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기계, 퇴화되는 감각

2010.06.07 14:19

DH 조회 수:4225

새 게시판엔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ㅎㅎ

 

밑에 올라온, 신형 아반테에 자동 주차 시스템이 적용된다는 글 보니 생각나서요.

 

처음 몰았던 차는 수동변속기를 단 작은 차였습니다. 네비게이션도, 후방감지기도 없었어요. 그걸 한 2년 탄 것 같습니다. 많이 헤매긴 했지만, 그럭 저럭 잘 탔어요. 멀리 놀러갈 때는 인터넷 지도에서 가는 길을 찾아서 프린트해서 들고갔고, 평행주차는 완전 지옥이었지만 그래도 극복했습니다. 묘기 수준의 주차는 못하지만, 그래도 남들도 하는 주차 수준은 할 수 있게 됐다고 할까요.

 

그러다 네비게이션을 달았는데, 이때부터 슬슬 길찾기 감각이 둔화되기 시작하더군요. 모르는 길도 두려움 없이 가게 된 건 좋은데, 어쩌다 네비가 안되면 패닉이에요. 그리고 지도를 안보다보니, 멀~리 갈 때는 지금 가는 이곳이 우리나라 지도에서 어디쯤인지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뻔히 갔다온 곳인데도 그곳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도착지점 바로 앞 지리는 기억하는데 정작 그 지역이 어디쯤인지는 모르는 현상이... ㅠㅠ

 

후방감지기가 더 치명적입니다. 후방의 거리에 대한 감이 없어지고 양쪽 백미러를 보는 주의력도 산만해졌습니다. 어쩌다 후방감지기가 없는 차를 빌려타다가 긁어먹기도 했고,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후진하다가 삐익!!! 소리를 듣고서야 급브레이크를 밟고 "내가 저걸 왜 못봤지?" 하며 자학하는 일이 생깁니다. 수동변속기 차량을 다시 몰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 지금은 수동변속기 차량을 주면 시동 수십번 꺼먹을 것 같습니다. 제때 기어 변속 안해서 차 다 망가뜨릴 것 같아요.

 

뭐 기계가 편리해지는 건 어쨌거나 좋습니다만, 문득 기계때문에 제 감각이 퇴화된다는 걸 느낄 때면 기분이 좀 묘해요. 그렇다고 기계를 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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