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9 16:29
미생 작가한테 이메일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알아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직장인들을 더 옥죄는 드라마를 쓰고 계신 건 아시냐고요.
일단 제 주변의 사례를 들어볼게요.
사례 1.
다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 생활 경험 없이 빈둥거리며 한량으로 지내다가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체를 물려받아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저의 선배 A.
이 선배가 절 가끔 만나면 제법 고민입네 하고 떠들던 것이 “난 일반 직장 경험이 없어서 내가 과연 직원들한테 제대로 대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뭔가 실수하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상하 주종 관계에서 주인이 소작농에게 후하게 인심 쓰면 다 되는 거겠지 수준으로 말고, 제대로 된 매뉴얼로 회사를 경영하며 직원들을 대하고 싶어했죠. 헌데 이 선배가 최근 미생의 영향으로 이런 황당한 말을 하더군요. ”은밀아 그동안 난 내가 너무 호구 대표였던 것 같아. 이제부터 대표의 권리를 좀 누려야겠어. 직원들을 너무 상전으로 대우했던 것 같아. 미생 보니까 난 진짜 양반 중의 양반이더라. 이젠 좀 엄격하게 대하려고 해“ 이런 망할. 선배. 미생을 교과서로 삼지 마욧.... 그르지 마요 ㅡ_-;;
사례 2.
보통의 직장과는 좀 다른 개념이 존재하는 교육 서비스의 현장인 학원. 그 학원의 원장님인 제 친구(학원 강사)의 상사 B.
제 친구 말에 의하면 최근 이 학원 원장님께서 미생의 열혈 시청자로 모든 것을 미생 기준으로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학원 강사들 출근 시간이 오후잖아요? 그걸 두고도 “미생에 비하면 진짜 여유롭지.” 또는 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엔 부쩍 학원 강사들 아무에게나 다 커피 심부름을 시킨대요. 그것도 돈을 주면서 정중히 부탁하는 것도 아니라 “김샘, 우리 커피 마실까?” 이러고 웃으면서 간다는군요. (성대리 빙의신가..;;) 그리고 매번 “미생에 비하면 우리 학원은 진짜 근무환경 갑이다 갑 ㅎㅎㅎ” 이런다네요.
사례 3.
평소 일반 직장 경험이 없는 게 콤플렉스인 디자이너 C. (저희 직장 디자이너분이죠)
홍대 인디 밴드 보컬 간지에 (써놓고도 이 표현이 좀 쭈글오글이긴 한데.. 암튼 쿨럭) 게임 덕후에 초중고를 입시미술에 바친.... 음. 그러니까 좀 일반적인 사회 생활 경험이 있는 타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분이 요즘 틈만 나면 “하... 은밀님. 미생에 비하면 진짜 우리 팀장님은 양반이에요. 걍 꾹 참고 다녀야겠어요 :D" 한다거나, ”근데 실제로 일반 직장에선 여직원 얼굴에 서류 집어 던지고 그래요? 아 진짜 전 일반 직장 들어갔으면 하루 만에 관들 듯요“ 라고 하심. C양.... 현실 긍정이야 좋지만 이건 좀.... 아니자나요 ;;
가까운 지인분이 영업직만 15년 차인데, 미생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하더군요. 직장에서 매일 사랑놀이나 해대는 쟤네 신의 직장은 어디? 드라마랑 그 황당함 면에서 별다를 게 없다고요. 요즘 어느 회사에서 여직원 얼굴에 서류를 집어던지고 대놓고 분 냄새 운운하느냐고요. 그리고 대기업 사무직은 고졸 사원 자체가 들어올 수가 없다고... 미생 드라마 에피소드들이 딱 80년대 무역회사라고. 물론 제 후배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요일에 팀장 딸 유치원 행사에 사진 촬영 작가로 불려가기도 합니다만.... 그건 교묘하게 말을 돌려서 부탁하는 상사에 대한 직원의 자발적인 협조로 이뤄지는, 친목이라 부르고 시간 외 근무라고 쓰는 형식이죠. 이런 실제 에피소드들은 널리고 널렸고요. 하지만 미생에 나오는 직원에 대한 그 노골적인 하대와 인격 모욕은 그렇게까지 공공연하게 행해지지도 않을뿐더러, 시대착오적인 삽화라고 봅니다. 요즘엔 모든 파행과 모욕이 비밀리에 이뤄지죠. 표면적으로는 일단 직원 존중의 포장지라도 유지를 하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파행적인 직장 내 모욕 사건이 일어나면 이슈가 되고 비난을 받는 거고요.
