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요일 아침부터 쓸데없는 연애 바낭 하나 투척해봅니다...

불편하신 분들께는 죄송해요 ._.

 

나이차가 5살 정도 나는 사람과 한달쯤 전부터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취향도 비슷하고 인생관이나 가치관도 비슷하고 게으른 것도 비슷하고... 그래서 눈이 맞았죠. 그런데 가장 큰 차이점이 있더라구요. 그것은 저는 (상대적으로) 연락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이 사람은 정말 연락을 안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대학원생이고 지금까지 학생들과 연애를 했던지라 하루에도 여러번 연락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 사람은 좀 무뚝뚝하고 외로움 안 타는 성격이고 직장인이었어요. 과거형인 이유는 한달쯤 전부터 백수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위 친구들은 직장인들은 원래 피곤하고 바빠서 하루에 한번밖에 연락을 안 한다, 라고 하지만 요즘처럼 낮에 팡팡 놀며 영화보고 야구보면서 연락이 없는 것은 참 서운합니다.

 

이 사람은 보통 하루에 한 번 정도 연락합니다. 그런데 '지금 뭐해?'처럼 안부를 묻거나 '보고 싶어' 등의 낯간지러운 말이 아니라 정말 용건이 있어서 연락을 하는 경우에요. 물론 그 용건이란 것은 '빌려준 책은 대출기한이 언제까지냐'(...) 거나, 만약 대충 언제쯤 만나기로 했으면 '그 때 몇시부터 가능하냐' 같은 거에요. 그리고 자기가 물어본 것에 대해 대답을 듣고 나면 그 다음부터 또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보통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밥 먹었어?' 또는 '너무 덥다', '좋은 하루 보내' 같은 인사말조차 없습니다... 만약 제가 먼저 연락한 날이 있으면 이런 연락도 안 하구요. 그러니 누가 하던 하루에 한 번 연락주고받기라는 암묵적인 룰이 생긴 것 같아요. 문자가 오고가다 끊어지는 것도 그쪽 맘에 따라 끊어지니, 이건 제 기준으로는 '연락'이 아니라 '정보전달/습득'을 위한-_- 문자인 것 같습니다.

 

뜸한 연락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와 얽혀서 제가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귀기 전에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죠...

난 연애란 맞추어 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는 내 친구들과 알아서 하고 너가 좋아하는 것도 너 친구들과 알아서 하는 거지, 그리고 난 기분나쁜 게 있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도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화를 내는 일은 없을거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밀당 중이었기 때문에 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이게 은근히 저에게 심적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연애란 맞춰 가는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저에게 맞춰달라고 말할 수 없게 돼버린 거죠... 그렇게 심적으로 쫄아있는데, 연락도 없고, 손도 안 잡고, 스킨십도 없고, 만났을 때도 시큰둥해보이고, 제가 모르는 그 사람의 소식을 트위터나 페북을 통해 알게 되는 등 더 작아지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상대방한테 기대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며, 제가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더군요. 그리고 제가 손도 먼저 잡고 스킨십도 먼저 했어요. 그때는 뭐 좋아하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데 역시 그 이후에 자기가 먼저 스킨십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스킨십 쪽으로도 아예 포기했어요... 특히 마음이 아플 때는 트위터나 페북에 지금 자기가 뭘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재밌는 일을 할건지 쓴 것을 볼 때에요. 그때는 정말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이 사람만의 영역이 있고, 나는 이 사람이 나에게 허락해 주는 (그것도 그냥 데이트할 때 나에게 말해주는) 아주 작고 코딱지만한 공간만 건드릴 수 있다는 느낌에 많이 서운하고 슬픕니다. 

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저는 상대방에게 그저 데이트때만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이 슬퍼요.

 

연애란 어느 정도 마음을 나눠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많이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어느 정도 많이 안 후에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서로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만 있고 역사가 없는 연애 초반에는 함께 하는 것에 더 신경써야 하구요. 그런데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니 마음을 다치고, 그래서 자기방어를 하느라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안 그러면 연락이 있을 때마다, 없을 때마다, 트위터나 페북을 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상처받으니까요. 이 사람도 저의 그런 거리두기를 눈치채고 자기가 많이 어색하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아주 넌지시 'sns에서의 너는 내가 모르는 사람같다, 내가 거기에 함부로 멘션이나 댓글을 달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이해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 사람이 저에게 신경써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 평생의 꿈이 프랑스 전국일주라고 하니, 로또 되면 같이 프랑스일주가자(...)라고 한다던가, 그런 소소한 것들 말이죠...

 

네...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제 태도가 우선 문제겠죠. (그렇게 또 한편으로 무한자책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화하는 것은 싫지만) 정말 직장인들은 연락을 이렇게밖에 안 하게 되는 것인지... 이렇게 연락을 안 하는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사람도 있는지... 그런 쓸데없는 것들이네요. 지금 더 심난한 이유는 이 사람이 직업 관련 문제 때문에 최소 2달 이상 먼 지방에 내려가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아예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못하겠죠. 그럼 전 아마 더 상처받고 더 거리를 두면서 아마 마음을 정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그 전에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참... 쓰고 나니 찌질한 바낭이네요. 지난 연인이 제가 평생 못 잊을 만큼 저에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그래도 이번 연애는 좀 좋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아닌가봐요. 똥차 가면 벤츠 온다...고 하는 속설도 틀릴 때가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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