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 선호와 진화심리학

2013.04.09 00:30

멍멍 조회 수:2949

0.
이 글은 이성애 관계에 한정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제목만 보고도 '또 진화심리학이야! 정말 지긋지긋해!'하실 분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굽신.


이미 지나갈랑말랑한 주제이고 소모적으로 흐르기 좋은 주제인데다,
제가 바빠서 활발하게 대화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빠져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평소에 생각하던 것도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흐름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짧고 건조하게 쓰겠습니다.


1.
남성이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 성향에 대해 찾아보다가 위키에서 이런 글을 찾았습니다.
참고로 데이비드 버스는 진화심리학의 대가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David_Buss#Sex_Differences

 

저도 다 읽은 건 아니고, 관련된 부분만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David Buss has backed this evolutionary reasoning with research focused on the differing mating strategies that exist in each sex. In a large Cross-cultural study that included 10,047 individuals across 37 cultures Buss’ sought to first determine the different characteristics and qualities each sex looked for in a mate.[14] From these findings Buss was able to make evolutionary psychological hypotheses for why these differences exist. Buss found that men place very high importance on youth and hypothesized that modern men do this because of the fertility cues that youthful looks can give away,.[15][16] If men are to pass on their genes through reproduction, they must find a mate that is capable of doing so. If youth can give away fertility than it is no surprise that men would place such importance on these cues. Buss also found that women desire an older mate and later hypothesized that this may be so because of the social status an older mate may have achieved.[17] This social status could lead to more resources for her and her offspring, and therefore increase the likelihood of survival and further reproduction.

 

요약하자면 데이비드 버스가 37개국 만여명에 대해 수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배우자의 어린 나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것이 fertility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는 겁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어떤 현상이 오랜 (진화적인 스케일의) 시간에 걸쳐 넓은 (전지구적 규모의) 영역에서 유지되었다면
그것은 적응(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면 그 특질이 유전적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먼 과거의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가능은 하겠지만 어려우므로
진화심리학자들인 어떤 현상이 보편적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가급적 다양한 문화권에서 그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많이 관찰합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나타났다는 것이 유전적 원인이 있다는 것의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지만
강한 추측의 근거는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확증하려면 유전학이나 뇌과학의 도움이 필요할텐데 그것은 진화심리학자의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논문에서는 6개 대륙의 37개 국가에서 조사했다고 합니다.
37개국이 모든 인류는 아니며
(저자 스스로도 샘플이 모집단을 완전히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설사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하나의 관습에 불과하며 본성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고싶은 분이 계시다면 관습의 의미부터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남성들이 연상을 더 선호하는 문화권의 예를 들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지만요.

 

논문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저도 논문의 본문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http://homepage.psy.utexas.edu/homepage/group/busslab/pdffiles/SexDifferencesinHuman.PDF


2.
이러한 사실이 잠시익명할게요님의 글에 대한 반박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 글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특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그 글의 내용에 동의하기도 하고요.

 

당연해서 써봐야 바낭인 말입니다만
어떤 특성이 보편적이고 유전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성에 대한 선호와 같은 복잡한 특질은 비록 유전적이라고 해도
성향에 불과하고 통계적으로 나타날 뿐이지,
운명론적이거나 결정론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외모/나이에 대한 선호는 지방, 당, 나트륨에 대한 선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은 영양과잉의 시대에 다들 성인병으로 요절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니듯이
어떤 남성이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10만년전과는 달리) 생물학적 특성보다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특성을 더 우위에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링크한 논문에 따르면
남성들이 연하를, 여성들이 연상을 선호한다는 사실 자체는 문화권에 상관없이 일관되지만
원하는 나이차이는 경제력이 높은 나라일수록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편차를 고려하면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자를 원하는 남성들이 많은 것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물론 논문의 샘플이 대부분 20대임을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맵고 짠 음식을 자제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일이듯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특성이 가중치를 두는 것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외모와 나이가 예전처럼 건강과 재생산가능성의 좋은 지표가 아니고
당연히 개인의 행복의 지표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좋은 외모'가 건강을 왜곡하는 지표일 때에는 더욱 더..)

