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전서를 읽다가 머리가 아파져서 딴 책을 뒤지다가 우연히 정약용이 지은 시를 봤는데,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간단히 적습니다.

 

때는 1795년, 정조는 춘당대에서 꽃놀이 연회를 벌입니다. 그래서 당시 숙직이자 '나름' 귀염받던 정약용에게는 무려 말까지 빌려줘서 타고 오게 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굉장한 영광이지만, 정약용이 그 때의 기억을 더듬는데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어찌어찌 임금님 주최 술자리에 불려나갔는데, 못 마신다고 그래도 억지로 마시라고 해서 꾸역꾸역 석 잔 마시고 토해서 엎어졌어요. 그래서 동료들은 비웃고 임금님께서는 웃으셨죠."

 

 

아이고, 약용아... 우리 불쌍한 약용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좀 미안했는지 정조는 나중에 정약용을 따로 불러다가 같이 산책도 하고 차도 한 잔 내려줬다곤 합니다만.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이죠. 애초에 못 하는 술을 왜 먹입니까.

 

더욱 슬픈 건 정약용은 이런 몹쓸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이랍시고 정조 사후에 곱씹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보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이 있으니, 가해자(?) 정조는 그날의 잔치를 기록하면서 "올해 놀이에는 사람 엄청 많이 왔음. 모두 98명. 참석자 명단은 요렇고 저렇고... 잼있었다~" 정도만 적고 자기가 한 짓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는 것... 정약용의 언급도 이름 하나 적어놓은 게 다 입니다.

 

어찌 이리 슬픈 외사랑이란 말입니까.
저런 못된 사람을 나의 임금님이랍시고 추억하고 있는 정약용을 보니 절로 눈물이 솟구쳐서... 어깨를 흔들며 정신차려! 너는 조련당하고 있는 것 뿐이야!를 외치고 싶은 1인이었습니다. 순진무구하던 아기 오리 정약용에게 술을 퍼먹이며 추억 각인을 시켜놓은 정조 임금님 아주 나빠효.

 

그럼, 또 재미난 거 찾으러 가봅니다.

뿅뿅뿅.

 

https://www.facebook.com/historyminstrel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01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98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1299
108254 (듀나 대나무 숲) 어제 있었던 지옥의 술자리. 당연히 회사 사람들과! [10] chobo 2012.04.20 3639
108253 와 추신수 [63] 달빛처럼 2010.11.13 3639
108252 중화권 스타들 출연료가 엄청나네요. [14] 로사 2010.10.21 3639
108251 설리 인스타그램 풍경 [15] 가끔영화 2016.08.08 3638
108250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고 든 생각.. [7] 라인하르트백작 2015.02.16 3638
108249 질문) 영국 왕실에 관한 궁금증... (프린세스 로열 앤의 왕위 계승 서열?) [8] candid 2013.11.03 3638
108248 셋탑박스에 녹화기능이 없으니... 티비를 바꾸시면 안되나요? [13] Jade 2014.04.17 3638
» [역사 바낭] 정약용과 정조의 예쁜(?) 추억 [10] LH 2013.05.23 3638
108246 바낭,어떤 트윗을 보고)백수 된 왕상무를 라면 모델로 쓸 수 있는가 [3] 가끔영화 2013.04.21 3638
108245 배구 선수 옷이 왜 다른거죠 [3] 가끔영화 2012.08.16 3638
108244 [펌]함께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9] 메피스토 2011.09.28 3638
108243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송승헌 물망이라.. [10] WILLIS 2011.07.01 3638
108242 에프엑스의 '거울아 거울아' & 포미닛의 '피노키오'(+추가 시크릿의 '마보이', 시스타의 '샤이보이') [12] 자본주의의돼지 2011.07.02 3638
108241 황해 끝내주는 영환데 궁금한 점(스포일러) [11] 꽃과 바람 2010.12.29 3638
108240 [나가수] 재도전은 섭외 시점에서 이미 약속되었다? [9] 자본주의의돼지 2011.03.27 3638
108239 서열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나이를 따지는게 왜 미개한 짓이고 후진적인 문화인가? [29] soboo 2010.10.04 3638
108238 여러 가지... [12] DJUNA 2010.09.24 3638
108237 "비디오대여점 시대 끝났다"···美 최대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 파산 [8] scorsese 2010.08.30 3638
108236 김대중님은 안티가 정말 많네요... [9] 자력갱생 2010.08.10 3638
108235 일하기 싫은 자 [11] 레드필 2010.08.03 363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