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30 17:04
아기다 리 고기 다리 던 듀게가 열렸는데 여전히 눈팅만 하고 있자니 허전하네요
모두들 새해 복 받으시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세요 ㅎ
개봉날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결국 이래저래 놓치고 최근에 봤습니다. 러닝타임이 세시간이나 되는 영화라 편한 상상마당에서 보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동네 무비꼴라주에서 보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피봤어요 유_유 어찌나 자리가 불편한지
아무튼 영화 정말 좋았습니다
두 여주의 아름다운 미모를 주구장창 클로즈업으로 보는 것만으로 러닝타임이 고단하지 않았고요
(그 클로즈업 말인데요, 언제나 청자의 신체 일부 너머 화자의 얼굴이 매우 가까이 보여서, 두 사람이 정말 꼭 달라붙어서 삐약삐약구구 속삭이는 것 같아요 꺄>ㅅ<)
특히나 아델 때문에 영혼이 출렁거릴 정도였어요. 정말로요. 나중에는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지금 떠올려도 왈칵.
레아 세두는...... 그녀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배역과 슛으로 온통 휘감겨 있더군요. 감독과의 불화는 차치하고; 이 영화가 그녀에게 소중한 필모가 되겠죠.
아래부터 약스포가 있을 수 있겠어요. 가능한 스포 없이 쓰겠지만요.
보는 내내 이입감이 엄청났어요. 그 공허함과 찌질함과 갈급함과.... 한심함이요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란 게 있나요. 저는 굉장히 절망적이예요.
내 안에서 해결 안되는 그것을 타자를 통해 성취하려는 욕망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것을 사랑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또한 절망적이고요.
아델의 수업시간에 이야기되는 몇 가지 토픽들이 모두 성장을 가리키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델은 작고, 약하고, 성숙에 실패한 아이이고, 반대로 엠마는 저할할 수 없이 크고, 강하고, 확고하게 성장한 <여성>으로서
두 사람이 행복했던 시절이 더욱 짧게 느껴졌고요. 1부는 정말이지 아름다웠지만 균열의 복선을 음험하게 내포하고 있기에 더욱 아름다웠어요.
결국은 멍청하고 한심한 여자아이의 이야기, 인가, 하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내내 울적했습니다.
정말이지 멍청해요!! 하지만 가엾고요.
엠마의 권유를 거절하며 행복해, 라고 말하고, 곧이어 지금 너랑 하고싶어, 라고 말하는 아델의 그 시퀀스가 정말이지 너무나 가슴이 아팠어요.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란 게 있나요.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아델은 성장하지 못했고요. 한심하게 두리번거리다 '그 그림'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돌아서 나와서는, 한심하게, 걸어가는데
걸어가는 그 길 끝에 '아델의 삶'도 사랑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절망적이네요.
우리가 잃은 사람이, 삶이 어떤 것인가, 돌이켜보기에 아직 시간은 덜 흘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소환하는 깊은 상실감이란 게 막, 무척 쓰러져 몹시 울게 했어요.
엠마를 보내는 장면에선 괴상하게도,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그렇게 살 자격이 되나, 뭐 그런,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이 떠오르더군요.
아무튼,
긴 러닝타임을 찰나처럼 보냈습니다. 좋은 영화였어요. 감독 심보가 좀 고약하지만요. 좋아요.
처음 감상은 울적하고 괴로웠지만, 두번 세번 보면 숨겨진 다른 것들도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곧 두번째 관람할 생각이예요.
두 여주가 찍은 화보들이랑 티비 출연 영상들 뒤지며 하악하악 하고 있습니다 흠뻑 빠졌어요ㅠ 좋아 니네ㅠ
누군가 이 영화를 '레즈비언 영화인데요'하고 소개하는 것을 듣고나서부터 내내, 그 말이 떠오르면 불쾌합니다.
레즈비언 영화라니요. 그 단어 자체가 갖고있는 의도가 저급하게 느껴지는 건 제 예민함 탓일 수도 있지만
다 떠나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재료 자체가 '레즈비언'이라 소급되지 않는걸요. 그런 식으로 영화의 성격이나 장르?를 분류하는 게으름이 화가 나요.
