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9 23:32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숀 펜이 연기하는 중년 남자가 50년대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가 겪었던 사춘기를 회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실 텐데, 정말 그렇습니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레이 브래드베리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브래드베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만.
영화의 이야기는 정말 별 게 없습니다. 소년은 두 남동생과 함께 시골 숲과 물을 뛰어다니며 놉니다. 아빠는 엄격하고 엄마는 자상합니다. 사춘기이니 부모, 특히 아빠와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 그런데 맬릭은 이 소박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거대하게 다룹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15분이 지나면 더글러스 트럼블(네, 그 더글러스 트럼블 맞습니다!)이 만든 특수효과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게 우주 시작으로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탄생, 공룡들이 뛰노는 백악기를 거쳐 소년이 사는 20세기까지 갑니다. 지금 큐브릭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지경이죠.
영화의 태도는 종교적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적이죠. 주인공 소년은 영화 내내 종교와 믿음, 그로 인해 파생된 죄의식에 대해 관객들에게 속삭입니다. 특히 [욥기]의 테마는 끈질기게 반복됩니다. 영화 전체가 우리에게 모든 걸 주기도 하지만 가차없이 빼앗기도 하는 매정한 신에 대한 묵상이지요.
이 종교적 태도는 소년과 아버지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투영됩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재능있는 엔지니어지만 직장에서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이 불공정하고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아들들을 훈련시키려 합니다. 하지만 아들들에게 그런 아버지는 잔인한 폭군일 뿐이죠.
이런 환경과 분위기가 기독교나 기타 일신론에 대한 묵상으로 연결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알고 보면 사실 세상 전부를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신론의 세계관이라는 건 기껏해야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남자애들이 성장해가며 만들어내는 세계관을 멋대로 일반화시킨 것인지도 모르죠. 이렇게 보면 [트리 오브 라이프]의 과대망상은 전혀 다른 의미를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맬릭은 보다 진지했을 것 같습니다만.
의미가 어떻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장관입니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거의 자유연상에 가까운 논리로 20세기 중반 미들랜드에서 자란 미국 소년의 머릿속을 그려내는데, 촬영과 편집이 거의 날개를 단 것 같습니다. 가끔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런 건 또 처음이네!'라는 인상을 주는 영화들이 있는데, [트리 오브 라이프]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굳이 내용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관객들에게 쏟아지는 시청각적 쾌락이 만만치 않아서 이것만 즐겨도 손해볼 일은 없죠.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렇듯, 클래식 음악을 잔뜩 사용한 뮤직 비디오이기도 합니다. 쿠프랭에서부터 브람스에 이르기까지 정말 온갖 곡들이 무심하게 선곡되어 나오는데, 거칠고 노골적이어야 마땅한 이 선곡이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걸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11/10/19)
★★★☆
기타등등
맬릭의 아이팟을 훔쳐보고 싶습니다. 영화에 사용된 기성곡의 한 70퍼센트가 제 아이팟에 있는 곡들과 겹쳐요.
감독: Terrence Malick, 출연: Brad Pitt, Sean Penn, Jessica Chastain, Hunter McCracken, Laramie Eppler, Tye Sheridan
IMDb http://www.imdb.com/title/tt04783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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