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2 21:06
- 2019년작이고 런닝타임은 1시간 51분. 스포일러... 랄 게 없는 영화지만 암튼 결말은 안 적을게요.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다정한 부부가 나오구요.
귀여운 꼬맹이와 더 귀여운 강아지도 나오구요.
이렇게 신비로운 색채로 동화같은 느낌까지 주는 가족 모험 영화입니다.
보세요 원작자 이름도 무려 '러브'크래프트...
ㅋㅋㅋㅋ 썰렁한 드립 죄송합니다. 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본격 희망리스 호러 영화입니다.
- 영화가 시작되면 깊고 울창하며 그만큼 으시시한 숲의 풍경을 보여주며 뭐라뭐라 선문답 같은 걸 하는 나레이션이 한참 나옵니다.
그게 그치면 보여지는 모습은 물가에다 흰 말을 세워 놓고 주술 같은 걸 벌이는 마녀(?)의 모습. 음? 이거 사극이었나? 하고 당황하는 순간 매우 현대적인 차림새의 훈남 흑인 청년 한 명이 그 광경을 보고 당황하는 모습이 나오구요. 주술판을 벌이던 존재는 이 외딴 동네로 들어와 살기로 결심한 부모 때문에 삶에 짜증이 만발한 소녀였습니다. 이런 훼이크라니. ㅋㅋㅋ
그래서 배경은 그러합니다. 정말 외딴 곳에 딱 한 가족이 살고 있고 가족 구성은 아빠, 엄마, 큰 딸과 중간 아들 작은 아들. 큰 딸을 제외하곤 사는 데 별로 불만은 없는데 문제는 아빠입니다. 아니 사실 이 양반도 괜찮은 사람인데, 걍 사고 방식이 좀 쓸 데 없이 낭만적이고 (알파카 목장으로 새로운 가축의 시대를 열겠대요!) 아주 살짝 가부장적인 느낌이 있는 정도. 하지만 하필이면 싸이코 똘아이 연기하기 딱 좋게 니콜라스 케이지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게 좀...
암튼 잠시 후 이 집의 앞마당에 운석 하나가 콰콰쾅!!! 하고 떨어지고. 거기에서 신비로운 빛들이 뿜어져 나오구요. 그 빛의 영향을 받은 각종 사물, 생명체들이 괴상한 변이를 겪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출발합니다.
(시대극인 줄 알았지롱!!! 이라면서 막을 여는 사실상의 주인공)
- 아... 근데 사실 그렇게 할 얘기가 많진 않습니다.
일단 러브크래프트 원작이지만 보통 '러브크래프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분나쁜 해산물 고대신 같은 건 안 나와요.
이 영화의 몬스터는 외계에서 온 '색채'입니다. 제목 그대로 '색채' 그 자체가 괴물이고 적이에요. 집 앞마당에 떨어진 운석에서 뿜어져나온 색채들이 사실 외계의 생명체들이고. 이게 여기저기 옮겨 붙어서 변이를 일으키고 에너지를 빨아 먹고 결국엔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거죠.
이런 괴상한 개념의 침입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공들은 거기에 대해 어떤 대책은 커녕 인식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무너져가는 거죠. 그러니 결말도 뭐... 스포일러가 될 수가 없죠. 이 영화에 대한 호평들이 대체로 '러브크래프트 원작을 그대로 잘 살린 작품들 중 많지 않은 수작'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구요.
(너무나도 니콜라스 케이지스런 역할을 맡으신 니콜라스 케이지님. ㅋㅋㅋㅋㅋ)
- 보통의 러브크래프트 원작, 혹은 '영감을 받은'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영화의 전반부 분위기입니다.
마치 외계인 침입 & 신체강탈물 같은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그쪽 장르 영화들의 전형적인 전개나 분위기를 예상하며 보다보면 중반에 갑자기 빵! 하고 터지는 어떤 장면 이후로 '아 역시 러브크래프트 맞구나'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ㅋㅋㅋ 뭐 그런 식의 전개구요.
