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1 01:36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판은 매체에서의 호들갑에 비해 좀 지루하게 봤던 기억입니다. 그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온 드라마를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네요. 이걸 수퍼히어로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엄청난 변종이라는 수식이 붙어야겠어요. 수퍼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흑인 수난에 관한 사회비판 드라마군요. 대체 역사물스럽게도 했구요. 수퍼히어로물에 흑인 수난을 끼얹었다기보다는 흑인 수난물에 수퍼히어로물을 끼얹었다고 봐야겠네요. 덕분에 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나르코스' 같이 다큐실화에 가까운 밀도를 가진 멜로 드라마 같은 뉘앙스가 훨씬 강해요. 히어로물이 다른 장르를 섞는 건 보편적인 방식이긴 하지만서도 이건 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외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네요. 그래서 그 뉘앙스가 막강해지는 중반 이전에는 좀 지루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섞여 있어서 재밌는 지점들이 많았고 마지막에는 비행선에 레이저광선에 이런 것들이 잔뜩 나와서 수퍼히어로물스럽게 마무리를 한 것이 만족스러웠습니다.
흑인 수난물과 더불어 자경단과 익명성, 강대한 힘을 가진 엘리트의 일방적인 실력행사에 의한 질서 유지에 관한 이야기이도 하구요. 이렇게 장르물인척 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에 더 한눈이 팔려있다는 점에서는 얼마전에 아주 재밌게 본 '어둠의 미사'와 비슷한 면이 있네요. 그래도 어둠의 미사는 장르적 장치들도 꽤 잘 심어둔 편이었거둔요. 왓치맨은 장르적 재미보다는 작가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무게가 훨씬 실려있었습니다. 저는 노골적으로 치고 박고 생각 없이 활극이 벌어지는 걸 더 좋아해서인지 시리즈 전체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너무 고상한 느낌이기는 했어요.
사회고발 수사물마냥 진중하고 현실적인 뉘앙스가 워낙 강해서인지 초현실적인 장치들이 나올 때는 오히려 당황스럽더군요. 좋게 보면 주제와 호응하는 요소겠지만 장르적으로는 감질나서 못마땅입니다. 익명성에 대한 지적은 요즘 인터넷 세상의 난장이 떠오르는 대목이었어요. 장르적으로는 안티 '히어로물'이기도 하더군요. '안티 히어로'물 말구요. 이점에선 '수퍼히어로물'이라는 게 굉장히 미국적인 장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타 등등 정치적인 상징이라든가 이런저런 기호들이 수없이 많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점이 말 할 거리가 많은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석하면서 지식 자랑하기도 딱 좋구요. 스토리텔링 측면에서도 상당한 고수의 냄새가 나죠. 기본 줄기는 고전적인 정도로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수많은 복선과 서브 스토리를 현란하게 짜넣는 솜씨가 상당하네요. 그걸 또 영화적으로 풀어낸 것도 그렇고 누가 봐도 못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렵겠네요. 그리고 상당한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이걸 보고 나니까 한국발 컨텐츠같이 계층이나 계급 얘기를 하는 영상물이 서구권에 왜 없는지 알겠더라구요. 일단 인종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급해서 거기까지 들어가기엔 여력이 없겠다 싶구요. 이것만 건드려도 사실 계급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니까요.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권에도 계층 위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급한 문제들이 더 많아서 그렇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고 안심각한 것도 아니니 한국발 컨텐츠가 나름 틈새시장을 공략한 꼴이 된건가봐요. 한국은 명시적인 계급이나 계층 구분이 그래도 아직은 없어서 이런 걸 다룰 때도 정서가 좀 다르기도 하구요.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캐릭터 같은 사람을 작가가 굉장히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다루어지더군요. 동시에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어쨌든 후반부에 멘탈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니 통쾌하면서도 나쁜 놈인데 짠하기도 하더라구요.