아, 그리고, 아델이 좋아해서 데이트 때 대화주제로 나오는 마리보의 소설,
레아 세두 주연의 <페어웰 마이퀸>의 초반부 마리앙투아네트에게 읽어주는 소설이더군요. 요거 그냥 우연일까요? 신기했어요.
영화 보고 나서 며칠째 앓고 있습니다 몸살이 심하게 왔어요ㅠ 이번 연휴 내내 해야할 일이 엄청나게 쌓여있는데 큰일이예요ㅠ
영화 탓은 아니겠죠ㅠ 제 탓입니다ㅠ
듀게분들 건강하게 행복한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D
2014.01.30 17:17
2014.01.30 17:34
반대라고 하셔서 잠시 고민했어요. 그러고보니 반대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음, 제가 그렇게 느낀 건, 상대적으로 엠마는 자신의 삶과 지향점과 가치관 등에 관해 자유롭게 사고하고 시도하고 돌진해볼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기도 했지만, 본인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걸로 보였어요. 아델에게 있어 엠마는 갓 태어나 처음 본 엄마오리 같은 걸까요, 어쩌면 그럴지도. 아델은 계속해서 안정을 추구하는 인물이죠.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삶에 있어서 크게 흔들리는 걸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여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엠마를 사랑하는 삶을 택한 것부터가 무언가를 감수하고 희생해야 할지도 모르는데도, 그것에 대한 고민이나 준비 없이 사랑에 돌입해버린 것이 용기로 보이진 않았어요. 어리숙한 아델이 엠마 곁에서 '아이를 낳고 식탁을 차리고 사랑 받으며 사는 아내' 역할을 원했던 내내 괴로웠답니다.
듀게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으면 좋겠어요:D 아직 관련글이 없던데, 듀게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저 역시 다행이예요
2014.01.30 17:48
긴 동어반복이네요. 그리고 관련 글 있습니다. (써주신 것에 비해 덧글이 넘 짧아 미안한데... 다른 분들 의견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2014.01.30 18:07
제 댓글이 긴 동어반복이라고 하신 건가요?
오늘은테레비 님의 댓글은 설명 없이 단정적이신 게, 영화에 대한 의미있는 댓글이라 느껴지지 않아서요. 제가 표현하려는 마음이 과했나보군요.
관련 글 있네요.
2014.01.30 17:42
2014.01.30 17:43
쪽지확인좀ㅎㅎ
2014.01.30 18:37
저는 이게 무삭제로 개봉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씨네큐브에서 '아델의 삶 1부와 2부'라는 제목으로 특별 상영할 때 봤습니다.
영화 볼 때는 그냥 와 예쁘다 세 시간이 금방 가네 이정도로 느꼈는데, 보고 나서 계속 떠오르고 눈물나고 그러더라구요. 사랑에 빠진 아델의 감정이 너무 생생해서 가슴아파요.
레즈비언 영화, 라는 말에 왜 거부감이 드시는지 모르겠지만 레즈비언 영화죠 뭐. 특히 1부에서는 아델이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는 내용이 주요 줄기인걸요.
