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극장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주제로 해서 한명의 관객으로서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몇분이나 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인터뷰를 드럽게 못한 건 아닌가 너무 걱정만 되고 후회가 막심하네요. 왜 인터뷰가 끝나서야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떠오를까요? 두세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한시간만에 끝나서 제가 괜히 바쁜 티라도 낸 건 아닌지, 아니면 이야기할 거리가 떨어진 인상을 드린 건 아닌지 좀 초조합니다. 막상 인터뷰가 끝났다고 하니까 이게 끝인가요...? 라고 되묻고 싶어지더군요. 전 더 이야기해도 상관없었는데.


인터뷰의 퀄리티와 무관하게, 저에게 나름 의미가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로만 영화 전체를 채우는 왕빙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나 다른 작품들을 지금 와서 다시 보면 더 예민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전에는 왕빙이 왜 그렇게 인터뷰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인터뷰만으로도 어떤 진실을 가려낼 수 있고 자신은 진실만을 담을 거라고 여러번 이야기했었는데 그 일화들을 들을 때는 좀 반신반의했거든요. 인터뷰라는 걸 해보니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좀 알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라는 부분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요. 아마 너무나 말하고 싶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인터뷰라는 것은 절대 감독의 지시나 짜맞추기를 통해 담을 수 없는 진실 같은 것이 아닐까 좀 생각하게 됩니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진실된 공기 같은 게 분명히 있어요. 그걸 어떻게 담느냐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건이겠죠.


동시에 인터뷰라는 것이 진실될 수 있는 것인지 인터뷰 틈틈이 고민도 해보곤 했습니다. 이 인터뷰에는 사전 질문지 같은 게 없어서 감독님께 그 이유를 물어보니 미리 준비한 대답은 뭔가 인터뷰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답해주시더군요. 그러니까 즉흥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질문을 받은 사람은 바로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데 문제는 그 찰나에도 인터뷰이로서 대답을 추려내고 가다듬는 임의의 편집을 속으로 하게 되더군요.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계속 인터뷰어의 반응을 신경쓰고 인터뷰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혼자 찾아내고 있는 걸 의식하곤 했습니다. 물론 제 자신을 어느 정도 감추려는 본능도 작용해서 어떤 질문에는 의식 깊은 곳에 감춰진 솔직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되더군요. 이것도 다 인터뷰가 끝나니까 떠오르는 소회입니다.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은 진실/진실되지 않은 것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진실될 수 있는지 퍼센티지로 따져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와 별개로 독립영화와 독립영화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런 영화를, 뭐하러 이런 극장까지 찾아와서 보는지 저와 일면식도 없는 관객들에게 괜한 연대의식이나 공감대 같은 걸 가지기도 했다는 답변도 했습니다. 특히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사회적 질문을 품은 채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그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그 질문에 최소한의 공감대와 책임의식을 가지고서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이겠지요.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이라는 영화 같은경우 그 영화를 보러 간것만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처우의 문제나 돌봄 노동, 수용 시설에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겠지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과 가족의 돌봄노동이라는 의제를 처음으로 사회적 시선으로 접근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재미나 데이트 킬링 타임보다 다른 재미를 분명 느낄 수 있다는 걸 감독님과 이야기나누니까 괜히 기분이 좋더라구요. 이곳까지 괜히 발품을 팔러 오는 관객으로서 영화와 극장을 응원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하지못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독립영화를 보러 이 극장까지 오는 건 나만 이렇게 힘들고 못나지 않았다는 묘한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이것도 인터뷰가 끝나니까 불쑥 수면 위로 떠오른 것처럼 튀어나온 생각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독립영화관의 의미를 다져보면서 하기에는 너무 적나라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이런 인터뷰가 있다면 더 솔직하게, 더 정신 빡 차리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라는 게 단순한 질의응답이 아니라 초면의 상대방에게도 진심과 예의를 다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내 안의 무언가를 아주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어야한다는 걸 좀 깨달아서 현대인의 색다른 소통이라는 걸 새로 배운 느낌입니다. 어찌됐든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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