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듀게 어느 분께서 "삶을 접을 예정"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전 인가 다른 분도 그런 뉘앙스의 글 올리신 것도 기억나구요. 잠이 잘 안오더군요. 저도 한때 진지하게 그랬던 시절 혹은 자기 파괴의 충동이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라 무엇이든지 말씀 좀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원론적으로야 "이미 죽어 있는 우리"가 진짜 진지하게 "처음으로"  "제대로" 죽으려는 사람에게 무슨 자격으로 조언이라고 드릴 수 있을 까요? 하지만 다시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의 오지랍이라 널리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댓글로 안 달고 따로 독립된 글로 올리는 이유는 행여나 비슷한 분들도 좀 보아주셨으면 하는 바램때문이겠죠.

 

1. 제가 올 여름에 만났던 스님에게 들었던 8가지 이야기 중 하나가  최근에 생을 자의로 마감지어 버린 어느 처자의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울진 근처 남의 절을 한동안 관리 비슷하게 하면서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처자는 근처 동네 출신 사람이었는데 평소에도 가족들이랑 가끔 절에 오곤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안면은 있는 상태였는데 올해 초파일에 가족이랑 온 그를 보는 순간 무언가 느낌이 싸하더랍니다. 사정을 잠시 알아보니 대처에서 한 3년 회사 다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한 3개월 된 상태였습니다. 근데 스님판단으론 그 가족이 그를 편하게 해 주는 게 아니고 자꾸 취업 서둘러라 하는 식으로 무언가 몰아붙이고 있어서 그 분이 고향에서 오히려 더 불편한 상황이더라는 거지요. 그래서 스님께서 그 아가씨를 따로 불러서 언제 혼자 좀 오라고 일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한 3주 뒤에 결국 가까운 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집 자기 방은 깨끗이 치우고 자기 물건도 다 없애 버리고 조용히 떠나 버렸답니다.

 

불교신자인 집안이라 스님에게 가족들이 소위 "천도제"라는 것을 부탁합니다. 근데 절집도 그런 경우는 잘 안해주는 데 이유는 천도 자체가 잘 안되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스님은 자기가 좀만 더 신경쓸 걸 하는 마음이라서 그냥 해 주었는 데 이상하게 천도가 잘되더랍니다. 제를 마친 날 밤 스님 꿈에 그 처자가 나타나서 고맙습니다 라면서 절을 꾸벅하고 가는데 꿈에서 깨어난 스님께선 무언가 너무 서러워서 출가하고 나서 처음으로 그 새벽에 대성통곡을 해서 동네 주민들이 무슨 일 난지 알고 뛰어 왔었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 후에 스님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처사요. 극락과 지옥이 어디 있소? 처사님은 지금 지옥에 있소? 극락에 있소?" "잘 모르겠습니다" "멀 몰라 딱 지옥이구먼 뭘"

 

이어지는 스님의 말씀 "극락과 지옥은 그걸 경험한 사람만이 가는 거요. 살면서 지옥만 경험한 사람은 지옥 가요. 사람은 경험한 대로 끌리게 되어 있소. 그니깐 살면서 극락구경 못한 사람은 죽어도 극락 못가요. 살아서 어떻게 극락을 보느냐? 그게 공부야" "내 머리가 바로 극락이고 내 발밑이 바로 지옥이요. 내 머리는 산 정상에 걸쳐 있고 내 발은 바다 속에 있는 거요. 그 이치를 알면 탁 트여" " 그 아이는 극락갔어.왜냐하면 아무것도 안 가지고 다 내려놓고 갔거든. 그니깐 천도가 잘 된거지. 비록 살 때는 지옥이었고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지만 그 삶과 죽음이 갈리는 그 순간에는 다 내려 놓았거든"

 

저는 아직도 스님 이야기를 다 이해를 못합니다. 아니요 이건 이해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2. 요즘 드나드는 다이빙 커뮤니티에 현직 소방관인 어느 다이버께서 EFR(emergency first responce)을 자기 집에서 무료로 가르쳐 주신다 해서 어제 밤 퇴근 후 밤늦게까지 한 8명쯤 모여서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았습니다. 말로만 듣던 Anne를 직접 보고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니깐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인형 얼굴조차 혹시 그 아이 얼굴을 따서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더랍니다. 어린 아이를 속절없이 잃은 프랑스인 부모가 그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던 그 결과물이 딸 이름을 딴 더미 인형과 근대 심폐소생술의 시초가 되었다는 좀더 자세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비록 인형이지만 가슴 부위를 힘주어서 누르는 실습을 땀 뻘뻘 흘리면서 하는 동안 생명이란 것이 이렇게 아득하고 어이없이 간단하게 생사가 갈라지는 거구나 하는 그런 느낌들이 확연히 다가옵디다..

 

저는 어제 그 글을 보면서 갑자기 진지하고 무겁던 그 심폐소생술 실습  분위기가 떠올랐습니다. 수 많은 죽음을 봐 오고 처리했던 현직 소방관의 무거운 표정과 애절한 사연들을 보고 들으면서 이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저 춥고 무서운 세계에 오히려 끌리던 제 자신의 과거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겠죠.

 

3. 저는 수영을 합니다 " 배우고" 싶어서요. 스쿠버다이빙도 합니다 "배우고" 싶어서요.  저는 삶을 삽니다 "배우고" 싶어서요. 저는 죽어도 궁금한 것은 못 참아요 . 진짜 삶이란게 겨우 이 정도 뿐인거야? 에이 별거 없네 라는 결론을 내기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젊을 때는 폼잡고 그렇게 말했었죠. "사는 게 아니고 살아내는 거다. 그게 안되면 앗쌀하게 죽지 머" . 그런 말 했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4. 어떻게 정리를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흠..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세요. 하지만 자의로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떤 경우든 먼저의 선결 과제는 다 내려 놓는 겁니다. 그거 안되면 살아도 개같은 인생이요. 죽어도 개같은 죽음일 따름입니다. 살아도 죽지 못해 사는 거고,죽어도 살지 못해 죽은 거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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