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을 봤습니다.

2021.11.14 12:34

thoma 조회 수:461

1.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Martin Ede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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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아주 오래된 영화 느낌인데 배경이 되는 시간은 멀게는 50년대에서 가깝게 70년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지나가는 차, tv를 보면요.

누나 집에 얹혀 사는 마틴은 선원이면서 여가엔 나폴리의 흔한 잘생긴 건달류의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중산층 가족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 집에서 문화적 충격인지 사랑인지 아마도 구분이 안 되었을 것 같은데, 여튼 그 딸과 사랑하게 되고요. 전형적인 이야기죠. 개츠비와 데이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광고를 극중 대사인 '당신처럼 말하고 싶고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다.'를 이용한다든지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펜 하나로 세상과 맞선..' 이런 식으로 하던데 사랑은 작가로서의 삶을 깨달아가는 계기일 뿐 개츠비처럼 데이지에 모든 가치를 때려 넣어 인생 목적이 되어 달리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딱 중반에 글이 드디어 잡지에 실리고 살림살이 희망의 빛이 점점 번지는 과정에서 애인과는 관계가 망가집니다. 처음엔 당신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싶었겠지만 자기 위치와 자아를 찾아 나가며 함께 공유할 지점을 잃게 됩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조롱과 무시와 자신의 무지와 싸우며 드디어 작가가 되었는데 영화 후반부 성공한 주인공은 매우 이탈리아스러운 넓은 저택에서 고급스런 옷을 입고 이는 거뭇거뭇 썩은 채 자신을 방치하고 절망해 있습니다. 

이 인물을 괴롭히는 것은 글을 쓸수록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쌓고 사상과 교양이 드높아질수록 현재 작가인 자신과 원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유리된다고 느낍니다. '작가'라는 존재가 가지는 모순인 것 같습니다. 언어를 파고들수록 그 언어로 대변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삶과 멀어져 가는 것이요. 작가로 성공할수록 자기자신의 모습과도 멀어지니 무엇으로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


작가의 출신 계층이나 부모의 소득 정도에 대한 통계가 있을까요? 제가 어릴 때부터 알고 좋아했던 세계문학 작가들 대부분이 부모가 전문직인 중산층이거나 본인들은 대부분 고학력자가 많았습니다. 가난한 집안에 학벌이 신통찮은 경우에는 그것이 특기사항이 되기도 하고요. 이 영화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능력들이 있고 그걸 갖추기 위해선 우선 학업을 마쳐야 한다고 애인이 조언합니다. 마틴이 학교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가족들이 모른척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작가가 되는 과정이 그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고 순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출신으로서 그 목표를 이루려면 심한 고생과 결의가 따르고 심한 고생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왜곡시키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원해 줄 사람이 없는 이가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치루어야 할 노력과 시간이라는 문제. 그런 사람이 고생 고생하고 작가가 되었다 해도 생계가 해결되는가의 문제. 그리고 마틴 에덴처럼 성공해서 생계 해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마는 문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데 요즘은 양상이 과거와는 좀 달라졌을까요?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감독이 좋아한다는 무정부주의자 실존인물 필름을 시작으로 해서 인물이 쓰는 작품 내용이나 회상이나 머릿속 이미지들이 흑백화면으로 이어져 제시되는 점입니다. 오래된 이탈리아의 자료화면들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대사없는 자료필름들이 영화에 고전적인 품위를 부여합니다. 

잭 런던의 동명의 자전적인 소설이 있다고 합니다. 

해안에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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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왓챠에 '웨스트 월드'라는 세 시즌짜리 sf 가 있던데 달릴만 할까요? 오프닝이 아주 멋지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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