지막엔 얘네 서로 좋아하나? 싶은 떡밥들이 솔솔 떨어지고. 뭐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빌드업 해가는 러브라인인데 뭐 이쪽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잘 먹힐 겁니다. 아닌 분들에겐 저게 뭐하는 짓이냐 싶을 거고
둘째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황당 유치 썰렁 개그 퍼레이드입니다. 이 드라마는 스토리 라인은 시종일관 빈틈 없이 진지한데 그 속의 캐릭터들은 계속해서 개그를 치고 있어요. 진지하게 적과 대적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은 무의미하게 몸개그, 말장난 드립을 멈추지 않고 그걸 쭉 보다보면 결국 어처구니가 없어서라도 쿡쿡, 혹은 피식거리며 웃게 됩니다. 물론, 화가 나서 영상을 꺼버릴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그냥 이 이야기의 유치 키치 몰염치함을 즐기는 거죠. 와하하하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되게 진지하게 하네. 어이구 저 유치한 초능력 연출 좀 봐. 얼씨구, 지금 저게 천재적인 해결책이라고 들이미는 거냐? 근데 그게 진짜 먹히네? ㅋㅋㅋㅋㅋ 뭐 이런 재미로 보는 드라마입니다.
(근데 일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범한 사람 = 대식가' 공식에 집착하는 걸까요.)
- 참고로 이게 제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트릭'을 쓰고 연출한 사람들이 만든 드라마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트릭' 이전에 '케이조쿠'라는 드라마도 만들었던 사람들이 그 '케이조쿠'의 비공식 세계관 공유 후속작 같은 느낌으로 만든 드라마인데. 그래서 두 드라마의 내용과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작품들 중에 좋아하는 게 있던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느낌으로 즐겁게 볼 수 있겠죠. 뭐 어차피 이 드라마도 나온지 10년이 넘은 걸 이제사 스트리밍 서비스 하는 거라 볼 사람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다 봤겠습니다만. 왓챠가 서비스 정체성대로 워낙 덕후님들(...)을 열심히 챙기다 보니 이런 게 신작으로 올라오기도 하네요. ㅋㅋ 뭐 덕택에 궁금했던 시리즈 볼 수 있게 되어서 좋긴 한데... 남은 이야기들은 언제 올려줄건데?
(저 뒤의 할배님은 스키너쯤 되는 캐릭터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별로 안 그래 보이는데 사람 좋고 바르고 의지가 되는 상사.)
- 그게 좀 문제입니다. '남은 이야기들'이요. 일본 드라마 스타일대로 이 드라마도 시리즈로 방송되었던 '드라마' 버전 분량이 있고 그 다음엔 티비 영화 형식의 'SP' 에피소드가 있고 또 언제나 대미를 장식하는 '극장판'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완결을 보려면 이걸 다 봐야 하고 지금 왓챠에 올라온 건 티비 드라마 분량 뿐입니다. 뭐 나름 캐릭터들의 사연상 중요한 떡밥들은 거의 정리하고 끝내긴 합니다만 어쨌든 완결은 남은 걸 다 봐야 나고 그것들은 아직 정식으로 서비스 되는 곳이 없어요. 그러니 혹시 관심 생기신 분들도 깔끔한 마무리를 원하신다면 걍 미뤄두시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생긴 어린 애가 나와서 '냐하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카리스마 악당 코스프레하는 거... 못 참는 그런 분들은 보시면 아니되구요. ㅋㅋ)
- '트릭' 덕후로서 그 드라마와 이걸 비교하자면 뭐... 일장일단이 있는데 제 취향에는 역시 '트릭'이 많이 낫습니다.
일단 뭐 나온 순서상, 그리고 제가 본 순서상 어쩔 수 없이 이 드라마의 캐릭터 설정이나 개그 스타일 같은 게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그렇구요.
