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1 14:41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제목 덕분에 나름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죠.
결론적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헬조선 사회를 낱낱이 파헤치자 뭐 이런 내용은 아닙니다. 그냥 적당히 그런 부분들을 터치해주면서도 결국은 '나 자신에게 맞는 기준의 행복'을 찾으려는 한국 청년세대 중 한명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살기 힘들지만 그렇게까지 헬은 아니고 워홀을 떠난 뉴질랜드가 주인공 계나에게 조금 더 나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파라다이스는 아니다는 식으로 영화가 나름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이에 어떤 관객들에게는 이도저도 아니고 밍숭맹숭한 톤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습니다.
그런 애매할 수 있는 단점들과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오가는 살짝 정신없는 전개를 덮어주고 이끌어주는 것은 주인공 계나를 연기한 고아성 배우의 스크린 존재감, 장악력입니다. 18년 전(...) '괴물'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후로 순식간에 톱스타로 발돋움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부침도 없이 꾸준히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왔는데 아직 한창 젊은 나이임에도 그 내공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안정적이고 단단한 강함이 확 느껴지더군요. 별다른 현재의 심정을 설명하는 대사가 없이도 큰 눈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표정만으로 설득해내는 연기에 영화가 한시도 지루하게 느껴질 틈이 없었습니다.
조연 캐릭터들이 다소 상투적, 기능적이라는 지적들이 꽤 있었는데 제가 보기엔 분량에 비해 각자 나름 잘 다듬어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 각자의 상황,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 청년들을 다양성있게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계나의 가족들도 하나 하나 디테일이 살아있게 느껴졌구요.
처음에 적었듯이 뭔가 강력한 헬조선 비판을 원하셨던 분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지만 너무 암울할까봐 꺼려지셨던 분들께는 오히려 걱정말고 감상해보시라고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 고아성 배우의 팬이시라면 이미 보셨을테고 어느정도 호감만 있으셔도 꼭 보시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네요. VOD로 나온 걸 11000원에 봤습니다.
---------
감상 후 작품에 관한 여러 반응들을 찾아보는데 제목이나 시놉시스, 예고편만으로 외국병이 들었네, 진짜 고생을 안해봐서 모르네 , 외국은 천국인줄 아냐? 이런 표현들이 보일 때마다 참 답답하고 안타깝더군요. 꼭 여기가 말그대로 지옥이어야지 떠날 자격이 있고 꼭 천국이어야 이민을 가는 게 납득이 되는지 왜이렇게 극단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작중 주인공 계나의 처지가 완전 최악이거나 그런 수준까진 아니거든요. 관점에 따라 저정도면 안정적으로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꼭 상대평가로 자기를 통제하고 합리화하면서 살라는 법도 없고 지금 내가 불행한데 위험부담도 본인이 부담하는 거고 자기 돈과 시간 투자하겠다는데 저렇게 비난, 욕을 해야하나 싶어요. 똑같은 저임금에 힘든 일을 하더라도 내가 좀 숨이라도 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에 살고싶은 정도의 행복은 추구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겠죠.
2024.10.01 14:58
2024.10.01 16:47
원작에 관해 좀 찾아보니 5년의 기간을 다루는데 영화에서는 3년으로 줄였더군요. 저는 마지막에 그런 결론이 충분히 납득은 됐습니다. 경험을 쌓고 돌아와서 한번 더 상황을 보고 결심한거라고 봐야겠죠.
사실 주인공이 한국에서 겪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더 파고 들어갈 수 있고 그런 재료도 다 깔아놨으면서도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원작자, 감독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봤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좀 더 계나가 하는 일에 포커스가 맞춰졌으면 하는데 남성들과의 연애가 더 비중이 있는 느낌인 것도 조금 아쉬웠구요.
저는 동생 역할 배우분이 원래 뮤지션인지도 몰랐네요.
2024.10.01 15:48
'상대평가로 자기를 통제하고 합리화하면서 살라는 법도 없고 지금 내가 불행한데 위험부담도 본인이 부담하는 거고 자기 돈과 시간 투자하겠다는데 저렇게 비난, 욕을 해야하나 싶어요. 똑같은 저임금에 힘든 일을 하더라도 내가 좀 숨이라도 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에 살고싶은 정도의 행복은 추구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겠죠.'
동의합니다.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의 종류도 다르고 말이죠. 또 좌절감이 컸다면 머물던 곳을 떠나서 전혀 낯선 곳에서 다시 출발해 보겠다는 것도 응원해 줄 일이지 욕할 일일까 싶네요. 저는 올려 주신 예고편만 봤지만요.ㅎ
2024.10.01 16:48
그냥 쟤는 저러고 사는갑다 하면되지 무슨 불법 or 비도덕적인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날선 비난을 하는지 그냥 사회가 날이 서있어서라는 것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2024.10.01 23:45
고아성씨 좋은데 성인이 된 후로 뭔가 필모가 확 뜨지는 않는 느낌이고. 그래서 아쉽네... 하고 다시 활동을 확인해 보면 또 의외로(?) 상당히 활동 잘 하며 지내고 있고. 그래서 항상 제겐 애매하고 오묘한 느낌입니다만, 이번 작품은 아쉽게 된 것 같네요. 말씀하신 억울한 이슈들 빼고 봐도 평가가 그렇게 좋지는 않...
아니 근데 지금 32세라니요. 도대체 왜요. 왜 고아성이 벌써 30대인 겁니까. 뻘하게 갑자기 막 화가 나네요. ㅋㅋㅋㅋㅋ 이놈의 세월... ㅠㅜ
2024.10.02 18:28
괴물 때 주목받는 아역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또 차세대 거물 여배우 이런 기대치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실망스럽다고 하기도 그렇고 지금까진 나름 솔리드한 커리어라고 볼 수 있겠어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코로나 시기 개봉했던 국내 영화중 흥행이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놀랐을텐데 32세라니 저도 막 화가 나려고 하네요? ㅋㅋㅋ 괴물에서 시원한 맥주 마시고 싶다는 대사를 치는 당돌한 중학생이었는데 이젠 영화에서 술마시고 담배피는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요.
결말이 다소 생뚱맞고 급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가족은 안타까워요.
동생역할의 김뜻돌씨가 부른 엔딩곡이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