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8 22:50
반종 피산타나쿤의 [피막]은 매낙 전설에 바탕을 둔 영화입니다. 태국에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죠.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남편 막을
아내 낙과 막 태어난 아기가 맞아줍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귀신이고 낙의 귀신은 남편에게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죠.
마침내 유명한 실존 불교 승려 한 명이 수퍼영웅처럼 등장해 귀신을 몰아냅니다. 태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영화화되었죠.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태국 영화계에서 우리나라의 [쉬리]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논지 니미부트르의 [낭낙]입니다만.
[낭낙]이 태국에서 [타이타닉]의 기록을 깬 영화라면 [피막]은 태국의 천만 영화입니다. 태국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하더군요.
오늘 보고 왔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참 천만 영화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의 전작 [셔터]처럼 아시아 호러 영화 장르의 극한을 실험한
영화는 아니에요. 반대로 매낙 이야기를 알고 있는 태국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생각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춘향전]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아는 성춘향 이야기를 하는데 제목을 [이몽룡]이라고 지은 다음 원작엔
없는 이몽룡의 친구 네 명을 쑤셔넣고 코미디를 만들고 결말을 뒤틀었다면? 아니, 그것도 아주 정확하지는 않군요. 그래도 반쯤은 설명이 된
거 같습니다.
매낙 전설의 기본 스토리를 따라가긴 합니다. 부상당한 남편이 돌아오고 아내는 아무래도 귀신이 된 거 같습니다. 후반엔 불교 승려도
등장하고요. 하지만 영화는 호러의 구색을 맞추면서도 코미디 쪽에 더 치중하고, 두 주인공만큼 우스꽝스러운 남편 친구들 비중을 늘리고
있습니다. "제대해서 친구 집에 머물고 있는데 아무래도 친구의 아내가 귀신 같고 멍청한 친구는 그걸 몰라! 무서워! 무서워! 호들갑!
호들갑!" 분위기를 상상하시면 되겠어요.
고증 같은 건 옛날 옛적에 쌈싸먹은 영화입니다. 매낙 전설은 [왕과 나]의 주인공인 몽쿳왕 시절 이야기니까 당연히 시대배경은 19세기죠.
하지만 주인공들은 [스파이더맨]이나 [라스트 사무라이]를 언급하고 동네 장터에서는 스폰서한테서 협찬받은 음료수 캔이 쌓여 있습니다.
몇몇 농담들은 혹시 로컬라이징된 게 아닐까하고 영어 자막을 확인해봤는데, 차이가 있긴 해도 크게 다를 건 없더군요. 물론 태국에서만
통할 말장난들이 번역과정 중 날아간 건 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원래 농담이 그렇게 수준 높은 무언가란 생각도 안 들고요.
[피막]은 엄청 잘 만든 영화도 아니고 고상하다거나 품위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 호러, 로맨스, 코미디의 조합은 상당히 좋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아이디어도 없고, 충돌하면서 많이 유치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장르의 힘을 뺄 정도는 아니에요. 적당히 넋놓고 즐겁게
볼 영화입니다. 농담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태국 사람들은 더 재미있게 봤을 거고.
(14/09/28)
★★☆
기타등등
남편 친구들로 나왔던 4총사는 [포비아]의 [캠핑]에 나왔던 배우들이더군요. 검색해보니 [포비아 2]에도 나오는데 모두 반종 피산타나쿤의
작품이에요. 세 영화 모두 다 같은 이름으로 나오고요.
감독: Banjong Pisanthanakun, 배우: Davika Hoorne, Mario Maurer, Nattapong Chartpong, Pongsatorn Jongwilak, Wiwat Kongrasri, Kantapat Permpoonpatcharasuk, Sean Jindachot, 다른 제목: Pee Mak
IMDb http://www.imdb.com/title/tt277634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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