그렇지만 미생이 이야기의 완성도면에서 후줄근하고 캐릭터가 단편적이진 않아요. 일단 재밌고요. 하지만 전 미생 신드롬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에요.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린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에요. 문제는 이 드라마가 먹고사니즘에 대한 드라마이기에 미생이 마치 직장 생활의 교과서처럼, 리포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단 거죠. 특히 일반적인 회사의 룰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는 직업군이나 말단 사원 경험이 없는 오너들, 그리고 수많은 군소 중소기업(오너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오락가락하는) 직원들에게 거의 직장 생활 실사판처럼 받아들여지는 부분. 이게 엄청난 문제 같아요.
미생의 인물들이 좀 어렵게 일합니까.... 정말 직장 생활 말고는 다른 삶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물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는 요즘 직장인들에게 그 생활의 피로도와 중대함만큼은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지만, 미생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너무 구식이에요. 설령 현재 미생처럼 굴러가는 사내 조직이 있다하더라도 그 내용이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건 부작용만 심할 뿐이지 긍정적인 효과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그것이 잘못된 행태라는 경각심이 일어나지, 미생처럼 화제가 되는 드라마에서 마치 일반적인 요즘의 직장 생활인 것처럼 그려지면 직원을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던 오너들이 자기 합리화를 할 구실만 잔뜩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생 유감입니다.
대체 장그래, 안영이처럼 심신을 송두리째 회사에 던져야만 살아남는 드라마가 우리 직장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란 말입니까. 이건 열정 드립 강연의 장편 드라마 버전일 뿐이에요. 아울러 직장 생활 경험 하나도 없이 직장 생활에 대해 무척 철저한 자료 조사로 작품을 썼다는 윤태호 작가한테도 불만입니다. 조사를 한 정보원들의 연령이나 경험이 혹시 획일적이진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전 미생 첫 회를 보는 순간 (미생 웹툰은 보지도 않았고 작가에 대해서도 아무 관심도 정보도 없었죠) 아 이거 누가 직장 생활 경험은 없는 작가가 자료 조사해서 쓴 티 팍팍 나네. 그랬거든요? 그런데 왜 미생이 직장 생활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갖춘 거 마냥 대우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어떤 작품을 쓰려면 반드시 그 직업군에 대해 작가가 체험을 하고 써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에요. 하지만 사랑과 환상과 추억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드라마를 쓰려면 적어도 다양한 정보를 방대하게 수집해서 쓰고 검증에 검증을 더 하는 건 해당 작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전 김대리가 제일 좋습니다.....+_+
미생이란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나머지 캐릭터들은 예전에 존재했거나, 지금도 존재하지만 음지에서만 발화하기에 더 근절이 어려운. 그런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해요. 전 미생의 많은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이 심히 과장돼 있는데도 왜 사실적이고 섬세한 직장 생활 드라마라고 칭찬인지 의아합니다.
이건 마치 범죄 고발 프로그램이 범죄를 고발하고 예방하고 개선하는 게 아니라 범죄 수법을 범죄자와 예비 범죄자에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부작용, 바로 그런 식의 느낌입니다.
먹고사니즘의 내용을 정면으로 다루는 드라마기에 실제 직장에서 그 파급 효과가 보통의 드라마와는 다름을 체감하기에 써봤습니다.
저와 제 주변만 미생의 부작용이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여러분과 여러분의 주변은 어떠신지요.
