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8 11:45
- 글 제목대로 1976년생이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51분. 스포일러 신경 안 쓰고 막 적습니다.
('우린 경고했다잉~' 이라는 카피가 재밌습니다.)
- 이탈리아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손씨가 아내의 출산을 보기 위해 병원으로 후닥닥 달려가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결론은 사산. 뭔 신부 하나가 다가와서 '아내에겐 비밀로 하고 그냥 이거 한 번 키워보지?'라며 다른 신생아를 들이밀구요. 고민 끝에 데려다 키우고, 일단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손씨 가족입니다만. 세 살인가 네 살인가 생일 파티에 수상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나고. 이 개에게 노려봄을 당한 유모가 갑자기 저택 윗층으로 올라가 "날 봐 데미안~ 모두 널 위한 거란다~~" 라고 외치며 목에 밧줄을 메고 번지를 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죠.
(그러니까 대략 이렇게 속 썩이던 우리 금쪽이 데미안군이)
-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면요. 낡았습니다. ㅋㅋ 영화 자체가 낡았다... 라기 보단 이야기와 소재가 낡았죠. 악마의 숫자 666! 적 그리스도의 등장!! 내 새끼가 악마 대빵이라니!!! 인류의 운명은!!!? 이런 이야기를 궁서체로 진지하게 하는 영화를 2024년에 보면 어쩔 수 없이 철이 한 10번쯤 지났군요...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게다가 이런 류 이야기의 '원조'답게 아무래도 딱 저것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후대에 비슷한 소재 영화들이 수백 수천 편이 쏟아져 나오며 모두 이 영화 속 설정을 갖고 조합, 변형, 발전을 시켜댔으며 저는 그걸 또 신나게 보며 나이 먹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리고 전에도 비교했던 '엑소시스트'와 나란히 놓고 보면 그게... '엑소시스트'는 딱히 시대와 철을 타지 않는 이야기잖아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뜻'과 인간의 퍽퍽한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라든가. 희생이라든가 구원이라든가... 그런 철학적이고 유행 안 타는 올타임 인기 소재를 다룬 이야기인 반면에 이 '오멘'은 딱 세기말 종말론 유행 시기 최적화 아이템입니다. 인간적인 드라마라는 게 거의 없고 그저 적그리스도와 인류 멸망이라는 소재 하나에만 올인하니까요. 여러모로 지금 보기엔 싱겁고, 또 건질 것이 별로 없습니다.
(사랑 넘치는 젊은이 유모 누나와)
- 하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본다면, 기본적으로 잘 만든 장르물입니다.
일단 감독이 리처드 도너잖아요. 능력 있는 감독님이 그럴싸한 분위기를 잘 잡고 미장센이나 포인트가 되는 호러 장면들 같은 걸 유려하게 잘 연출해 주셔서 재미가 있습니다. 초반의 젊은 유모 점프 장면 같은 것도 그렇고, 베일록 부인은 등장할 때마다 으스스 포스를 맘껏 발산해 주시고, 그 외에도 사람 죽어나가는 장면들은 거의 빠짐 없이 지금 봐도 꽤 좋은 호러입니다.
캐스팅도 아주 잘 됐어요. 사실 연기할 게 별로 없지만 어쨌든 주인공(...)인 로버트 역할에 그레고리 펙 같이 무게감 있는 연기자를 캐스팅한 건 영화가 저렴해 보이지 않게 만들어준 신의 한 수였고, 그나마 번뇌와 고통 같은 걸 표현해주는 역할의 아내 캐릭터를 리 레믹 여사님이 잘 연기해 주고요. 기자님과 베일록 부인 같은 인물들도 뭔가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풍겨주는 (배우님들 죄송;) 사람들로 잘 캐스팅 되어 있죠.
