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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지가 언제인데 이렇게 늦게 리뷰를.... (긁적긁적)


저는 오징어게임을 아직 안봤습니다만 오영수 배우님이 골든 글로브를 탔다는 소식에는 좀 흥분했습니다. 아니 하도 여기저기서 "우린... 깐부잖아~!" 라는 오영수 배우님의 절절한 씬이 나와대니 모를 수가 없었네요. 그러다 마침 신문에서 연극 광고를 하는 것도 봐서 이 참에 월드스타를 봐야겠다 싶어 힘겹게 예매를 하고 보고 왔습니다. 얼마만의 대학로인지... 

과장이 아니라 오영수 배우님 회차가 제일 인기가 많았습니다. 인기로 치면야 당연히 서울대 훈남의 살아있는 포르말린 박제(...)인 이상윤 회차가 제일 많아야 할텐데 오영수 배우님 회차가 그걸 능가했습니다. 프로이트 박사는 신구 / 오영수 이렇게 두 배우님이 맡으셨고 루이스는 이상윤 / 전박찬 이렇게 더블캐스팅이었는데요. 신구 / 이상윤 조합보다 오영수 / 전박찬 이 조합이 훨씬 더 자리가 많아 나갔습니다. 이것 때문에 어떻게든 오영수 / 이상윤 회차를 보려고 하루종일 새로고침을 하면서 예매전쟁에 참여했는데... 이상하게도 전 분명히 오영수 / 이상윤 회차를 예매했는데 정작 루이스로 나오는 건 전박찬 배우더군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상윤 씨는 아마 내년에도 이 연극을 또 할 것 같은 예감이... 왜냐하면 또 열렬한 기독교도 시잖아요. 본인의 믿음을 연기로 체현하는데 이만한 캐릭터가 또 없죠 ㅋ


정신분석의 대가 프로이트가 C.S. 루이스를 만나 오프라인 키배를 뜬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으면 당연히 엄청 싸웠겠죠.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막 이 둘이 만난 프로이트의 집까지 드리우기 직전이고 논쟁 도중 툭하면 사이렌이 울리고 라디오 경보 방송이 나옵니다. 프로이트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고 루이스는 당돌하게 그의 앞에서 유신론적이고 낙관론적인 주장을 합니다. 워낙에 유구한 주제이면서도 흥미롭죠. 신이 있나 없나,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망가진 세상을 방관할 수 있냐는 무신론자 프로이트의 독기 서린 질문에 루이스는 팽팽하게 맞섭니다. 그럼에도 신은 있고 신은 사랑을 끝없이 알린다고. 비관 대 낙관, 유신론 대 무신론, 감성 대 이성으로 둘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얼핏 보면 두 입장이 격돌하는 것 같지만 이 연극의 기본 무대가 되는 곳이 프로이트의 집이라는 것, 루이스가 이 집을 방문했다가 떠나가는 것, 프로이트는 죽어간다는 것, 음악을 들으면 자신이 독해하지 못하는 감정적 반응이 일어나 그걸 통제하지 못하는 게 두렵다고 하던 프로이트가 마지막엔 음악을 틀어놓는다는 것에서 저는 이 이야기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 봤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쉽게 빠지는 회의주의에 한줌 희망을 부리고 거기에 어느새 감화되는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프로이트가 대표자 격으로 나선 것은 아닐지. 어쩌면 야훼 신의 신앙이 보편화되어있는 서구사회의 역사를 비신앙인 동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해석일 수도 있겠습니다. 달리 보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서 모든 긍정과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그래도 신(의 사랑)은 있다고 뻔뻔하게 부르짖는 한 종교인을 소환시켜 뭔가를 다시 각성시키려 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시대에는 참 잘 들어맞죠. 역병이 돌고 일자리는 다 말라가는데 정치 지도자들은 무능해보이기만 하고 이제 얼치기 권력주의자나 비즈니스 쇼맨쉽 엔터테이너가 한 나라의 수장을 맡으려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니.


인상 깊었던 건, C.S. 루이스가 왜 신은 인간이라는 피조물에게 이토록 고통을 주느냐고 하는 질문에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답한 지점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현실 앞에서 어떻게 그걸 감히 신의 뜻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냐는 그의 그 솔직함은 대책없는 낙관이나 신을 향한 의존만을 부르짖는 비인간적인 종교의 모습과 달라서 좀 신선했습니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며 피조물의 삶을 무기력한 피학적 존재방식으로 만들기 일쑤인데, 이 캐릭터의 "신의 사랑"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연결지어지는 부분은 좀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강하게 항변하는 부분도 꽤나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과학으로도 아직 세상의 모든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을 때 과학의 무능함은 존중받는데, 왜 신의 진리는 이렇게 당장 인간을 이해시켜야하는가 하고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신의 전지전능과, 사랑이라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부분을 신이 설명해주지 않는 게 너무 무자비하다는 그런 인격적 대응 때문이겠지요.


신에 대한 질문은 반드시 인간의 고통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니까 신에 대한 질문은 고통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첫번째 질문을 하기 위한 전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답을 찾아가는 와중에 루이스는 프로이트에게 끝내 위안을 주지 못하고, 프로이트는 그의 무신론적 지론에서 그렇게 거부하던 음악을 마침내 듣죠.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신을 향한 행복과 불행의 질문은 둘이 융화될 때 새로운 답이 나온다는 그런 결론이 아닐런지. 인간은 이성으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신을 믿는 것은 생각보다 비이성적인 게 아니라 삶을 향한 일종의 합리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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