또 역시 제 취향상 야마다-우에다 콤비의 그 귀염뽀짝한 매력에 비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뭔가 쓸 데 없이 진지해요. 좋게 보면 그걸로 드라마에 무게감을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애시당초 황당무계 & 유치한 이야기라 굳이 그런 무게감이 필요하단 생각이 안 들더라구요. ㅋㅋ
그래도 메인 줄거리가 있는 척만 하는 '트릭'에 비해 이 '스펙'은 어쨌거나 메인 줄거리 라인이 아주 분명하고 그게 매회 확실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집중해서 달리기엔 이 드라마쪽이 낫긴 합니다. 아베 히로시, 나카마 유키에보다 카세 료, 토다 에리카를 좋아하는 분들도 아마 적잖게 있으실 거구요.
(이 두 분은 이거 찍으면서 마음 맞아서 실제로 연애도 한참 하셨다죠. 다 옛날 얘깁니다만.)
- 뭐 더 길게 말할 게 없겠습니다. 아마 이 드라마를 아시는, 그리고 언제라도 볼 맘이 있거나 혹시 이 글을 읽고 그런 맘이 생길만한 분들이라면 이미 다 봤을 거에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이 소개글을 읽으면서 이미 한참 전에 '응, 내 취향 아니겠군' 하셨을 테니 결론은 대체로 뻘글... 이구요. ㅋㅋ
그래도 뭐 '트릭'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고 아예 같은 사람이 만든 시리즈이다 보니 그 익숙한 스타일을 가볍게 즐기며 잘 봤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절대 추천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거. 그것이 제 결론입니다. ㅋㅋㅋ
+ 극중 초능력자들을, 특히 메인격 빌런들을 강력하게 묘사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던지는 부분들이 좀 과하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 멈추는 능력자놈 같은 경우엔 그 능력 자체는 분명히 먼치킨급이지만, 어차피 신상명세를 다 파악하고 있다면 제거하기는 전혀 어렵지 않죠. 걍 그쪽이 눈치 채기 전에 멀리서 저격 해 버리면 끝이잖아요. 마아지막에 등장하는 흑막 녀석은 그보다 훨씬 더 쉽구요.
++ '인간은 자신의 두뇌를 10% 밖에 활용하지 못하며 나머지 90%의 기능과 그 힘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라는 고대 헛소리를 아주 진지한 바탕으로 삼는 이야기에요. 실제로 저 대사가 초반에 여러 번 반복됩니다. 어쨌든 그 90%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엔 존재하는데, 그 90%는 개인마다 특별한 초능력의 형태로 발현되고. 그 능력을 이 드라마에선 '스펙'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초능력자들을 '스펙 홀더'라고 부르죠. 이런 거창한 용어들부터 이미... ㅋㅋㅋㅋ
+++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희귀병 하나가 나오는데 '제니퍼병' 이라고... 그냥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입니다. 그리고 이 병을 설명하면서 덩달아 나오는 병이 하나 이는데 그 병 이름은 무려 '송강호병'... 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이거 가만 생각해보면 송강호씨 입장에선 그냥 웃고 넘기기엔 좀 찜찜하고 기분 별로일 것 같기도.
++++ 전 귀찮아서 그냥 '스펙'이라고만 적었습니다만. 이 드라마의 제목 풀 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SPEC : 경시청 공안부 공안 제5과 미상사건 특별 대책 담당 사건부
아니 이걸 대체 어디의 누가 쓰라고... ㅋㅋㅋㅋㅋ
2022.11.26 23:08
2022.11.26 23:15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생각나네요. 그게 딱 그런 경우였죠. 본편은 수입 안 한 채로 팬서비스격 작품을 극장에 올려 버리니 유명세만 믿고 극장 간 사람들은 황망할 뿐이고... ㅋㅋㅋㅋ
진짜 그냥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불치의 희귀병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중요한 그 병도 존재하지 않는 아무 이름이고 그 과정에서 '송강호병'이라고 언급만 돼요. 근데 그게 장난 번역도 아니고 원본이 그렇더라구요. ㅋㅋㅋ 걍 작가님이 한국 영화계에 관심이 많으셨던 듯.