 

내 주변에 채식 다이어트해서 살 빼고 건강해진 사람 많다는 말에
인간은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
내 주변에는 다들 아직도 매일 햄버거 먹는다!
본인이 햄버거 싫어해도 부모님때문에 매일 먹는다!
...고 주장할 필요가 전혀 없듯이,

 

내 주변에 비슷한 연령대를 원하는 30대 이상 남성이 많더라는 말에
남성은 연하를 좋아하도록 진화했다!
내 주변에는 다들 연하를 좋아한다!
본인이 연상 좋아해도 부모님때문에 안된다!
...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한 선호는 많이 약해졌고
앞으로도 약해지겠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
진화심리학에 대한 얘기입니다.

듀게에도 진화심리학에 좋은 감정 안 가지신 분이 많으신 걸로 압니다.

그럴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론서 한두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서는
진화심리학이 무슨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양 휘두르는 얼뜨기들이
인터넷상에는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거기서 벗어나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이러해서야~'라는 얘기 잘 안합니다.
연구결과가 있고 학자들이 동의할 때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이러하다고 하더라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정도..)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과학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고
이 때문에 학자들도 진화심리학을 만능열쇠처럼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이 학문을 극우와 꼴마초들의 이데올로기로 치부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고 봅니다.

진화심리학은 강력한 설명력을 가지고 있고
신생학문으로서 활발히 연구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뇌과학이나 유전학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앞으로 더욱 많은 결과들을 낼 거라고 보고요.

 

아직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성과가 쌓여갈수록 진화심리학을 이데올로기나 장르문학으로 간주하기 어렵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는 근대과학에 대해 신학자들이 멘붕에 빠졌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의 특성이 진화한 긴 시간 동안
환경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일수록 더 잘 살아남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진화가 남긴 인간의 특성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겁니다.

이 학문을 통해 발견되는 인간의 특성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무시하고 폄하하기보다는 현실과 긴장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4.
짧게 쓰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짧게 되질 않았네요.
할머니 마음으로 쓰다보니 중언부언하게 되어서..
진지하게 쓴답시고 문체도 되게 꼰대같이 됐고...-.-;;

 

할머니 마음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글은 잠시익명할게요님의 글과 행인3님의 글을 읽고
평소 생각하던 바를 쓴 것이고요.
댓글에서 논쟁하는 분들을 타겟으로 한 글은 아닙니다.
(심지어 저는 댓글을 다 읽지도 않았어요..;;)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872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727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7449
55904 [바낭] 에바 Q 만큼이나 보고 싶은 이 주의 개봉작 [12] 로이배티 2013.04.08 4802
55903 마가렛 대처 사망 [16] amenic 2013.04.08 4965
55902 다이어트-89일째 [8] 은빛비 2013.04.08 1035
55901 한국 남녀 구기 단체스포츠의 수준 저하. [12] 내핍생활자_하지만생각은자유 2013.04.08 2948
55900 여러분 지금 드라마 뭐보세요 [25] 감동 2013.04.08 4012
55899 구가의 서랑 장옥정 번갈아 돌려가며 보다가 깜짝 놀랐네요. [6] poem II 2013.04.08 5200
55898 한국에선 동성애를 어떻게 보나요? [33] 아마데우스 2013.04.08 3697
55897 차별금지법에 "기독교"는 왜 반대하는가 [16] catgotmy 2013.04.08 2535
55896 [듀나인] 북유럽 여행 해보신 분~(+피오르드 관련 질문) [10] 오명가명 2013.04.08 2042
55895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 9일 공개 [4] amenic 2013.04.08 1504
» 어린 나이 선호와 진화심리학 [17] 멍멍 2013.04.09 2949
55893 지금 Ebs에서 밴드오브브라더스 합니다 [2] 러브귤 2013.04.09 1280
55892 홀리모터스 기대되네요!! [5] tealight 2013.04.09 1797
55891 강우석 - 투캅스의 진실은 뭔가요?? [5] 도야지 2013.04.09 4017
55890 에반게리온 패러디 작품들 게시물 어디갔나요? [1] 오치아이 2013.04.09 1085
55889 월화 드라마 역시 치열하네요 [4] 감동 2013.04.09 2360
55888 지하철에서 곁눈질로 훔쳐본 영화. [4] 꼼데 2013.04.09 2395
55887 타 애니에 등장한 에반게리온 패러디/오마쥬 모음 (엄청난 스압 有) [15] cadenza 2013.04.09 6649
55886 전 왜이럴까요?... [7] kct100 2013.04.09 2180
55885 (듀나in) 미니스크류 교정에 관한 질문 [2] 피클 2013.04.09 173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