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6 17:07
- 1990년작. 런닝타임 101분. 장르는 총질은 하는 심리 스릴러 정도. 스포일러 없게 할 게요.
(포스터가 간지나서 여기저기서 자주 보였던 기억이.)
- 제이미 리 커티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메건은 파릇파릇한 신입 경찰입니다. 친구라곤 지구상에 딱 하나 뿐이고 애인은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어 보이고. 경찰이 된 이유는 정의사회구현인 듯 하네요. 뭔가 좀 깝깝해 보이는 이 양반이 근무 첫 날 우연히 수퍼마켓에서 마주친 총기 강도범을 사살해 버려요. 근데 당시 수퍼 손님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던 론 실버 시민님께서 뭔 생각인지 바닥에 떨어진 범인의 총을 줍줍해서 튀어 버리고, 현장의 시민들이 범인의 총을 못 봤다고 증언하면서 메건은 세상 억울한 처지가 되죠.
거기에 덧붙여 우리 론 실버님께선 줍줍한 44구경 매그넘에 현혹(?)되어 위험한 짓을 하고 다니다가 그만 무차별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성스레 탄피에 미리 새겨 놓은 이름 때문에 메건은 더욱 더 피곤해지고. 그걸로도 부족했던 우리 실버님은 우연인 척 메건에게 접근해 연애 세포 부족한 우리의 주인공을 능욕하기 시작하는데...
(첫 근무 시작하고 한 시간도 안 돼서 일생의 위기와 누명을. ㅠㅜ)
- 본지 한 20년은 넘은 영화인데 다시 봤어요. 당시 기억으론 '뭔가 막 재밌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폼 나고 기억에 남네' 정도였었죠.
사실 제가 붙인 글 제목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비글로우의 감독 데뷔작도 아니고, 이 전작인 Near Dark(죽음의 키스)가 오히려 평은 더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비글로우에게 '남자들의 나와바리인 헐리웃 액션 장르에 꾸준히 도전하여 성과를 내는 여류 감독!!' 이라는 한국 영화 잡지들의 매크로 설명이 따라붙기 시작한 건 이 영화로 기억하고. 그래서 제겐 그냥 이 영화가 비글로우 영화의 시작 같은 느낌입니다. ㅋㅋ 이 말 적다가 확인해 보니 '죽음의 키스'는 구해 볼 수 있는 루트가 있네요. 아직도 못 봤는데 조만간 한 번 보는 걸로.
(출연작들 상태들에 비해 신기할 정도로 낯익었던 우리의 탑골 배우 론 실버님.)
- 각본이 좀 문제적(?)입니다. 뭐라 해야 하나... 좀 난잡해요.
처음엔 젊은 여성 경찰로서 메건이 직장과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 같은 걸 겪는 게 꽤 비중 있게 나와요. 그 와중에 메건 엄마를 통해 가정 폭력 이슈까지 끌어들이니 뭔가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주인공의 여성주의적 장르물 느낌이 들죠. 론 실버 캐릭터의 변태짓도 가만 보면 '총=남성적 폭력'이라는 오래된 비유와 이어지는 듯 하구요. 중간에 마초맨(캐릭터 이름조차 닉 '맨'입니다 ㅋㅋ) 고참의 도움을 받다가 결국엔 혼자서 다 해내게 되는 마무리도 마찬가지.
문제는 여기에서 주인공이 '성장'을 하는 건지 오히려 빌런에게 궁지로 내몰려 사이좋게 '흑화'를 하는 건지 영 애매하다는 겁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짓을 보면 그냥 다 내버리고 폭주를 하거든요. 범인을 잡든 못 잡든 뒷수습이 불가능할 짓을 벌이고, 마치 개척시대 무법자마냥 본인은 물론 죄 없는 시민들까지 다 말려들 수 밖에 없는 짓을 합니다. 그냥 난 그 놈이랑 1:1로 쇼부 볼 거야!!! 라는 식이고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죠. 이걸 성장이라고 부르긴 좀...
