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23:39
- 2022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16분. 감독 특성상 장르 언급이 의미가 있을까 싶구요. ㅋㅋ OTT에는 안 올라온 것 같고 전 올레티비로 봤어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적을 게요.
(비인간류 최강 배우 틸다 스윈턴님의 신비로운 자태를 보십시오!!!)
- 시작부터 참 컨셉 확실합니다. 자리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비춰주는데 한동안 미동도 없어서 내가 일시 정지를 눌렀나... 하다가 쿵. 소리가 나요. 길 밖에 있는 차들이 갑자기 비상 신호를 울려댑니다. 그리고 뭐... 아니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ㅋㅋㅋ
틸다 스윈턴이 연기하는 '제시카'가 주인공입니다. 콜롬비아에 여행을 왔구요. 아마 동생이 여기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남들에게는 안 들리는 '쿵.' 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려요. 대체 이게 뭘까.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이 답을 찾기 위해 음향 전문가도 찾아가고 병원도 찾아가고 뭐... 이러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거의 모든 장면을 롱테이크로 끌고 가는 영화라 배우들도 쉽지 않았을 듯 하지만 당연한 듯이 잘 해내주시고요.)
- 사실 '아피찻퐁'까진 금방 외웠는데요. (귀엽잖아요 아피찻퐁아피찻퐁!) 늘 '위라세타쿤'에서 문제가 생겨요. 몇 십 번을 반복한 후엔 대략 외우긴 했는데 요즘도 그냥 말 하려면 '위라세타쿤'인지 '위세라타쿤'인지 헷갈려서 늘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세라'는 사람 이름이니 사람 이름은 아니다. 라고 기억하면 되려나요.
암튼 이 분 영화들 본 게 많지 않아요. 아니 매우 정직하게 말하면 본 게 '엉클 분미' 뿐입니다. 그것도 보기만 했지 이해를 했냐, 좋아하냐 등등의 질문을 받는다면 글쎄요... 솔직히 틸다 스윈턴이 주인공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도 안 봤을 겁니다. 뭐가 됐든 일단 틸다님은 옳으시니까요. 하하. 어쨌든 제가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영화에 대한 어떤 해석이나 이해 같은 걸 이 글에서 기대하시면 안 된다는 것.
(이 영화에서 진짜 대단했던 건 저 남자분이죠. 영화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저 분이 펼치는 그 충격과 공포의 롱테이크... ㅋㅋㅋ)
- 그러니까 참말로 "나는 아트하우스 무비다!! 왜냐면 아트하우스 영화이기 때문이다!!!" 라는 기분이 드는 영화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카메라가 움직이는 장면이 거의 없어요. 거의 모든 장면이 고정샷으로 찍혔고, 틸다 스윈턴을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은 풍경의 일부 같은 느낌으로 멀찍히 찍히죠. 클로즈 업 같은 건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두 번 나오려나요. 그리고 당연히도 샷이 한 번 바뀌면 그 고정샷이 짧아도 1분, 길면 몇 분씩 미동도 없이 이어지고 그 와중에 등장 인물들은 꼬물꼬물 움직이며 차분하고 느릿하게 대사를 쳐요.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보다가 제가 정신을 딴 데 팔아서 중요한 대사를 놓친 기분이 들어 5분 정도 앞으로 돌린 다음에 1.2배속으로 틀었는데. 그랬더니 그 시간 동안은 오히려 정상적인 영화처럼 감상이 가능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자,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이 장면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거라. 내가 이번엔 인심 써서 2분 준다!! 라는 느낌.)
- 근데 희한하게도 이게 지루하진 않아요.
일단 "나는 아트하우스다!!!"라고 외치는 영화 치곤 틸다 스윈턴의 '쿵! 소리 찾기' 여정이 의외로 논리적으로 전개가 됩니다. 물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들리는 첫번째 '쿵'과 두 번째 '쿵' 사이에 40분이 흐른다든가 하는 문제(?)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렇게 느릿하고 여유로운 가운데에서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흘러가며 차근차근 해답을 향해 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느림' 자체가 희한하게 잘 조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들릴지 모를 '쿵' 소리 때문인지, 아님 그렇게 느긋한 화면 속에서 니가 스스로 뭘 찾아 보라는 듯한 묘한 느낌 때문인지 영화는 느리지만 어떤 긴장감 같은 게 사라지지 않고 거의 마지막까지 유지가 돼요. 그냥 이 소스를 갖고 분량을 1시간 30분 정도로 줄이고 음악 같은 것만 대중적으로 깔아줘도 장르물로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쨌거나 영화가 분위기가 죽이고 그림이 예쁩니다. ㅋㅋㅋ 이건 일단 무조건 중요한 거잖아요.