그리고 인물들 묘사 방식 같은 것도 좀 튀는 편이에요.
러브크래프트 원작 소설의 주인공들답지 않게(?) 다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들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뭐 그래봤자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들 앞에서 픽! 하고 바스라지는 면봉 같은 존재들인 건 마찬가지이고,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단한 드라마 같은 걸 부여 받은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소소한 디테일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첨가해서 이 영화를 보는 기분이 더더욱 불쾌해지도록 많이 도와줍니다. 고맙기도 하지
또 한 가지를 굳이 덧붙여 본다면... 그 '불가해한 존재'들의 직접 묘사를 피하지 않고 최대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차피 그래봤자 '빛깔'이긴 합니다만. ㅋㅋ '뭔가 엄청난 걸 보고 공포에 질리는 주인공 얼굴 클로즈업'으로 대충 넘어가는 장면 없이 계속해서 그 '색채'들과 그로 인해 변이된 주변 모습들을 그냥 다 만들어내서 보여주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편이에요. 다행히도 감독님 실력이 좋아서 그렇게 다 보여주는데도 깨는 느낌 없이 불쾌한 느낌은 제대로 받을 수 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되구요.
(인종을 초월해서 너무나도 제임스 프랑코를 닮으신 이 분... 영화로 보면 훨씬 더 닮았습니다. 믿어주세요.)
- 할 얘기가 많지 않다면서 또 너무 많이 떠들고 있네요.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 치고는 굉장히 멀쩡한 호러 SF인 척하는 전반부 덕에 러브크래프트 관심 없거나 싫어하는 분들도 잘 보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또 그러면서 원작 내용 잘 살렸다고 하고 (전 안 읽었습니다!) 또 영화 속에 팬들을 위한 떡밥들을 소소하게 열심히 박아 넣어서 (바로 위 짤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부터가... ㅋㅋ) 팬들도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것 같구요.
다 떠나서 그냥 정말 우울 끔찍하게 잘 만든 호러 영화입니다. 전반부가 아아주 쬐끔 느리다고 느낄 순 있겠지만 지루할 정돈 아니었구요.
기괴 흉칙 절망적 호러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보세요. 라고 끝내봅니다.
+ 맨 위에 장난으로 올려놨던 어린애와 개 짤을 보고 바로 눈치채신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넷플릭스 '힐하우스의 유령'에 나온 그 분 맞습니다. 지금은 벌써 위 짤만큼 자랐나 보네요. 더군다나 훈훈하게!!!
++ 이 글 적으려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우리 사랑크래프트님께서 원래 인종 차별 쩌는 나쁜 분이셨군요(...)
조동필씨가 러브크래프트 영화에 도전한다길래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아주 나쁜 생각을 갖고 프로젝트 진행중이실 듯. 하하.
+++ 이걸 보고 나니 '좀비오'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iptv에 있긴 할 텐데 1, 2, 3이 다 있을진 모르겠네요. 확인해봐야지.
++++ 그래서 이 아름다운 빛과 함께
추석은 불타 없어졌습니다. 음하하하하핫. 추석 따위 다 불 타 없어져버렷!!!!!!!!!!!!!!!!!!!!!!!!!!!!
2021.09.22 21:12
2021.09.22 21:24
역시 안 본 영화가 없기로 유명한 가끔영화님!
2021.09.22 21:28
왜 제가 보잘 것 없는 게시글을 올리고 나면 근접해서 비교되기 좋게 로이배티님 글이 올라오는 것일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불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9.22 21:56
과찬은 이제 그만... 하하; thoma님 글 좋은데 왜 그러십니까. ㅠㅜ
그렇죠... 명절은 불태워야 제맛입니다. 민족 고유의 전통 따위!!! 추석과 설 연휴는 냅두고 가족 상봉만 금지하는 법을 공약으로 내는 대선 후보가 있다면 소속 정당을 불문하고 한 표 던지고 싶습니다. 으하하.
