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7 23:00
-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24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간략하게 흰 글자로 적을 게요.
(옛날 옛적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분들은 보지 마세요. ㅠㅜ)
- "방기의 하이에나로 불리는 세네갈의 전설적인 용병 샤카와 라파, 미드나잇은 쿠데타가 발발한 기니비사우에서 마약왕을 빼내오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탈출 과정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용병 일행은 비행기를 정비하고 연료를 구하는 동안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신 살룸지역 해안가 휴양지 캠프에 자리잡는다." (티빙 설명 인용)
그런데 그 캠프는 손님이든 주인장이든 다들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무시무시한, 혹은 위험한 놈들이었고. 곧 주인공 3인방은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뭐 이런 식의 도입부인데요.
(용병 3인방 + 마약왕 아저씨가 도주 중에 곤란한 상황에 빠져 예정에 없던 외딴 마을 캠프를 방문한다... 라는 웨스턴스런 설정입니다.)
- 제가 처음에 굵고 큰 이탤릭체로 적어 놓은 부분을 봅시다. 방기, 시니비사우, 살룸 지역. 들어 보셨습니까? ㅋㅋ 검색을 해 보면 '방기'는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라고 합니다. '기니비사우'는 서아프리카의 국가 이름이구요. '살룸'이라는 곳은 세네갈에 존재하는 지명이네요. '살룸 삼각지'라고 불리는 곳이고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인가 봅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세네갈 영화겠구요.
문제는 이게 단순하게 지명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국가들과 현대사, 지정학적 관계 같은 것. 그리고 영화 속 지명들에 얽힌 정치, 사회적 지식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을 기본 타겟으로 삼은 영화구요. 시작부터 끝까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설명 자막 따윈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호쾌하게 '알지?' 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영화이고, 전 당연히도 그런 것 하나도 모릅니다. ㅋㅋㅋ 그리고 당연히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 고유 명사들은 저걸로 끝이 아니에요. 다수의 사람 이름과 사건 이름들이 튀어나오고 역시나 당연하다는 듯이 '알지?'라는 식으로... orz
(초반엔 좀 상쾌한 코믹 액션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구요. 캐릭터들도 좀 만화스럽습니다. 좌측부터 힘캐, 지능캐, 법사캐... 이런 식이에요. 진짜 법사라는 게 포인트. ㅋㅋ)
- 그럼 일단 영화는 어떤 영화냐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옛날 타란티노 스타일입니다. 가장 닮아서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황혼부터 새벽까지'이니 로드리게즈 이야기도 해야할 것 같지만 그보단 타란티노 스타일에 훨씬 가깝습니다. 일단의 범죄자(엄밀히 말해 '용병'이지만 극중 묘사를 보면 그거나 그거나...) 무리들이 큰 건을 하고 도주 중에 잠시 쉬어갈 포인트로 정하고 방문한 곳이 알고 보니 초현실 생지옥이었다네. 라는 이야기구요. 살벌한 내용과 일부러 위화감을 일으키는 가벼운 개그들이 종종 튀어나오고. 캐릭터들은 만화처럼 과장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이 놈들은 한 번 자리 잡고 앉기만 하면 뭔가에 대해 와다다다 수다를 떨어대는데 그 수다가... 마돈나 처녀 논란(?) 같은 게 아니라 아프리카 현대사인 겁니다. 대충 그래요.
(여성 캐릭터는 딱 하나 나오는데 대체로 기능적인 캐릭터입니다. 긴장감 유발 및 주인공들 외의 '동료' 하나쯤 있어야 쓰지 않겠냐... 는 식.)
- 방금 전에 적은 내용을 보셨으니 짐작하시겠지만, 일단 이 수다 장면들이 문제입니다. 마돈나가 누구인지, Like a virgin이 뭔 제목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타란티노 캐릭터가 와다다 떠들어대는 내용을 보면 그래도 대충 맥락은 짐작이 가잖아요? 근데 이건 그게 안 됩니다. 그냥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요. ㅋㅋㅋ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영화가 알고 보면 되게 정색하는 진지한 영화라는 겁니다. 몇 차례의 반전과 진상 규명(?) 씬들에 의해 밝혀지는 이 이야기의 실체는 철저하게 아프리카 작은 국가들의 비극 처참한 현대사, 그리고 바로 지금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더더욱 배경 지식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후략 ㅠㅜ)
(뭐 아예 못 알아먹을 정돈 아니긴 합니다. 디테일은 몰라도 이런 짤을 보면 딱 떠오르는 이 동네의 오래된 문제가 있고, 그게 중요 소재로 나와요.)
- 그래서 그렇게 영화의 함의를 거의 놓치면서, 그래도 대략 '아 이 동네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 이야기구나' 라는 정도만 이해하면서 간신히 겉만 핥으면서 따라가 보면... 장르물로서는 대략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이 자기네 전통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영화들을 볼 때의 재미 같은 게 있거든요. 미지의 토속 바이브라고나 할까(...) 좀 거칠거칠하면서도 당당하게 매끈한 헐리웃 스타일과는 다른 뭔가를 펼쳐 보여주는데 그게 볼만합니다. 후반에 등장하는 괴물체들의 묘사라든가. 리듬감 확실하면서 파워풀하게 펼쳐지는 액션 연출이라든가. 그리고 뭔가 개연성은 개나 줘 버린 듯 하면서도 예측 불허로 흘러가는 전개 같은 것. 그런 게 이 영화의 매력이고 이런 부분을 고평가 받았는지 썩은 토마토 지수 같은 것도 대단히 높습니다. 콕 집어 말해서 리뷰 수 54개에 96%라는 대단한 수치를 자랑하죠.