이 영화가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말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레즈비언, 레즈비언의 연애에 대한 특수성에 대해서도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정말 좋은 영화였어요
2014.01.30 19:19
2014.01.30 19:44
2014.01.30 20:35
트위터 보니까 레즈비언들이 자기들 영화라는 시각으로 평가를 하는 것도 본 적 있는데요 뭘 ㅎㅎㅎ
저는 엠마와 아델이 그렇게 특별한 격차가 있다고는 보지 않았어요. 각각 두 사람의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비교하는 장면을 보면서 두 사람의 차이는 계급적 환경의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델이 엠마가 그냥 그대로 있어주기만을 바랐듯이, 엠마는 아델이 자기처럼 예술계에 적응하고 예술을 삶의 중심에 놓길 원했죠. 엠마가 우월했다기 보다는, 서로가 그저 자기가 속한 계급과 환경을 지키면서 상대가 변하기만을 바라는 안온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두 사람이 싸우고 헤어질 때는 아델이 잘못하긴 했지만, 엠마는 아델이 잘못하길 기다렸다 기회를 잡아 성을 낸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원작 만화 제목이고, 영화 원제는 <아델의 이야기 1부와 2부>래요. 물론 나머지 10부까지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겨우 10부 중 2부만 지났다는 의미가 있죠. 처음에 애들을 사랑하던 생동감 있던 모습에서 차갑고 단단하게 식은 선생이 되는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할 모습을 갖춰간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화실에 들르는 마지막 신을 거쳐 아델이 어느정도 신변정리를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영화가 끝나면서 어느정도 희망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자존감이 낮은 인간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방식이란 게 없죠. 현명하지 않은 방식으로 손해와 낭비를 견뎌내며 겨우 얻는 거죠, 자존감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죠. 그래서 서로를 응원해 줘야 하는 거고.
2014.01.30 20:56
저도요. 엠마와 아델은 그냥 태어나서 자란 환경이 다른 거라고 생각했고, 엠마는 예술가로서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고 아델은 작고 소박한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구요.
원작 만화가 이 영화 원작인지는 모르고 아마존 프랑스에서 만화고를 때 항상 추천만화에 있길래 살까말까 했는데 요번에 한번 사서 보려구요.
영화 정말정말 좋았고 보고 나서 너무너무 외로웠어요.
2014.01.30 20:51
보면서 배우도 감독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영화에서 시시콜콜하니까, 너무 격렬하니까, 너무 사적이니까, 감추고 가공하는 영역같은 것이 당연히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영역을 막는 장벽 같은게 없는 느낌이었어요.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는 느낌. 비단 야한 장면만이 아니라 파국을 맞는 장면이나, 서로 어색해 하는 모습이나... 오히려 야하지 않은 장면들에서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벌거벗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단하더라고요.
2014.01.30 22:51
본문 중 "아델은 작고, 약하고, 성숙에 실패한 아이이고, 반대로 엠마는 저항할 수 없이 크고, 강하고, 확고하게 성장한 <여성>"이라는 부분에서 저랑은 영화를 거의 정반대로 보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는 엠마가 아델에게 크고, 강하고, 확고하게 성장한 여성이었던 게 맞지만 오히려 관계가 전개되면서 영화는 엠마의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모습이나 일종의 허영 같은 부분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봤거든요.
아델은 연인과의 관계에 의존적이고 외로움을 느끼며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자신을 긍정한달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달까, 엠마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면도 있다 싶었죠.
마지막 장면에서 아델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당장의 해피엔딩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망적인 결말로 생각했는데, 저걸 희망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까, 절망으로 보는 사람이 많을까 궁금하긴 했어요. 이 글과 댓글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네요.
2014.01.31 01:34
영화 제목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보다는 '아델의 이야기'가 더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아델의 사랑을 통한 성장 이야기 같았거든요. 아델에게 파란색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색이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시간이 지날 수록 엠마의 모습을 보면서 별로 따뜻한 색도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둘은 가치관이 다른 것-건실한 생활인과 교양적 예술가-을 극복할 수 없었고, 관계의 주도권을 쥔 쪽의 애정이 먼저 식어버렸고, 엠마는 연애에 노련했으며, 아델은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을 자기를 온전히 다 바쳐서 했다고 생각해요. 연인이라 할지라도 서로 일정한 거리와 자기만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건, 어릴땐 알기 어려운 거니까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저는 긍정이나 부정의 느낌 보단 아델 인생의 1막이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랄까, 아델도 다음 번의 연애는 좀 더 성숙한 방식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레즈비언 영화인데요^^ 라고 하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그리고 "아델은 작고, 약하고, 성숙에 실패한 아이이고, 반대로 엠마는 저항할 수 없이 크고, 강하고, 확고하게 성장한 <여성>"이라고
하셔서... 으악 제가 영화를 반대로 봤나 봅니다.
여튼 듀게는 이렇게 영화 본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서 정말 좋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