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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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가 넷플릭스에 뜨길래 잽싸게 봤습니다.
감독의 평판이 평판인지라 대단한 작품성을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감독의 전작들을 일찌기 보고 들은바가 있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중에는 그래도 제법 제대로 만든 것 같았습니다.
숱한 악평과 혹평에도 불구하고 제가 보기엔 블록버스터로서 손색도 없고 역사적 고증도 잘 된 편이고요.
추억의 아케이드 게임 '1942년'의 영화버전 같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뜬금 없는 건 그렇게 매우매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뽕 영화를 만들어놓고
마지막에 미드웨이에서 싸운 모든 미군과 일본군 해군들에게 이 영화를 바쳐버리더군요.
심지어 중국 자본을 투자 받아서 만든 영화인데요. 배경을 살펴보니 감독이 투자 유치를 못해서 어려움을 겪던 중에 중국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려달라며 투자를 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게 사실이면 제대로 뒤통수 때린 영화네요.
태평양 전쟁에 끌려온 일본군 사병들도 국가 폭력의 희생자라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있어도
두시간 내내 그렇게 희생당한 미국인들 보여주고 일본군의 비인간적 행위와 미군 주인공들의 영웅적 서사를 멋지게 보여준 후에 - 심지어 영화를 미군/일본군에 바치기 전에 일본군이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중국인을 죽였는지를 자막으로 보여줍니다. - 추모사는 연결이 전혀 안됩니다. 만행을 고발한 뒤 그 적에게 뜬금없이 영화를 바쳐버리니까요.
일부 유저 혹평은 이 부분때문이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평가는 어떤가해서 찾아봤는데 여기에 대한 논란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삭제되었나 봅니다. 이런 자막이 한국에서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텐데 나무위키 등에도 언급이 없는걸 보면요. 아니면 흥행이 폭망해서 본 사람이 많이 없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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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 코벤은 미국의 미스테리 작가라고 합니다.
넷플릭스의 영국판 미스테리 두 편을 본 뒤 매료되어 할란 코벤 작품으로 만든 모든 시리즈를 찾아봤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매우 매우 무겁고 어둡고 유머나 밝은 분위기는 단 1그램도 없는 스릴러 서스펜스 시리즈입니다.
그런데 각 에피소드를 매우 적절한 순간에 끊어 순식간에 모든 에피소드를 몰아보게 만듭니다.
대체로 공통점은 곤경에 처한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연관된 어른들의 이야기로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진 쇼킹한 비밀들을 하나 하나 파헤쳐가며 진행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꼬인 스토리와 예측 불가 진실도 특징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복잡하고 사람들은 다면성이 있죠. 다만 모든 이야기가 매우 무겁고 어둡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영국판 스토리(Safe, The Strange)는 영국스럽고 스페인판 스토리(The Innocent)는 스페인스럽습니다. 영국판은 인물들이 매우 담담하고 폭주하는 감정도 잘 절제되어 표현되는데 스페인판 드라마는 K 신파 저리가라 할 정도의 S 신파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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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브레인은 3화까지 봤습니다. 다음 에피소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이야기 한 편은 여기서 완결됩니다.
넷플릭스는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애플도 그런가? 이 드라마를 보니 아닌 것 같아서요.
애플은 자사 규제가 꽤 강해서 책 한권 분량의 약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못 만듦의 끝판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신다면 애플 TV+의 닥터 브레인의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전형적인 K드라마식 원작의 재구성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이상한 점은 너무나 이질적인 미장센입니다. 경찰을 경찰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이상하게 'ST'라는 로고를 사용하거나 대기업 바이오연구실이 전혀 대기업답지 않다거나 하는 것도 그렇고요. 책임자도 아닌 대기업 연구원이 영화 기생충에 나오면 어울릴 것 같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거나 과학수사 부검실과 시체 안치소가 너무 미국스럽다거나 하는 것들요. 이건 감독이 의도한 것일까요 아니면 애플이 이런 것까지 소소하게 간섭한 것일까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 브레인은 동사의 화제작 '파운데이션'에 비하면 몰입감이 훨씬 크고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파운데이션은 뭔가...돈은 엄청 들였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원작이 워낙 스케일이 크고 복잡한 얘기인지라 원작을 읽은자만 이해할수 있다면 원작이라도 읽겠는데, (읽어본 사람이)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까요.
2021.11.22 15:09
2021.11.22 19:43
미드웨이는 당시에도 그냥 전쟁 구경하는 맛으로 보면 평타는 되는 작품이란 평이었던 걸로. 근데 역사 상식도 좀 있어야한다고 해서 안 봤었죠. 전 일자무식이라. ㅋㅋ
할란 코벤 작품이 뭐가 있나... 하고 찾아보니 '영원히 사라지다'랑 '숲'이 그 분 원작이군요. '숲'은 전부터 언젠간 봐야지... 하고 찜해놨던 건데. 순위를 좀 당겨줘야겠습니다.
닥터 브레인은 첨 들어보는 작품인데 위에 있는 폴라포님 댓글 보니 이것도 웹툰 원작이군요.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어지간한 장르물 드라마들은 다 웹툰이 원작인 것 같아요. 한국 사정이 출판 만화 다 말아 먹고 웹툰에 올인하면서 이게 과연 될까... 싶었는데. 참으로 집요한 민족이다 싶습니다. ㅋㅋㅋ 칭찬이에요. 한국에선 오랜 세월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하던 장르물 시장이 웹툰 덕에 이렇게 살아나네요. 좋습니다.
2021.11.22 22:10
닥터 브레인은 소재 차제는 궁금한데 죽은 사람의 뇌에서 뇌파를 읽는다는 설정이 못내 마음에 걸리고..
결정적으로 "박사과정생"인 것 같은데 박사를 사칭하더군요!!! (닥터..) 허허허...
웹툰은 몇회 읽어봤는데 뭔가 헐리웃 기성 오컬트무비에 나오는 소재/묘사들을 연상케하는.. 김지운 연출이니 언제나처럼 매끄럽긴 할 것 같아요ㅎ 근데 미장센이 이질적이라시니 왠지 모르게 격하게 끌리는군요!!
+ 웹툰 그린 작가는 홍작가라고.. 예전에 현혹이라는 뱀파이어물을 그린 작가인데.. 전 그쪽이 영상물로 나온다면 오히려 더 궁금하더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