(가장 나쁜 건 물론 빌런인데, 얘도 두 번째로 나쁩니다.)
- 이런 것 말고도 기본적으로 개연성이나 전개 템포가 다 문제 투성입니다. 주인공을 감시하며 범인 접근을 잡겠다는 경찰이 주인공이 빌런과 대놓고 데이트하는 걸 신경도 안 쓴 다거나. 주인공의 증언 이후로도 빌런이 자유롭게 활개치게 냅두는 것도 그렇구요. 정상적인 경찰의 평범한 수사면 금방 끝날 일이 괴상한 전개 덕에 계속 이어져요. 또 막판에 가면 '마지막 결전' 분위기가 대략 세 번이 나오면서 맥을 뺍니다. 어? 이걸 그냥 넘어가네? 어? 이게 마무리가 안돼? 가 이어지며 태평한 베드씬 같은 게 들어가고 그러니 좀 당황스럽고. 시작부터 끝까지 중요한 순간들이 내내 우연과 (주인공과 빌런 모두의) 행운으로 일관하는 전개도 아무리 90년도 영화라지만 좀 심했죠.
(하이랜더 빌런님의 풋풋한 시절. 최근엔 '모추어리 컬렉션'으로 뵈었죠. 거기서 연기 좋았어요. ㅋㅋ)
-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한 번 볼만은 하네' 라는 생각은 들어요.
일단 그 중구난방 전개 속에서도 꾸준히 일관성을 붙들어주는 영상미와 분위기가 좋습니다. 흔한 말로 '지금 봐도 안 촌스러운' 느낌으로 어둡고 차가운 톤의 그림을 잘 잡아주고요. 개연성을 잊고(...) 부분부분에만 집중한다면 인상적인 장면들도 많습니다. 초극단적 클로즈업으로 문제의 총을 세세하게 훑는 간지나는 인트로도 좋고. 상황은 황당하지만 막판의 1:1 대결도 그 장면만 놓고 보면 긴장감 넘치게 잘 뽑혀서 볼만합니다. 제이미 리 커티스의 풋풋한 비주얼도 좋고 론 실버의 (비록 캐릭터는 좀 난해하지만) 찌질 집착 빌런 캐릭터도 역할에 맞게 불쾌하고 좋아요. ㅋㅋ 훗날 T2로 인생작을 남길 브래드 피델의 음악도 뭐 적절하구요. (이 얘긴 여기에 이어서 '폭풍속으로'를 봤기 때문에 적게 됐습니다. 그 영화 음악 구리더라구요. ㅠㅜ)
(이 역시 영화 잡지 스틸샷으로 익숙! 액션 연출 좋습니다. 과장되지 않게 적당히 현실적. 차분한 긴장감 같은 느낌.)
- 결론적으로 뭐...
캐서린 비글로우 영화들에 호감이 있는데 이건 안 봤네. 라는 분들이 숙제 삼아 한 번 큰 기대 없이 보실만한 영홥니다.
엉멍진창인 부분도 있고 구린 부분도 많지만 동시에 꽤 근사한 부분도 있고, 앞으로 (좀 많이 훗날이지만) 크게 될 분의 좀 부족하던 시절 작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구요.
나쁘지 않게 봤습니다.
(풋풋 파릇한 커티스 여사님의 제복 간지 보는 것도 즐겁구요.)
+ 여기 론 실버는 증권가에서 일하는 돈 썩어 넘치는 양복맨으로 나옵니다. 선민 의식 같은 것도 쩔고 허세에 비해 알멩이는 없는 찌질이죠. 죽이는 것도 힘 없고 무방비한 상태의 일반 시민들만 팡팡. 위기에 처했을 땐 넘치는 돈으로 고용한 변호사가 출동해서 다 해결해주고요. 어쩌면 '공공의 적'의 이성재 캐릭터에 영향을 준 게 '아메리칸 싸이코'말고 이 영화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022.07.26 17:30
2022.07.26 21:23
네 그 베드씬 진짜 황당하더라구요. 니들이 지금 그럴 때니? 리얼리??? ㅋㅋㅋ 당해도 싸다 싶었을 정도.