2022.11.27 00:04
이 작품의 전신 되는 그 케이조쿠가 예전 국내 일드매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좀 돌았었죠. 아주 인기작은 아닌데 묘한 컬트 팔로잉이 있었다고나 할까... 저도 마침 주연인 와타베 아츠로, 나카타니 미키가 좋아하던 일본배우분들이셨던지라 챙겨봤었는데 확실히 독특한 중독성이 있는 작품이었어요. 아직 어리고 철없던 시절이라 정식경로는 아니었고 헤헷;;
참 훌륭한 케미였었죠. 그러고보니 이 두 분도 한 때 열애설로 말이 많았었는데 '스펙'의 주연 커플도 그랬다니 시리즈 전통인건지... 하여간 이 스펙도 나름 화제가 됐던 방영당시 구해서 보긴 했는데(역시나 안좋은 경로 ㅈㅅ) '엄...' 하면서 중도하차 했었습니다ㅋㅋ 전작이랑 나름 비슷한 감성도 있었지만 이건 저에게는 더 강한 항마력이 필요하더군요. 말씀하신 카미키 류노스케의 그 "하하하하하~ 너랑 나는 레베루가 다르거든?"하는 식의 그 전형적인 싸이코 일본 빌런도 제가 못견뎌하는 타입이구요.
2022.11.27 11:41
왓챠나 넷플릭스나 뭔가 컨텐츠를 들여 놓을 때 이게 뭐지? 싶을 때가 있어요. 예를들어 넷플릭스는 대략 1년 전에 쌩뚱맞게 '트릭'의 SP 에피소드 셋을 올려 놓고 본편은 아직까지 안 올리고 있죠. 멋 모르고 그것만 본 사람들 어쩔... ㅋㅋㅋ 왓챠도 굳이 십년 넘게 묵은 거 판권 사 와서 올릴 거면 '케이조쿠'를 먼저 올리고 '스펙'을 올리는 게 나았을 텐데 그 심리를 모르겠어요. 굳이 이런 걸 가져온 걸 보면 덕력이 없어서 몰랐던 것도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케이조쿠'는 오바를 해도 좀 다크하고 암울한 쪽으로 오바라면 '스펙'은 '트릭'을 통해 연마한 그 맥락 없는 개그들로 오바라서 말씀대로 항마력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ㅋㅋ 저야 뭐 트릭을 극장판 완결편까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본 사람이라 그저 '허허 이 양반 참 일관성 있네' 이러면서 봤습니다.
2022.11.27 16:09
나카타니 미키 너무 젊어 아니 어려 보이는 모습이라니. 저도 한때 와타베 아츠로 좋아서 이것저것 볼 수 있는 건 찾아봤었죠. '사랑따윈 필요없다 여름'부터 시작해서 '케이조쿠'까지 꾹 참고(?) 봤던 추억의 한 페이지가 있어요. 와타베 아츠로 요즘은 뭐하시는지...
2022.11.27 16:16
일본 사람들은 정말 먹는 것에 집착하는 거 같아요. 좋은 의미로든 안 좋은 의미로든(안 좋을 게 있나만 좀 질릴정도?) 음식에는 정말 진심인 거 같아요. 주인공이 대식가인 경우라든가 특별한 음식에 꽂혀 있다든가 인물 중 누구는 요리에 정통해 있다든가. 우리도 티브이 보면 수 년 전부터 슬슬 그 길을 따라가고 있고요.
2022.11.27 17:55
그래서 일본 살아 본 사람들이 그렇게 일본 음식을 칭찬하나 봅니다. ㅋㅋ 저야 가 본 적도 없고 그래서 체험해 본 적도 없지만 그렇게 전해들은 이야기들 때문에 일본 음식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네요.
그나저나 송강호 병은 대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