2014.12.09 16:38
2014.12.09 16:39
김대리야말로 미생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 아닌가요? 현실에 없을 것 같은 이상적인 사수.
윗사람을 존경하지만 아부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아니하고 자신의 소신이 있으나 조직의 큰 그림에 따라 양보하기도 하고
후배에게 일을 가르칠때 모질게 굴지 않고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방관하지도 않고 후배의 공로를 후배의 몫으로 돌리고자 하고
김대리 캐릭터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느끼시는 글쓴님의 주변환경이 부럽네요 ㅎ
2014.12.09 17:58
2014.12.09 16:42
(그 나이 먹도록)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지 왜 드라마가 문제입니까.
2014.12.09 16:43
댓글 달았다가 현자님 댓글과 토씨만 다르고 거의 같아서 그냥 지웁니다 ㅎ
2014.12.09 16:45
tv 드라마에 자기 인생관의 근거를 찾을 정도일까요 과연? 다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책임을 돌릴 곳을 찾는거죠. 애들도 아니고 직장 다니는 어른들이 참 궁색하게 구네요.
2014.12.09 16:47
김대리야말로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수라고 봤는데요..
그리고 드라마는 드라마지 현실이 아니죠.성인인데 그것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 문제죠.
2014.12.09 16:53
2014.12.09 16:57
(그 나이 먹도록)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지 왜 드라마가 문제입니까. 222222222
2014.12.09 17:05
2014.12.09 17:09
상사 다니는 분들은 폭풍공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일부 업종에서는 아직도 존재하는 기업문화인가 보다 생각은 했지만, 제 직장생활 기준으로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많았어요. 말씀하신 여직원 커피 심부름이라든가 이런 건 듣도보도 못했고, 마부장처럼 조인트 까고 이런 인간이 이 시대에 존재할 수가 있나 싶었던;; 저희 회사 사장님이 이 드라마 보실까 봐 걱정 돼요. 사례 1처럼 본인이 호구 대표라고 생각하고 각성하실까 봐. -_-;;
2014.12.09 17:13
드라마 미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윤태호작가가 언급되는건 좀 그렇네요. 웹툰과 드라마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부하직원에게 어린이집 가서 상사의 아이 데리고 오라는 심부름 시킨다거나 면전에서 분냄새 운운하는건 저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있다는 믿어지지도 않구요. 사실 원작대로 갔다면 직장생활의 어려움들이 좀 밋밋하게 그려지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네요.
2014.12.09 17:15
2014.12.09 17:35
2014.12.09 17:42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가면으로 가려진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전지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느끼시는 게 아닐까요. 대한항공 땅콩부사장이나 라면상무 같은 예가 너무도 낯설지 않은 사회잖아요, 한국이.
2014.12.09 17:44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그 안에서 회사를 위해 중노동들 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마냥 즐거워 보이는 것도 아닐 뿐더러 우리들에게 그렇게 사는게 옳다고 말하고 그걸 권장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미생에 관한 얘기를 듣거나 글을 읽으면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는 얘기가 많은데, 그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어딘가에는 그런 인간이 존재하고 그런 상황이 존재하죠. 이것은 극이기 때문에 그런 세상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다양한 상황들을 이 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걸 꼭 이 하나의 회사 (또는 본인의 회사)에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나싶어요.
2014.12.09 17:52
음 의견 다들 감사합니다.
직장인들 사이에 미생이 화제가 되고 '저런 문화가 있단 말야? 말도 안돼' VS '우리 회사다 ㅠ ㅠ'사이에서
전자에 해당되는 직장인들이 입는 우스꽝스러운(드라마로 각성하는 오너님들.. 상사님들..) 부작용이 꽤 있다고 생각해서 올린 글이었어요. 미친듯이 바람을 피우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있다고 해서 바람끼 각성이 되는 건 아니죠. 술주정을 하는 선생님이 나온다고 해서 알콜중독 선생님이 각성하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마치 일반적인 직장 생활의 사실성을 묘사한 것처럼 그려내는 직장인 드라마에선 에피소드면에서 좀 더 신중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내 직장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다른 직장 생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죠. 헌데 요즘엔 그 정보원중의 하나가 미생이 되기도 하는, 그런 부분이 있어요. 단순히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정신의 소유자라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미생이 우리들 직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가 다른 직장의 정보를 구하는 기분을 들게끔 하기도 한단 것이죠.... 물론 지금 이 순간 제 글을 보시며 미생이 뭐지?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요.
