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씨 오는 날 (2014)

2014.12.03 00:12

DJUNA 조회 수:6047


[민우씨 오는 날]은 강제규가 2014년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뷰티풀 2014]라는 다국적 옴니버스 영화를 위해 만든 단편입니다. 옴니버스 영화 전체 대신 강제규의 단편 하나만 국내 영화제 여기저기에 소개되다가 소규모로 개봉되는 거죠.

한국전쟁 이후 북에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여자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뒤늦게 결혼도 하고 그 사이에서 딸도 하나 낳은 모양인데, 80대 할머니가 되어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사는 주인공은 여전히 첫번째 남편과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남편이 평양에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같이 가자고 합니다.

세련됨 따위는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단 내용만 봐도 낡았죠. 요새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망부석 같은 애정을 그릴 때에도 그 뒤의 인생을 그렇게 무시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요새 사람이 뭐야. 임권택만 해도 이 소재를 다룰 때엔 상당히 냉정했죠. 하지만 강제규는 이 영화를 신파의 커다란 붓으로 그립니다. 엄청 감상적이고 이산가족과 분단의 비극을 다룰 때는 또 엄청 노골적입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강제규는 여기에 조금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넣습니다. 주인공 연희의 배역에 배우를 두 명 캐스팅했어요. 문채원과 손숙요. 정상적인 영화라면 현재 파트에 손숙을 넣고 회상 파트에 문채원을 넣겠죠. 하지만 그는 회상 파트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현재 파트에 문채원을 넣습니다. 그리고 제3자의 관점이 주가 될 때만 손숙을 보여줘요.

80대 치매 환자를 분장 안 한 20대 배우가 연기하고 있으니 주제와 소재를 팬시화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결과가 좋습니다. 일단 캐스팅 때문이죠. 문채원은 아직 테크닉이 완벽한 배우는 아니지만 연희 역에는 이상적입니다. 특별히 기교를 넣어 노인 연기를 하는 건 아닌데, 이 배우의 느릿느릿 굼뜨면서도 정직한 이미지가 영화에 딱 맞아 떨어지는 거죠. 노인네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위화감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은 척 봐도 나이 드는 것까지 까먹고 한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사람처럼 보여요.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손숙 파트가 더 '노인 연기' 같아 보입니다.

엄청 구닥다리이고 분명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그래도 울림이 꽤 있는 영화입니다. 연희가 저 상태에서 간병인 없이 돌아다닌다는 오싹한 설정을 제가 순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그 감흥은 더 컸겠죠. (14/12/03)

★★★

기타등등
카메오들이 많습니다. 유호정, 윤다훈, 김수로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죠. 전 지나치게 많은 거 같습니다. 유호정 하나로 충분했을 거 같아요. 나머지 사람들은 큰 의미도 없고.


감독: 강제규, 배우: 문채원, 고수, 손숙, 유호정, 윤다훈, 김수로, 다른 제목: Await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40241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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