2021.09.22 22:08
제가 믿거나 말거나 현실 세계에선 정말 칭찬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근데 얼굴 안 보인다고 사람이 이래 되는가?? 주의할게요!! ㅋㅋ
2021.09.22 21:35
2021.09.22 21:57
낚시 죄송합니다. ㅋㅋㅋ 근데 다 보고 나니 문득 '이거 가족 영화였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드립을 참을 수 없었...
음. 그런 걸 하고 있었나요? 거의 매일 한 번씩은 켜면서도 전혀 몰랐는데 뭔가 되게 손해보는 기분이네요. 지금이라도 찾아봐야겠어요. ㅠㅜ
2021.09.22 22:09
2021.09.23 12:59
아 제가 앱을 안 써서... 흠. 걍 티비에서 한 번 확인해보는 걸로. ㅋㅋ
2021.09.23 00:11
감독이 20세기에 <더스트 데블> 만들었던 양반인데, 헐리웃에서 경력 망한 후 필모가 영 지지부진했는데, 이 영화로 나름 재기?에 성공했다 합니다.
차기작도 러브크래프트 원작 영화라지요.
그리고 조던 필의 러브크래프트 프로젝트는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일겁니다. 이미 1시즌은 공개되었고, 한국(전쟁)도 주요 배경으로 나오지요.
2021.09.23 11:48
2021.09.23 12:52
아... 이건 또 무슨. ㅠㅜ
저번에 브라이언 싱어도 그렇고 이 양반도 그렇고 헐리웃에 이런 양반들이 정말로 많은 건지 제가 자꾸 그런 사람들 작품에 끌리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네요. ㅋㅋ 설명 감사합니다. 이젠 영영 다시 작품 접할 길이 없어진 사람이었네요. 아 정말 재능 아까워라...
2021.09.23 12:50
아. 제가 이미 예전에 듣고 어디서 볼 수 있나... 하고 찾아봤던 그 시리즈였군요. ㅋㅋ 반응은 좀 미적지근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보고 싶지만 일단 한국에서 한글 자막 달린 멀쩡한 버전을 합법적으로 볼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더라구요. 말씀대로 에피소드 제목들 중에 '대구'가 튀어나와서 더 궁금하기도 했어요. 설명 감사합니다.
2021.09.23 00:15
저도 원작 전혀 모르는데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 물론 다 보고난 직후에는 멘탈이 좀 나가는 기분도 있지만 되새겨보면 참 재밌게 봤다는 소리가 나오더라구요 ㅎㅎ
니콜라스 케이지는 커리어 후반에 이미지, 위상 깎아먹는 별볼일 없는 작품들도 많이 나왔지만 간혹 맨디나 이 작품처럼 괜찮은 B급 출연작을 몇개 건지기는 했네요. 올해 공개됐던 피그(돼지 맞습니다...)라는 작품에서 간만에 제대로 열연을 했다는 평이 있더군요. 국내 개봉도 확정이라 기대중입니다. 시놉시스부터 심상치 않던데
2021.09.23 12:54
근래에 제가 본 니콜라스 케이지 영화가 '맘 앤 대드', '맨디' 그리고 이 영화 요렇게 셋 뿐인데 셋 다 아주 만족스럽게 봤어요. 호러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셋 중에 안 보신 게 있으면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을 정도. ㅋㅋ
어디 빚 진 사람처럼 아무 영화나 마구 찍어대는 와중에도 각본/기획 괜찮은 건 또 잘 골라내서 출연하는구나 싶더라구요. 요즘 비슷하게 비교되는 '리즈 시절 지나 아무 영화나 막 출연하는 왕년 빅스타들' 중에 그래도 가장 폼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게 니콜라스 케이지인 듯.
2021.09.23 12:26
러브크래프트만큼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널리 알려지고 끊임없이 다시 언급되면서도 그런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마저도 '그러니까 요즘 시대에는 안 맞아/읽을 필요 없어'라며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결함을 파고들면서 끊임없이 다시 쓰기를 시도하게 만드는 작가도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는 러브크래프트 다시 쓰기가 러브크래프트 팬질의 기본이 되어서 한국에도 관련 창작물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고 한국 소설가들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러브크래프트 다시 쓰기 기획에 뛰어드는 판이니까요. (작년에는 알마 출판사에서 총 8권짜리 러브크래프트 다시 쓰기 프로젝트를 선보였고, 지난 달에는 들녘 출판사에서 제주설화를 러브크래프트식 코스믹 호러로 재해석한 단편집도 나왔습니다.)