2014.12.10 18:29
2014.12.09 17:53
웹툰원작을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윤태호작가에게 불만이신가요?
미생 첫 회를 보는 순간 느끼신 불만은 드라마작가에게 표하셔야죠.
2014.12.09 18:01
음 그런가요... 웹툰 미생에서 드라마 미생이 크게 벗어나나요? 윤태호 작가가 자기 지인들에게 취재해서 웹툰을 썼다는 인터뷰를 보고 제가 좀 그 정보원들이 획일적이지 않았나 추측해서, 제가 드라마 1회에서 받은 느낌을 단단히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전에 웹툰으로 유명하던 시절에도 미생이 무척 현실적이다란 찬사를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나서 전 웹툰 미생에서 드라마 미생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각색이 많이 된 거라면 제 불만은 드라마 작가분께도 가야겠어요.
2014.12.09 18:09
2014.12.09 18:20
네 옳으신 지적입니다. 웹툰과 드라마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단 애길 지인들에게 자주 들어서 제가 은연중에 드라마 미생이 원작자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린 것 같아요. 윤태호 작가 인터뷰를 읽은 걸로 미생 에피소드의 헛점을 확신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웹툰 미생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에요. 미생을 일독하지 않았기에 그 부분은 유보한 것이고요. 그렇지만 물휴지님과 영화처럼님,소부님이 지적하신 부분에 반성합니다...
2014.12.09 18:03
상사 다니는 친구중에 미생처럼 분위기 좋고 널널한 상사가 어디 있냐고 투덜댄 월화수목금금금 평균 12시에 퇴근하는 친구도 있고 5시 땡 하고 퇴근하는 친구도 있으니 일반적이라고 할 순 없어도 그런 회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 맞습니다. 분냄새니 조인트니도 실제로 직원들 모아놓고 여자는글렀다.애 낳으면 회사에서 싸그리 내다 버려야한다. 얘기하는 오너를 본 적도 있고 직원한테 화내다가 뺨싸대기 때리는 오너도 보았으니 미생이 특별히 비현실적이라거나 과하다는 건 모르겠네요. 5년동안 정시퇴근 한 번도 못한 개인적인 경험도 있고...
다만, 드라마에서 인생을 회사에 저당잡히고 야근이나 불합리한 대우들이 너무 당연한 듯 발생하고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런 것들을 회사 내부로 끌어들여서 자신들을 쉴드치는 (ex) 우리가 야근해도 미생보단 낫지. 박과장 같은 놈 없는 얼마나 축복받은 상사냐? ) 회사나 상사들이 제법 많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다고는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게 드라마의 탓은 아니고요. 뭐 물론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나 합리적인 근무환경 이런 이야기들 참 좋은 이야기고 문제의식 삼은 드라마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걸 드라마 하나가 부담해야한다는 건 좀.
2014.12.09 18:07
2014.12.09 18:13
2014.12.09 18:44
장그래의 비 정규직 에피소드를 보면 실제 비 정규직 분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싶습니다. 알고 봤더니 개인능력은 특출나고 실수할 것 만 같은 업무지시에서도 실수한 번을 안하고, 무역영어도 순식간에 외워서 버튼만 누르면 튀어나오고, 자신이 살아온 알짜같은 경험을 회사업무와 연결시켜 업무를 수행하고, 회사를 우리 회사라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조직원을 한 몸같이 여기는 비정규직도 계약기간 만료되면 당연히 잘리는게 요즘 기업문화세태라는 듯이 나오는데 어딘가에 정규직이 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버티고 있을 비정규직 분들은 자신의 직장상사들이 제발 이 작품을 안 보기를 하는 근심만 늘어난 듯 합니다. 자신의 경쟁자가 임시완이 연기하는 장그래가 되어 버린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2014.12.09 19:06
2014.12.09 19:15
2014.12.09 20:37
맨 마지막 문장이 참 좋습니다.
