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직급도 꽤 높고 급여도 괜찮게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매일매일이 재미없었대요.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라는 과학소설을 읽게 됩니다. 우연히요. 

읽기를 마친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주는 드넓고 인생은 한 번뿐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2013년 9월, 불새 출판사는 첫 책으로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을 판 사나이』를 펴냅니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표지 디자인도 내지 편집도, 번역도, 제작도, 

전부 한 사람이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출판사에 직원이 대표 한 사람뿐이니 그랬겠지만, 

그 얘기를 들은 저는 

‘이 정도 작업량이면 저녁이 없는 삶, 주말이 없는 시간을 보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직장 때려치고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도 없이 

불새는 일곱 권의 과학소설을 남기고 문을 닫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나는 퀄리티의 문제. 

표지든 번역이든 편집이든 각 과정의 프로들이 작업을 해서 내놓는 다른 출판사의 단행본들과 나란히 놓으면 

불새의 책은 엉성합니다. 

다른 하나는 분야의 문제. 

과학소설은 세계적으로도 비주류 장르지만 특히 한국에서 유난히 환영받지 못하잖아요. 

하긴 과학소설이 아니더라도 한 분야만 출판해서 살아남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문학 경제경영 인문 아동 등 모든 분야의 책을 내는 대형 출판사들이 존재하는 딱 그만큼, 

어느 한 분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소규모 출판사도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영화계에서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던 것처럼, 

일종의 지원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예요.


불새가 문을 닫았을 때 대표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당시 그는 팔다 남은 책, 그러니까 악성 재고 때문에 심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자와 출판사와 서점이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서 불새의 상황을 알렸고.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성원해 준 덕분에 남은 재고를 거의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불새 대표가 뭘 했느냐. 

이런 빌어먹을, 다시 책을 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올바른 수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불새는 기사회생했습니다. 

이름하여 불새 과학소설 2기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바쁘지 않으실 때 한번쯤 찾아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덧)

언젠가 방한했을 때 했던 테드 창의 이야기를 덧붙여 둡니다.


“또 다른 클래식 SF를 한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976년 출판된 존 발리(John Varley)의 『캔자스의 유령』(The Phantom of Kansass)이라는 소설인데요. 

이 소설에는 이슈가 될 만한 사항들이 많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한 후에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다섯 페이지만 보더라도 세계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여러분들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캔자스의 유령』은 일종의 사고의 실험입니다. 

과학자들은 주로 사고의 실험을 하죠. 

즉, 실험실에서 할 수 없는 실험을 사고를 통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SF가 과학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한 방법은 허구의 형태로 사고의 실험을 해내는 것입니다. 

사고 실험의 주요 목표는 어떤 개별적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서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SF의 모든 기술이 『캔자스의 유령』처럼 급진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기술은 우리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을 가합니다. 

공장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꿨죠. 

바이오 기술은 과거에는 없었던 윤리적 딜레마를 초래합니다. 

인터넷은 지적 재산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SF가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보급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 될 수 있다, 라는 것을 이 소설이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일반적인 상황 그리고 가정을 다시 한 번 돌이켜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http://twinpix.egloos.com/445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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