(이 장면도 긴 걸론 참 웃음만 나오는 장면입니다만. 그래도 분명히 뭔가 이야기가 진전이 되고, 또 그게 준비된 답을 향해 가니 지루하지 않습니다.)
- 개인적으론 결말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검색을 해 보니 이 결말 때문에 깬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 되게 좋았어요. 그러니까 내내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영화가 완전 본격 장르물 엔딩으로 마무리가 되니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 전에 결정적인 해답을 주는 사람과의 기나긴 대화들을 생각해보면 이 결말이 전혀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고 생각하구요. 또 원래 이 장르(?)는 예전부터 아트하우스랑 많이 친했지 말입니다? ㅋㅋㅋ 기나긴 롱테이크를 다 짧게 단축해 버리고 좀 난해한 느낌의 장면들을 쳐내 버리고서 50분 이내로 압축해 버리면 그냥 분위기 독특하고 그림 예쁜 그 장르물로서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뭣보다 결정적인 그 장면까지 롱테이크로 느긋하게, 기일게 찍어 버린 게 꽤 맘에 들었구요. 전 좋았습니다.
(갑자기 이런 게 튀어나와서 3분씩 고정 모드로 버텨도 당황하지 않으실 분들이라면 누구나 즐기실 수 있습니다!)
-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해석하고 그런 것들은 똑똑하신 분들에게 맡기고, 그냥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으로 느긋~한 고정샷 롱테이크 장면들만 견디거나, 혹은 즐길 수 있다면 생각 외로 그냥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내 추상과 관념 속을 떠다니다가 실체가 안 잡히는 마무리를 맞는 그런 류의 영화 아니구요. 스토리는 진짜로 장르물 스토리에요.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참으로 '아트'스러웠을 뿐이죠. 틸다 여사님이 미스테리를 캐나가는 과정이 기대보다 재밌었구요. 마지막에 한 방 날리는 느낌의 엔딩도 좋았구요.
또 당연히 이런저런 주제의식이라든가, 해석이 모호해지는 떡밥들이라든가. 이런 요소들도 가득하니 영화 보고 분석하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참 좋은 영화였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네요. 어쨌든 저도 즐겁게 봤구요. 역시나 틸다 여사님은 만만세였던 것이었습니다... ㅋㅋㅋ
+ 네이버 영화 정보에 보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이 영화가 '상영중'으로 떠요. 하지만 예매하기 버튼을 눌러 보면 아무 정보가 안 뜨는 걸 보면 그냥 오류인 듯 싶구요. 어디 영화제라도 하는 건가? 하고 조금 집착을 해봤더니 쌩뚱맞게도 틸다 스윈턴이 '설화수' 모델로 계약했다는 최근 기사가 뜨네요. 헐. ㅋㅋ
++ 그림도 그림이지만 사운드가 참 열일을 하는 영화입니다. 보면서 아, 이런 건 극장에서 봐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계속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심지어 이거 2021년, 코로나 리즈 시절 영화였다구요.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중후반에 우연히 마주치는 남자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사물엔 그 사물이 겪었던 진동, 파동이 남아 있고. 주인공은 그런 진동과 파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신은 모든 기억들의 저장소이고 주인공은 그걸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 같은 존재라며 자신의 손을 잡게 한 후 이런저런 소리들, 기억들을 주인공이 느끼게 해 줘요. 그래서 그렇게 한참을 그 남자의 기억들을 주인공도 듣고 관객들도 듣다가... 아마존의 밀림 속을 또 고정으로 한참 보여주는데. 거기에서 아주 느긋하게, 주기적으로 쿵, 쿵 소리가 나고 땅이 흔들리구요. 그걸 한참 보다가 아 저 쪽에 무슨 덩어리진 형상 같은 게? 하는 순간 그것이 또 아주 느긋하게 땅에서 떠오릅니다? 엥? 우주선입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그 우주선은 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이 있던 자리에 헤일로를 남기고 화면 저 멀리멀리로 아주 느긋하게 날아갑니다.