론 실버가 이런 찌질류 악역에 일가견이 있었죠. '타임캅'에서도 그랬고 뭔가 평범한 배역으로도 분명히 봤는데 악역들만 기억에 남아요.
말씀대로 각본은 비글로우랑 다른 작가가 서로 고쳐대기라도 한 건지 뭔가 참 부실했는데 그걸 이만큼 살려낸 걸 보면 비글로우 연출력은 진작부터 훌륭했다 싶고요.
그러고보니 그 영화에도 나오셨군요. 임팩트 강한 외모라 역할은 한정되는데 그래도 지금껏 잘 버티고 계신 게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맡은 배역 소화도 충분히 잘 하구요.
2022.07.26 21:53
[행운의 반전]에서 제레미 아이언스의 변호사를 맡았을 때 론 실버는 비교적 멀쩡했지요.
2022.07.27 00:00
2022.07.26 17:50
리볼버를 좋아하니 열심히 보기는 봤었는데 지금은 그저 가정에서 한 70인치 디지털 Tv로 다시 보면 얼마나 화면이 "퍼렇게" 보일까 정도 궁금증만 있네요. 같은 경찰이 이상하게 제이미 리 커티스 편을 안들고 영화가 정말 답답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2022.07.26 21:25
놀랍게도 생각보다 안 파랗습니다. ㅋㅋ 제가 우연히도 수영님이랑 똑같은 생각을 하며 봤거든요. 옛날 티비와 요즘 티비의 차이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네요. ㅋㅋ
뭐 완전 신입이라 감싸줄 사람도 없는 데다가 여자라서 무시당한다는 설정도 좀 깔려 있긴 한데, 그래도 과했죠. 걍 개연성 망한 부분이라 느꼈습니다.
2022.07.27 00:31
2022.07.27 09:11
'트루 라이즈'랑 고작 4년 차이인데 인상이 확 다르죠. 이 영화에서 훠얼씬 젊어 보입니다. ㅋㅋ
2022.07.27 12:36
얼마전 케이블 티비에서 NCIS를 봤는데 미중년되신 제이미 리 커티스 님을 영접해서 좋았습니다. 엄청 섹쉬하시던데요 여전히 짧은머리인데 범죄용의자에게 뻐꾸기날리는(미끼겠지만) 장면도 좋았습니다
2022.07.27 13:23
제가 보는 화면에서 이상한 타이밍에 줄이 잘려서
범죄용
의자에게... 라고 보여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ㅋㅋㅋ
2022.07.27 19:09
2022.07.27 19:48
재밌으실 거란 말씀은 차마 못 드리겠지만 어차피 봐야지... 하셨다면 걍 얼른 보고 치우(?)시죠.
제가 요즘 그런 숙제들 위주로 감상 중인데 후련하고 좋습니다. ㅋㅋㅋ
작년에 오랜만에 폭풍속으로 봤는데 그걸 비글로우 감독님 데뷔작으로 착각하고 있었다가 발견한 작품이네요. 이어서 감상했는데 말씀대로 예전 영화 기준으로도 다소 억지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막판까지 관객들의 발을 동동 굴리기 위한 전개들이 많죠. 그 베드씬 나오는 파트에서는 좀 짜증까지 났던 기억이네요 ㅋㅋ
어쨌든 그래도 스토커 변태 살인마 빌런이 제법 그럴듯하게 잘 구축됐던 것 같고 커티스 여사님은 아름답고 섹시하고 포스있고 텐션은 끝까지 잘 유지되다보니 그럭저럭 재밌게 봤습니다. 대부분 지적할만한 문제는 각본 자체에 있지 않았나 싶은데 역시나 앞으로 명감독 되실 분이라 인상적인 연출들이 많았구요. 특히 그 초반에 슈퍼마켓? 씬이 상당히 강렬했어요.
저 하이랜더 빌런님은 최근 출연작 하면 프라미싱 영 우먼이 떠오르네요. 첫인상과 다르게 끝까지 훈훈한 역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