또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며 로케이션해 보여주는 풍경들도 영화 분위기에 딱 맞게 좋구요. 뭣보다 주인공네가 생활하는 대저택의 이미지가 참 좋습니다.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금쪽이 하나 때문에 부모가 고통 받는다... 라는 사실은 소소한 이야기의 스케일을 대폭 뻥튀기 해주는 데 큰 공헌을 하더라구요. ㅋㅋ
(신앙심 깊고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 아쉬운 부분을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데미안입니다. 뭐 적그리스도 그 자체로서 주변 사람들을 마구 죽여 없애는 사악한 존재 역할을 그런 어린애에게 맡겨 놨으니 이보다 더한 뭘 시키긴 윤리적으로 무리였겠습니다만. 그래도 연출 같은 걸로 좀 더 살벌한 느낌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싶었구요.
또 극중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거의 다루지 않아요. 사실 대단한 멜로드라마 아닙니까. 금이야 옥이야 열심히 키운 자식 놈이 자기들을 죽이고 세상을 멸망 시킬 존재라는 거. 이런 부분을 잘 살렸으면 엄마가 맞는 비극적 최후도, 클라이막스에서 로버트 손이 내리는 결단도 훨씬 강렬하게 살아났을 텐데 그런 게 없어요. 특히 우리의 로버트 아저씨는 두어 번 의무적으로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인데!' 라는 대사를 뱉어주는 걸 제외하면 딱히 뭐가 없어서 마지막에 데미안이 "아빠, 왜 이러세요!" 라고 인간적인 척 할 때 멈칫하다 총 맞아 죽는 게 어색할 지경이었습니다. ㅋㅋ
(검색해보면 흑백 스틸들이 많이 나오는데, 마치 원래 흑백 영화인 것처럼 잘 어울린다는 게 함정. 흑백 버전도 보고 싶네요. 더 무서울 듯.)
- 어쨌든 뭐, '엑소시스트'처럼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남을만한 작품은 못 된다 하더라도 추억은 방울방울 모드로 재감상하기엔 모자람이 없는 소품 오컬트 호러였습니다. (제작비 3백만 달러로 6천만 달러를 벌었다고 합니다.) 지금 보기 좀 싱겁다 하더라도 원조님이시잖아요. 원조 대우는 해드려야 하니 조금은 관대한 마음으로 봐 줘야죠. ㅋㅋ
어째서 이렇게 유명하고 인기도 좋았던 영화가 vod 서비스가 안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봤습니다. 끄읕.
+ 데미안 역을 맡았던 배우님은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봤더니 이 영화 이후로 1980년에 아역으로 영화 하나 찍고, 그 후로는 배우를 그만두셨나봐요. 나아중에 나온 오멘 리메이크 작품에 타블로이드 기자로 카메오 출연한 게 필모의 전부네요.
++ 데미안이 엄마랑 동물원에 가니 동물들이 다 겁에 질려 도망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때 유독 비비들만 데미안을 보고 마구 화를 내다가 결국엔 우루루 몰려와서 데미안이 탄 차를 공격합니다. 그렇습니다. 인류의 평화는 우리 비비 전사님들이 지키는 것!!
...근데 동물들 입장에서 기독교적 종말이란 건 뭘까요? 뭐 손해볼 게 있긴 한가??
+++ 저작권이 만료된 건지 그냥 배째라 불법 영상인데 단속이 안 되고 있는 건지...
어쨌든 한글 자막까지 붙어 있는 유튜브 버전입니다. vod 서비스들을 다 뒤져봐도 리메이크 밖에 안 나와서 이걸로 봤어요. 용서해주십... ㅠㅜ
++++ 짤 검색하다 보니 재밌는 포스터들이 좀 보여서 그냥 올려 봅니다.
일단 지금은 마치 대표 이미지처럼 되어 버린 짤인데... 사실 영화엔 안 나오는 장면이죠.
뒷 배경으로 보이는 저택을 자세히 보면 소소한 스포일러가 숨어 있는 게 재밌습니다.
여기서부터 창의성 발동 시작... 인데 이 짤은 뭔가 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가구요.
창의적이지 않습니까? ㅋㅋㅋ 맘에 들긴 하는데 영화 포스터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구요.
실제 폴란드 포스터였다는 듯 한데... 허허. 확실히 찝찝하고 기분 나쁘게 잘 만들긴 했는데 좀 과한 듯 하기도 하구요.