2014.12.09 21:56
2014.12.10 00:43
미생 웹툰 보려고 결제까지 했다가 기한 지나서 포기하고 드라마는 원래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사과식초님 댓글은 이상하게시리 팍팍 와 닿네요.
아마도 근래의 이슈까지 아우러 일갈한 문장때문인 듯.
2014.12.10 11:21
사과식초님 말씀에 공감해요. 지당한 말씀이시고요.
하지만 조금 덧붙이자면, 분명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사실이 혼재된 직장 생활인데 미생이 마치 직장 생활의 표본인양 요즘 직장 생활의 현주소인양 회자되고 호평 된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식초님께서 예로 들었던 군대의 치부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드라마가 화제가 된다고 해서 모든 장교들이 우리 군대는 양반이네 부하들을 좀 더 쪼아야겠어 ㅎ 하진 않죠. 그것은 이미 일부 특정 집단의 문제란 인식이 돼 있는 상태에서 다가오는 충격입니다. 로펌 드라마가 실제 사례들로 구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자극적이라 해도, 사람들이 변호사란 특정 직업군의 실상과 자기 직장을 비교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미생은 좀 달라요. 프리랜서나 예술가가 아닌 이상 직장인이라고 불리는 우린 모두 업종 불문하고 회사 조직에 소속돼 있죠. 우린 누군가에게 고용된 직장인들이고요. 제가 미생 신드롬이 불편한 지점은 극의 에피소드 자체를 전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생의 종합상사 이야기가 마치 요즘 직장인의 이야기처럼 그려진단 거예요. 이건 미생과 같은 종합상사맨들인 대우인터내셔널의 직원들이 최근 인터뷰한 내용에도 나와 있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이 많이 다르다고요. 현직 상사맨들도 에피소드의 오류를 지적하는 와중에, 국지적으로 산재된 극단적인 인물들과 인격모욕, 파행들이 직장의 일상으로 둔갑해서 받아들여진단 것이 미생 유감의 중점입니다.
제가 아는 주변과 제가 가진 정보 이외의 리얼리티가 이 세계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건 당연한 것이지요. 부당한 근무 시간과 위계질서 유지의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부조리함, 부적절한 급여 같은 보편적인 직장 문제는 모두가 인식하는 것이죠. 하지만 미생에 나오는 고성의 언어폭력과 신입을 향한 노골적인 냉대, 신입의 무조건적인 복종, 사무실 내에서의 드잡이 같은 매우 극단적인 현실이 극대화 되서 직장의 일상으로 드라마가 흘러간단 것.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또 다른 직장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 그것이 미생 에피소드의 경솔함이자 부작용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저희 팀장님이 드라마라고는 여명의 눈동자밖에 모르는 대표님께 미생 안 보세요? 하면서 권하시길래 뜯어 말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댓글 답니다.... :_:
2014.12.10 18:21
2014.12.09 19:38
미생이 80년대 무역회사 삘이다. 라고 한부분에서 그 뭐 이 무역상사라는 업계 자체가 아주 성황했던게 그 시대 아닌가요 미생 웹툰이 초기에 나왔을때 저도 그랬지만 다들 '시마부장'을 떠올렸고, 시마부장역시 상사맨으로 출세하는 과정을 그린 일본 비지니스 만화의 대표작이지요.
그리고 안영이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도 여자가 박하고 남자들이 대부분인 부서에서 안영이 만큼은 아니지만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손해본다는 이야기를 면전에다 하고 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직접하는 경우도 당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저런경우도 있는데 나는 별것도 아닌걸로도 못견뎠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사실..남에게 심한말을 하는 사람중 내가 어떻게 할수없는걸로 트집잡는 사람들은 그게 내문제가 아니고 본인문제잖아요.