다만... 또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이야기가 좀 많이 거칩니다. 가끔 보면 이게 제게 익숙하지 않은 자기네 스타일로 달리는 건지, 아님 그냥 대충 막 흘러가는 건지 헷갈리는 전개들이 있어요. ㅋㅋㅋ 특히 갑작스런 엔딩 같은 게 더 그렇구요. 다 보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엔딩이 아닌데, 처음부터 설정해 놓은 큰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려내질 못 해서 쌩뚱맞은 기분이 들고 그럽니다.
(그래도 저렴한 제작비로 최대한 임팩트 있는 장면을 뽑아내기 위한 노력은 충분했고. 어느 정도 먹히기도 합니다.)
- 대충 빨리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본격 세네갈 액션 호러 무비!' 같은 게 궁금하면 한 번 보시면 됩니다.
자신의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상식과 이해도를 테스트 해보고픈 분들도 보세요. ㅋㅋ
사실 그렇게 고유의 스타일 같은 게 느껴지고, 또 건전하고 정의로운 메시지까지 스토리에 잘 녹여 넣은 영화이니 호평 받을만도 하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저예산으로 인한 액션, 스펙터클의 한계 같은 것도 있고. 또 일반적인 기준으로 스토리가 그리 매끄럽지 않습니다. 순수 완성도만 놓고 평가한다면 '독특한 매력과 노골적인 단점이 공존하는 작품' 정도 돼요. 그 개성과 매력 쪽을 높이 사느냐, 일반적인 관점에서의 부족한 완성도가 못내 맘에 걸리느냐. 둘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릴 영화였습니다. 저는 뭐, 보는 동안 즐겁긴 했으나 역시 아쉬움도 컸고, 그래서 남에게 추천하진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끄읕.
(과연 이들의 운명은 대체 누가 궁금해할 것인가!!! 이런 걸 대뜸 들여 놓은 티빙의 미래는!!! 과연!!!!!!)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알고 보니 주인공들이 머무는 캠프의 주인장은 용병 일을 하다 은퇴한 양반이었고. 용병을 하던 옛날 옛적엔 인근 부족 소년들을 소년병으로 가혹하게 훈련시키고 전투로 내몰면서 그 중 몇몇을 성적으로 학대하기까지 했던 막장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샤카'가 바로 그 소년병이었던 거죠. 결국 비행기 사고는 이 곳을 방문해서 과거의 복수를 하려는 샤카의 자작극이었고, 샤카는 그 목적을 이룹니다. 캠프 주인장을 그 인간이 현역 시절에 사용하던 권총으로 쏴 죽여 버려요.
그런데 문제는 그 동네가 정체 불명의 초현실 존재들로부터 지배를 받는 곳이었다는 겁니다. 방금 죽은 그 양반은 그 존재들과 주민들의 중간자 역할을 하며 주민들을 제물로 바치며 평화를 이어오고 있었던 것. 그러던 양반이 죽어 버렸으니 그 괴상한 존재들은 샤카와 동료들을 습격해오기 시작하고요. 그 숫자와 힘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모두 물리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이었고, 그래서 샤카와 동료들은 캠프장으로부터 좀 떨어진 마을에 있는 비행기 수리 재료와 연료를 가져오기 위해 목숨을 건 액션을 벌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물용으로 가축처럼 사육되던 소년들도 구하고 뭐 대립하던 다른 캠프 방문자와 화해도 하고 나름 드라마를 이것저것 보여준 후에, 결국 중과부적으로 하나씩 죽어 나가고. 마지막엔 삼인방 중 가장 단순무식하던 멤버 하나랑 캠프 방문자 하나만 살아서 보트를 타고선 이 생지옥을 떠나가며 끝이 납니다.
2023.07.17 23:21
2023.07.17 23:49
애틀랜틱스... 분명히 리뷰를 읽었는데? 하고 검색해보니 2년 전에 thoma님께서 올려주셨군요. ㅋㅋ
확인해보니 아직도 넷플릭스에 있는데. 저도 문득 이걸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오래 넷플릭스에 머무는 경우가 의외로 그리 많지 않은데 말입니다. 예전에 적어 주셨던 글 내용도 솔깃하구요.
2023.07.18 01:34
애틀랜틱스 좀 취향에 따라 많이 갈릴 수도 있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매달 꾸준히 돈 갖다바치는 서비스에서 이런 거 사왔으면 한번 보긴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ㅋㅋㅋ
2023.07.18 08:16
ㅋㅋㅋㅋㅋ '매달 돈 갖다 바치는 서비스'라고 하시니 뭔가 설득력이 매우 강력합니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내려가기 전엔 꼭...
2023.07.18 13:05
[파워 도그 도그]나 [로마]처럼 넷플릭스 자체에서 만들었으니 내려가지 않겠지만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2023.07.18 19:09
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나요? 어쩐지 4년이 넘게 안 내려가고 있더라니... ㅋㅋ 암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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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세네갈 영화로군요. 갑자기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걸 보면 '애틀랜틱스'에 이어 세네갈 영화를(프랑스 합작이지만) 두 편을 보는 기록을 가지니까요. 다른 아프리카 영화는 거의 안 봤는데 말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