우주선이 날아간 후에도 한참을 그 공간을 보여주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밀림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빗소리와 함께 느긋하게 스탭롤이 올라가며 엔딩입니다.
2023.03.21 00:51
2023.03.21 02:57
네. 엉클 분미에 비하면 이 영화는 그냥 장르물 기분이라 할 정도로 덜 난해하고 별로 안 지루합니다. 어디까지나 그 영화의 상대 평가이고 진짜 일반 장르물들과는 매우 큰 격차가 있긴 합니다만. 그 정도야 다들 각오(?)하고 보는 거겠죠. 하하.
전 틸다 여사님 그렇게 작업할 감독, 작품들 고르는 게 참 멋져 보이더라구요. 내가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라는 느낌이랄까요. 정말로 자기 직업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게다가 또 잘 하시구요. ㅋㅋ
2023.03.21 09:49
앞에 아핏차퐁은 외워요. 뒷 부분은 못 외우겠던데요.
이 감독님의 영화는 한 편도 못 봤네요. 이 영화는 언제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틸다 스윈튼에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
2023.03.21 16:36
돈도 넘치고 가오도 쩌는 분이시니까요. ㅋㅋㅋ 제 입장에서야 돈은 상관 없고 그냥 너무 멋지십니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 덜 어렵다는 평이 많더라구요. 한 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3.03.21 10:07
2023.03.21 16:37
아피찻퐁이 더 어려운 분들이 많군요. 전 그냥 이름이 귀엽다고 생각해서... ㅋㅋ
틸다님은 정말 인간계를 떠나신 분이라는 느낌이죠. 저도 궁금하군요. 이 분의 인생 고민은 무엇일까. 하하.
2023.03.21 12:55
저는 위타세타쿤. 위라세타쿤 이렇게 헷갈렸어요. 태국 이름이 다 어려운 이름이긴 하죠.
열대야를 충격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언젠가 한번 경험한 듯한 묘한 기분 하나를 명확하게 이미지로 구현한 점이 엄청 좋았어요.
정반대쪽의 감독인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감독이 베넷 밀러. 베넷 밀러는 인간 심리에 포커스를 두는게 아핏차퐁과 정 반대의 관심사인데 왜 그렇게 느꼈나 모르겠어요. 아마 인간 심리 중에서 애매한 어떤 걸 정확하게 구현하려는 노력때문이었을거에요.
오랜만에 아핏차퐁의 이름을 들어서 반가웠네요. 로이베티님은 정말 폭도 넓고 소화력도 대단하심다.
2023.03.21 16:39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어렵고 헷갈려서 쉽게 부르기 위한 짧은 이름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하죠. 근데 이 분 이름은 모르겠구요. ㅋㅋ
사실 전 열대야도 안 봤고 베넷 밀러의 영화도 잘 몰라요. 검색해보니 본 영화는 있는데... 하하. 그냥 아무 거나 땡기는 포인트가 있으면 일단 틀고 보는 습성일 뿐입니다. 소화가 안 돼도 나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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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분미의 그 감독님이시군요. 그래도 나름 영화좀 본다는 사람이면 이정도는 봐줘야한다는 그런 분위기,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이 있어서 시도해봤다가 그냥 깔끔하게 중도하차했었죠. ㅎㅎ
그런데 이 작품은 배티님 글을 읽어보니 완주가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엉클 분미는 정말 뭐하자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이건 일단 주인공이 그 소리를 찾아나선다는 기본적인 플롯은 있는 거잖아요? ㅋ 게다가 틸다 여사님이라니 최소한 연기 감상만으로도 시간은 아깝지 않겠네요. 이 분은 참 정해진 영역같은 게 없이 자유분방하게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할리웃 주류영화들은 기본이고 코엔 형제, 웨스 앤더슨, 루카 구아다니노 같은 사람들 작품에도 단골로 나오고 봉준호에 이어 아피찻퐁 이 감독님의 작품까지 정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