말씀하신 조던 필의 러브크래프트 영화란 위에서 •‿•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아니라 HBO 시리즈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인데요, 이미 완성되어 미국에서는 작년에 방영됐습니다. 조던 필은 J. J. 에이브럼스 등과 더불어 제작 책임 중 한 명인데, 물론 그의 이름값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에는 그보다도 원작이 맷 러프라는 백인 남성 작가가 쓴 동명의 (역시나) 러브크래프트 다시 쓰기 소설이라든가(드라마가 한국 스트리밍 서비스에 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원작 소설은 번역 출간!), 크리에이터인 흑인 여성 미샤 그린이 이전에 남북전쟁 당시 노예 해방 비밀 결사 조직이었던 지하철도에 관한 TV 시리즈 [언더그라운드]의 크리에이터였다든가 + 지금은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툼레이더] 속편 각본을 쓰고 있고 그걸로 연출 데뷔도 할 예정이라든가 + HBO 맥스 용으로 제작할 DC의 블랙 카나리 단독 영화도 개발 중이라든가… 하는 점이 조금 더 중요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이상, 인종차별주의자 러브크래프트를 비판하며 사랑하는 것은 조동필 씨만의 새로운 접근법이 아니며 이미 다른 확신범^^;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점을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러브크래프트 팬의 노파심 섞인 스피드왜건 짓이었습니다.
2021.09.23 13:02
항상 제가 모르고 대충 막 적는 부분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근데 러브크래프트 작품들이 뭔가 좀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일단 유명세에 비해 그냥 읽기엔 별로 재미가 없고(...) 근데 그 세계관이나 분위기 같은 건 워낙 독특하고 매력적이고. 그래서 그 많은 작가들이 그냥 놓아주지 못 하고 '내 스타일대로 다시 써 보겠어!' 이런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닌지. ㅋㅋ
2021.09.23 13:23
맞아요. 솔직히 이야기 구성도 엉망인 경우가 많고 문장은 아예 대놓고 '러브크래프트는 문장을 못 씀'이라고 놀림 받는 수준이고요. 심지어 그가 만든 이름난 초자연적인 존재들마저도 막상 러브크래프트 문장으로 읽고 있으면 '그래서 뭐... 어떻댜는겨...;;' 잖아요. 끝내주는 세계관이랄까 관점을 제시하긴 했는데 그게 금세 동료/후대 작가들이 돌려 쓰는 오픈 소스가 돼 버렸다는 게 결국에는 러브크래프트 본인에게도 행운이었다고 해야 할 거예요.
2021.09.23 14:09
네 그래서 팬과 유명세 숫자에 비해 소설 읽어봤다는 사람은 드문 희한한 작가이기도 하구요. ㅋㅋ
저도 이 분 전집이 한국에 처음 나왔을 때 살까... 하고 한참 망설이다 안 샀는데. 아직도 살 엄두는 안 나요. 읽다 포기하고 숙성시킬 것 같은 느낌.
2021.09.23 13:11
러브크래프트 단편집 읽었을 때 [크툴루의 부름]같은 괴생명체에 이름이 붙고 형태가 구체화된 괴담보다 [우주에서 온 색채], [현관 앞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줘서 파멸시키는 그런 이야기가 훨씬 오싹하고 재미있더군요. 이 영화는 듀나님 리뷰 읽었을 때부터 나중에 보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기대가 좀 되네요.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가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둘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21.09.23 14:10
이토 준지는 집에 호러걸작선 전집이 다 있어요. ㅋㅋ 디테일은 기억이 안 나는데 말씀하신 걸 보니 오랜만에 한 번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2021.09.23 18:49
2021.09.23 19:12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