로이배티님 초강추작이라 안볼수가 없었네요. 히어로물이라 더 그렇구요. 굉장한 밀도를 자랑하는 드라마로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이걸 보니까 영화판 왓치맨이 궁금해지네요. 예전보다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웨이브 100원 주고 가입했는데 HBO컨텐츠를 쌓아두고 있었군요. 디즈니 플러스보다는 이쪽이 더 보물창고 같던걸요. HBO 정식 입성 격하게 기대합니다.
2021.12.01 03:19
2021.12.01 08:17
2021.12.01 08:40
토종 OTT의 힘은 HBO 컨텐츠!!! (어라?)
그래도 어쨌거나 시즌 같은 폐급(...) 서비스를 체험해보고 나니 웨이브 정도면 아주 준수한 서비스가 아닌가. 이런 뻘생각을 해 봅니다. ㅋㅋ 근데 아무리 그래도 화질은 좀 신경 써주지... 올해 나온 최신 HBO 드라마도 1080p로 서비스하는 건 좀. ㅠㅜ
2021.12.01 09:03
웨이브는 얼마전부터 상당수 모바일기기에서 외국컨텐츠가 재생이 안되는 것 같더군요. 제 경우는 스마트 폰에서는 재생이 되는데 레노버 태블릿에서는 안돼요. 연결이 지연되고 있으니 잠시후에 이용해보시라는 메시지만 자꾸 나오길래 뭐지 했더니 DRM문제로 보안규격에 안맞는 기기에서는 재생이 안되도록 막아놓았더군요. 그걸 웨이브의 안내를 통해 안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알게 되었어요. 웨이브 측의 반응이 짜증나더라고요. 이유가 그랬다면 이기기에서는 재생안됨이라고 안내를 하든지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름없는 안내로 소비자를 기만하다니. 웨이브쪽에 문의를 넣었더니 해결책을 친절히 안내해주시더라고요. 기기를 바꾸시라고. ㅋ HBO맥스마저 들어오면 소위 토종 OTT들은 살아남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2021.12.01 10:04
제가 그거 직접 체험했습니다. ㅋㅋ 티비로 편하게 좀 보려고 엑박 브라우저로 로그인 했더니 재생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빡세게 검색을 해봤더니 어딘가의 어느 분께서 'HBO 컨텐츠는 엑박 재생 안됩니다' 라고... 이게 무슨 괴이한 서비스인지. ㅋㅋㅋㅋ
토종 OTT는 아마 웨이브 정도만 남지 않을까요. 그래도 이동하면서 티비를 라이브로 본다는 외산(...)들은 따라할 수 없는 역할이 있어서 아예 없어지진 않을 것 같아요.
2021.12.01 09:08
저도 장르적 재미가 조금 부족한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그게 메시지의 무게와 톤이 안맞는다고 느꼈을까요. 그래도 레지나 킹은 09년에 나온 사우스랜드때 눈에 콕 박힌 배우인데 그때와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50줄에 들어섰다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정도로 훌륭히 역할을 소화한 것 같아요.
2021.12.01 09:24
'왓치맨은 장르적 재미보다는 작가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무게가 훨씬 실려있었습니다.' <- 공감합니다. 저도 보면서 이런 느낌에 좀 아쉽기도 했는데, 마침 이것 직전에 본 게 이거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설파하던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여서 그 아쉬움이나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왓치맨'을 먼저 봤다면 아마도 좀 덜 재밌게 보지 않았을까 싶구요.
오지만디아스는 그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는 아주 격렬히 미움받는 가운데 캐릭터 자체는 예쁨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종일관 본인 입장에서 최악의 일만 당하며 조롱당하는 캐릭터인데도 나오면 나올 때마다 웃기고 귀엽게 보이니 말입니다. ㅋㅋ
그리고 맞아요. 사실 디즈니 플러스 쪽으로 살짝 솔깃솔깃하던 중이었는데 웨이브 HBO 컨텐츠들을 보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이 쪽이 훨씬 더 제 취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