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8 20:40
한공주는 저번 학교에서 끔찍한 일을 겪고 전학을 왔습니다. 살 곳도 없어서
저번 학교 선생님의 어머니네 집에 임시로 머물고 있지요. 공주는 친구도 사귈 생각이 없고
공부에 특별히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관심이 있어 보이는 것은
방과후에 하는 수영강습인데, 그것도 잘 하지는 못 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주에게 노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같은 학교 아카펠라 반의 은희가
다가옵니다.
이수진의 [한공주]는 공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전 정보를 주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관객들이 풀어야 할 미스터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공주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릴만큼의 단서는 초반부터 꾸준히 주어지니까요.
조금 더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이 이야기가 몇 년 전 이 나라를 뒤흔들었던
특정사건에서 기본 상황을 가져왔다는 걸 알아차렸겠죠.
하지만 영화는 공주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보다는 공주의 캐릭터 자체에 집중합니다.
공주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몇몇 단서들과 플래시백으로 꾸준히 알려주면서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그 센세이셔널한 상황이 아닌 한공주라는 사람 자체라는 것을
분명히 하지요. 그 단서들과 플래시백의 일차 존재이유도 캐릭터 묘사입니다.
영화가 시작될 때 거칠게 그려진 스케치로 소개된 한공주는 이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가 끝날 무렵엔 완벽한 17살 소녀로 완성됩니다.
여기서부터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받은
한국여성을 묘사하는 일반적인 '영화상용 명연기'로 한공주의 오페라를 만들어내는 건
이수진이나 천우희 모두에게 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천우희는 자신의 고통과 공포를 무뎌보이는 둔한 표정
속에 숨긴 여자아이로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 뒤에 서서히 그 뒤의 상처를 그리면서도
그 상처를 입은 사람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 했고 아직 미래에 대한 기대 역시 버리지 못한,
음악 재능이 있는 17살 여자아이라는 기본 베이스를 놓치지 않아요. 덕택에
한공주의 여정은 단순한 고통의 전시 이상입니다. 러닝타임 내내 천우희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죠. 늘 공식 이상의, 기대 이상의 무언가가
잔물결처럼 배우의 얼굴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당연히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불쾌한
장면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주의 내적 고통이 관객들에게 그만큼 절실하게
와닿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는 바닥을 치는 암담한 상황까지 주인공을 몰고 가면서도
꾸준히 삶의 희망도 함께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더 잔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희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전 영화의 결말을
낙천적으로 읽습니다. 적어도 그럴 수 있도록 주인공을 이끌고 싶어요. [피터 팬]
이후 이처럼 노골적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은 못 본 것 같습니다.
(14/03/28)
★★★☆
기타등등
천우희도 좋지만 '선생님 어머님'을 연기한 이영란의 연기도 좋습니다. 캐릭터도
재미있고요.
감독: 이수진, 출연: 천우희, 정인선, 김소영, 이영란, 다른 제목: Han Gong-Ju, A cappella
IMDb http://www.imdb.com/title/tt32654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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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부터는 듀나 님이 리뷰에서 밝히지 않은 부분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피해 가세요. 리뷰 댓글에서는 화이트 태그가 안 먹히네요. --------------------------------------------------------------------------------------------------------------------------------------------------------------------------------------------------------------------------------------------------------------------------------------------------------------------------------------------------------------------------------------------------------------------------------------------------------------------------------------------------------------------------------------
어제 ㄱㅈㅅㅎ를 봤어요. 앞부분을 놓쳤는데 많은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ㅈㅇㄴ 씨는 혼신의 연기를 했고, ㅁㄷㅅ 씨와의 조화도 좋았어요. 그런데 이게, 액션 영화를 보는 기분과 비슷하더군요. 당사자는 주변인으로 머물거나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져 버리고, 시종 그 어머니가 가장 고통받는 사람인 것처럼 그려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편치 않았고요. 시간 순서를 뒤섞은 편집은 집중도를 상당히 높여 줬지만, 몰입은 방해하더군요. 고통받는 어머니가 아닌 에너지를 전부 쏟아내는 배우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이였다면 형사의 신문보다 내 앞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엄마 때문에 괴로웠을 것 같아요. 내가 엄마를 저렇게 힘들게 만들었나 하는 죄책감으로.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뛰어다니는 동안 아이 곁에는 누가 있는지, 어쩌고 있는지가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