2024.06.08 12:19
2024.06.08 22:16
제가 어려서 읽었던 소설이 그 버전인지 다른 버전인진 모르겠는데 영화 장면들 흑백으로 실려 있었던 건 분명히 기억납니다. 확실히 그 시절엔 그게 영화보다 더 무서웠죠. ㅋㅋ
2024.06.08 12:22
[혹성탈출], [패튼 대전차 군단], [빠삐용],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로 여러 번 후보에 오르다가 이 영화로 오스카를 드디어 받게 되신 제리 골드스미스. 그 때 버나드 허만의 두 끝내주는 유작 [옵세션]과 [택시 드라이버]도 후보에 올랐는데, 허만 옹께서는 그 옛날에 [All That Money Can Buy]와 [시민 케인]으로 처음 후보에 올라서 전자로 수상하셨으니 딱히 아쉽지는 않지요.
2024.06.08 22:17
아하, 그러고보니 이게 무려 오스카 수상작이었던 거군요. ㅋㅋ 음악 좋았습니다. 잘 쓰였고 듣기에 폼도 나구요. 특히 그 유명한 테마곡은 잊을 수가 없죠. 이후 비슷한 오컬트 영화들 음악에 영향도 많이 준 것 같아요.
2024.06.08 12:54
2024.06.08 22:18
네 저도 그 시절에 티비로 접했던 영화니까 확실합니다. ㅋㅋ 20세기엔 정말 그 666이 모든 음모론과 다크 환타지의 정점이자 끝판왕 비슷한 거였으니까요. 이 영화가 미친 영향이 정말로 거대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폴란드 포스터는... 그게 그렇죠. 이렇게 검색해서 나오는 짤로 보는 건 재밌는데 저게 실제 포스터라면 사람들 관람 유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아요. 하하.
2024.06.08 18:51
2024.06.08 22:21
오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전 이 영화의 사망씬들 거의 다 기억하고 살았는데 딱 그 장면만 까먹고 있었더라구요. 근데 살짝 웃겼어요. 뭔가 어린애가 커튼 안에서 그거 붙들고 빙빙 도는 장난 쳤을 때 같은 비주얼이거든요. ㅋㅋ 그 직후에 우왕! 하고 달려드는 베이록 부인은 무서웠지만요.
아... 그랬나요. 성경책 읽은지 오래돼서 까먹었나 봅니다. 전 그냥 인간들만 망하고 동물들은 대충 살던대로 사는 줄. ㅋㅋ 근데 동물은 천국도 지옥도 안 갈 테니 뭘까요. 그냥 증발해버리는 건가(...)
저도 그게 가장 괜찮아 보여요. 지나치게 예술혼 불타는 것도 아니고, 세련되면서 보는 재미도 있네요. 방에다 붙여 놓진 못할 디자인이지만요. ㅋㅋ
2024.06.08 22:46
2024.06.09 15:23
어려서 본 영화들이 다 그렇죠 뭐. 뭔진 모르겠는데 재밌고 무섭고 신나고... 그 시절이 그립읍니다. ㅋㅋㅋ
오멘 프리퀄 재밌어요. 여성 관람자 입장에선 많이 화가 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재밌습니다? 부디 쏘맥님도 재밌게 보시길!
2024.06.09 10:41
2024.06.09 15:24
2편은 티비에서 보긴 봤는데 처음부터 못 보고 중간만 보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끝까지 못 봤어요. 단편적으로 몇몇 장면들만 기억이 나는데 그게 그 영화가 맞는지도 가물가물하고... ㅋㅋ
저도 이 영화 보고 나서 666과 적그리스도 마니아가 된다는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그땐 한국 교회 목사들까지 이런 얘길 진지하게 하던 시절이라 더 오래 갔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 양반들 왜 그러셨는지 참... ㅋㅋ
오래전에 범우사에서 나온 책 있어요. 세로줄로 된 책. 어린 시절 볼 때는 누런 종이에 활자로 꾹꾹 눌러 인쇄된 그 책이 악마의 책 자체로 보이더라고요. 영화 장면들도 흑백 사진으로 몇 장 실려 있는데 그 섬뜩함이 영화를 아득히 뛰어넘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