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전기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정치가나 군인은 가장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 그들의 최대업적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사정이 다르죠. 가장 위대한 인물이 가장 재미있는 인생을 산다는 법도 없고.

스티븐 호킹 역시 업적과 이야기가 따로 노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과학자지만 블랙홀과 관련된 그의 연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소수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가 루 게릭 병을 앓는 천재이고 미국 억양의 컴퓨터로 의사소통을 하며 모두가 샀지만 아무도 안 읽는 [시간의 역사]라는 대중교양서의 저자라는 건 다들 알지요.

결국 호킹과 관련된 어떤 영화도 그의 인생 이야기로 흘러가게 됩니다. 호킹 복사나 블랙홀 정보 논쟁은 그 이야기의 장식에 불과하지요. 이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에요. 블랙홀 정보 논쟁은 극영화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아니죠. 장애를 극복한 과학자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호킹의 전처였던 제인 와일드의 관점에서 본 호킹의 이야기입니다. 제인 와일드는 호킹의 장애를 알고도 결혼했고 그 뒤로 20년 넘게 장애가 있는 천재 남편에게 헌신적인 아내로 살았다가 이혼했습니다. 그 뒤로 호킹은 간호사인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고요. 씁쓸하게 끝난 결혼 이야기입니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하나, 궁금했는데,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결말까지 다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예요. 아무리 순수한 사랑과 헌신으로 시작한 결혼이라도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어렵기 마련이고 종종 더럽기도 하다는 것.

단지 영화는 이걸 있는 그대로 다룰 용기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두 주인공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으니까요. 전 후반으로 갈수록 원래 있었던 일들에 조미료를 뿌려 먹기 좋게 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은 당사자가 더 잘 알고 있겠고, 전 원작이 된 제인 와일드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깊이 팔 생각은 없지만요.

그 결과 나온 것은 우리가 워킹 타이틀에서 세계 곳곳의 순진무구한 영국팬들에게 팔아먹는, 그런 종류의 기성품 영화입니다. 케임브리지! 1960년대! 영국 악센트! 에디 레드메인! 뭐, 그래도 잘 만든 영화예요. 에디 레드메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캐스팅이고 펠리시티 존스의 제인도 심금을 울리죠. 그 정도면 성공회 신자인 제인과 공격적인 무신론자인 호킹의 갈등도 잘 그려진 편이고요. 단지 제임스 마시의 실력이면 이보다 더 무게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는 것이죠. (14/12/20)

★★★

기타등등
영화가 은근슬쩍 무시하고 있는 것. 호킹의 휠체어에 이퀄라이저 컴퓨터를 설치해준 사람이 호킹이 두 번째로 결혼한 간호사 일레인의 남편이었다는 것. 그리고 호킹과 일레인 메이슨은 2006년에 이혼했다는 것.


감독: James Marsh, 배우: Eddie Redmayne, Felicity Jones, David Thewlis, Harry Lloyd, Emily Watson, Guy Oliver-Watts, Simon McBurney, Lucy Chappell, Christian McKay, Maxine Peake

IMDb http://www.imdb.com/title/tt298051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9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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