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0 23:04
초등학교 독후감스러운 제목입니다만^^; 여하간 어제 저녁에 [마루밑 아리에티]를 보았습니다.
듀나님의 리뷰를 읽고나서, 혹시나 지나치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치를 간신히 끌어내린 뒤(쉽지 않았어요. 지브리 애니메이션인데다가 [마루 밑 바로워즈] 각색물이라니.. 끌어내렸다고는 해도 여전히 상당한 기대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영화 내내 감도는 침울하고 조용한 공기는 느낌이 괜찮았어요. 아니, ' 괜찮다'는 표현은 뭔가 맞지 않는 것 같고 썩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는 더욱...^^
미야자키 옹의 감독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것인데, 제가 본 몇몇 일본 애니메이션의 병적인(혹은 데카당스한) 느낌이 희미하게 잡히더라고요.
특히 쇼(인간 남자아이) 가 아리에티와 처음 대면하였을 때, 적막한 풀밭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은 오싹할 정도였습니다.
이때 쇼의 얼굴은 절반쯤만 보입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어서 눈은 안 보이고 말하는 입만 보이는 것인데, 병약한 십대 소년이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타인의 앞날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말을 무덤덤하게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쇼가 나오는 장면들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리에티 부녀가 휴지를 가져가려 했을 때, 누워 있다가 '지금까지 다 보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친절하게 말을 건넬 때도, 아리에티네 집에 각설탕을 놓아주러 왔을 때에도, 인형의 집 부엌을 선물(!)하러 왔을 때에도, 한결같이 '느닷없고' (보는 눈에 따라서는)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쇼라는 남자아이 이외에도 인간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조금씩 음험한 구석이 있습니다.
할머니도 그리 정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고, 가정부로 등장하는 아주머니는 영화에서 노골적인 악당이에요.
사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이 아주머니 캐릭터였습니다.
미야자키 옹 영화의 '악역'들은 그 나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근작을 돌아보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바바, 카오나시라든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황야의 마녀 같은 캐릭터들 말입니다.
그런데 [아리에티]의 가정부 아주머니는 그저 탐욕스럽고 소름끼치는 존재라, 호감이 가는 구석이 전혀 없었어요.
영화 전체의 우울한 분위기보다도 영화를 더 우울하게 한 것은 매력이 없는 인간 캐릭터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들을 자본주의라는 절대악의 현현(!)으로 만들어놓고 뭔가 묵직한 메시지를 영화 밑에 깔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메시지를 위해 [마루 밑 바로워즈]라는 기가 막히게 멋진 원작의 이야기를 희생한다는 것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번 더 보고 싶어요. ^^;
2010.09.1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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