지금보다 한살어릴때는 그런것들이 내문제인것 마냥 내가 없어져야 부서가 잘돌아갈것같이 찌질찌질거렸었답니다. 그리고 괜히 상처입어서 오래 가고 그걸로 인해서 어두워졌었구요. 미생 안영이 보면서 위로 받습니다.
얼굴에 서류는 안던져도 면전에 험한말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당해도 봤고, 같은 여자한테는 여직원대우보다 남직원이랑 동급인 대우 받는다고 날세운 말들도 들어봤습니다. 지금이라면 참을수 있었을텐데 그떈 참...
2014.12.09 21:44
2014.12.09 21:16
드라마 미생을 가끔 가다만 봤지만 세상은 요지경 급 이상한 일들은 정말 많죠. 저도 첫 직장생활할 때 (회사는 아니었지만) 본 진상들과 폭언,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때 도무지 믿질 않아 곤란했었습니다. 사회생활 좀 하면 이게 이해가 될까 했지만 사회생활 n년차의 n이 아무리 쌓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죠. 어떻게 저런 일이 있냐 싶은 게 드라마보다 훨씬 막나가고요. 미생은 의미있는 명대사를 많이 심어줬던데 사실 일반인들이 그런 멋들어지며 공감가는 말들을 내뱉진 않지만... 전 그 명대사가 좀 줄어야 리얼할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게 백프로의 현실이야, 하고 알려주려는 작품들이 별로 취향은 아니라 미생을 좋아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요. 전 마음이 답답해져 (저거 안다고, 아니까 고만 봐야겠다 식) 채널 돌리곤 했네요.
2014.12.09 21:59
미생이 판타지인건 어딘가 연결고리가 있어서 어떻게든 해결의 고리가 실마리가 생긴다는건데, 실제는 그냥 요지경이죠. 해결의 고리나 연결고리같은 뭐 실마리 같은건 없어요.
그냥 날씨가 더웠다가 추워지듯이 그냥 안좋은시기가 있으면 좋은시기가 있을뿐, 뭐가 어떻게 저떻게 되서 개연성있게 진행되는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것 같아요.
드라마는 그렇잖아요. A에서 일어난일이 B라는 일과도 연관이 생겨서 C라는 일이 해결이 되고 어쩌고. 현실에서는 그냥 A는 A B는 B C는C 일뿐이고 ABC가 모두 각자 자기 알아서 다 힘든 일의 세종류일뿐이고..
미생은 판타지가 맞아요. 거기서 일어나는 고난은 판타지고, 해결되는 극적인 부분이 정말 극이죠.
그래도 한번씩은 '좋은생각'이나 '샘터'나 '인간극장'이나 어디 사연에 나올만한 드라마틱한 일도 일어나다보니 리얼리티가 있기도 하지만 리얼한 현실에 비해서 결과만 좀 덜리얼한 그런 드라마랄까요.
2014.12.09 22:35
그 작은 중소기업 사장인 분에게 그러시지 그랬어요. 미생에 나오는 회사는 대기업인데 직원들을 그 대기업 수준의 연봉, 복지 챙겨주면 미생의 상사들처럼 해도 된다고.. 딱 자기한테 유리한 부분만 보려고하는 태도인데 이런 사람이 정말 현실에서 직원들을 상전처럼 대했는지도 의문이 드네요. 아무리 취업, 이직이 어렵다고 난리여도 많은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직원들의 잦은 이직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는데 능력있는 유망한 사원들이 대기업도 아닌 작은 중소기업에서 비인간적인 대우 받으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현실도 모르고 참 철이 없는 사장분 같습니다.
어딘가는 비슷한 캐릭터와 상황이 있을 수 있을테고 직장인으로서의 고민에 공감한 바가 크니까 미생이 인기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사 부작용 때문에 드라마를 만들지 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