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3 01:37
과거의 씨네필들은 주로 PC통신이나 오프라인 동호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이 생기고 PC통신 동호회들이 인터넷 기반으로 많이 이동했죠.
당시는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수입이 금지된 영화도 많았고 오래된 작품들은 찾기도 힘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수많은 영화들이 가위질에 훼손되어 개봉하거나 비디오 출시되기 일수였죠.
문제는 극장과 홈비디오 외에는 영화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제대로된 영화제도 없었고 그나마 프랑스 문화원같은 소규모 시네마테크나 대학교 영화동아리의 상영회,
PC통신 동호회의 상영회 등이 다른 창구였죠. 몇몇 매니아들은 주로 일본 등 해외에서 직접 공수한 비디오나 레이저디스크등으로 그 갈증을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씨네필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원전을 감상하고 금지된 작품을 감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영화 동호회는 무삭제 원판들이 돌던 가장 큰 창구였는데 여기서 직접 자막까지 넣어서 배포된 비디오들이 시네마테크나 대학교 영화과, 동아리등에 보급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자막이 달린 비디오는 대부분 이런 동호회나 수입업자들이 제작한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 예술영화, 컬트영화 붐에 호러물, 괴수물 등 장르영화팬들까지 다양한 씨네필들이 동호회로 모여들었죠.
영화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상영회에서 영화보고 비디오로 서로 돌려서도 보고 영화 토론하고 술도 한잔씩하고 교류하는 그런 문화가 형성이 되었습니다....만.....
여러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때로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가끔 일어나곤 했습니다.
사람간의 다툼이야 어디든 있는 일이지만 영화동호회라는 특성상 씨네필로서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불쾌한 행동을 일삼는 그런 사람들이 생기더군요.
대충 어떠하냐면 끝없이 자기가 가진 영화지식을 자랑하고 설파하고 다른 회원들의 영화적 소양이나 취향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는 다양한 영화를 보기가 매우 힘든 시절이다보니 나는 남보다 영화를 많이 봤다, 구하기 힘든 영화, 독특한 영화를 많이 봤다는 식으로 입을 털면서
"그 영화 아느냐? 그 영화도 안봤느냐?"는 식으로 다른 회원들에게 공격적인 언사를 날리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찬양을 끝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심미안이 있는 것처럼 구하기 힘든 영화, 특이한 영화에 대한 찬양과 숭배를 멈추지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정모나 상영회 등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이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개판이 되거나 다툼이 벌어지고 운영진들에게 민원이 빗발치게 되더군요.
저또한 모 장르영화 동호회에서 운영진을 잠깐 한적이 있었는데 이 문제로 인해 결국 악질적인 몇몇은 강퇴조치하였습니다.
재미있는건 이때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논쟁은 지금보다는 덜했다는거네요. 인터넷 동호회라 동호회 홈피에 게시판이나 채팅방도 있었지만
거기서는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자기 자랑만 늘어놓다말더군요.
문제는 이 사람들이 동호회가 아닌 영화제의 GV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해서 진행자들이 아주 진땀을 뺏다는군요.
질의응답에 발언권 얻으면 계속 질문을 빙자한 자기 영화지식 늘어놓기에 감독, 스탭에게 공격적이고 무례한 질문에 결국은 사회자의 제지에도 바락바락 발언을.....
저 역시 이런 이유로 당시에 GV는 안보고 그냥 나왔던 적이 많습니다. 영화제 뒷풀이 행사때 만난 감독이나 진행하던 평론가분들도 아주 이를 갈더군요.
심지어 성격 까칠했던 모 감독은 결국 참지 못하고 설전까지.....
이렇듯 당시의 찌질이 씨네필은 주로 오프라인에서 많이 활동하면서 여러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요즘 찐따 씨네필들은 주로 온라인에 많더군요.
그 이유는 예전처럼 동호회 문화가 많이 사라졌고 각종 인터넷 매체나 플랫폼을 통해 소통할 창구가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각종 영화 커뮤니티 게시판은 물론 블로그, SNS, 유튜브 등에서 활동을 하더군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를 통해 어그로를 끄는건 동일합니다만.
재미있는건 그 양상이 과거의 찌질이 씨네필들과는 반대라는 겁니다.
과거의 그들이 구하기 힘든 희귀영화 독특한 취향의 장르영화, 고전에 대한 무조건적인에 대한 찬양, 즉 영화에 대한 숭배를 바탕으로 어그로를 끈다면
요즘의 그들은 주로 고전작품이나 지나간 영화들 감상하고 그 영화들을 까면서 어그로를 끕니다.
뭐 그영화 유명하대서 봤더니 별거없네, 허접하네 등등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지않고 그냥 자기눈에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것을 진리인양 설파하더군요.
특히 시대적 흐름에 민감한 한국영화들은 더욱 가열차게 까이구요. 꾸준히 많은 영화들을 보고 심지어 고전이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데
주로 그 감상의 내용이 비웃고 낄낄거리기라는 겁니다. 그나마 이들이 자기 방구석 자기 블로그나 SNS에서만 그런 소릴 하면되는데
어그로를 위해서 커뮤니티에도 출현을 한다는겁니다.
숭배와 비하....... 아무튼 이 기묘한 대립을 보면 참 흥미롭기까지하더군요.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과거에는 영화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귀하디 귀한 희귀,컬트영화의 숭배를 통해 자기 자존감을 채우고 남을 까내린 것이라면
VOD, 불법토렌트, OTT, 해외직구 등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널릴대로 널린 그냥 영화가 하나의 자료이자 파일인 요즘은 클릭 한번으로 누구나 쉽게 그 고전과 명작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봅니다.
뭐 대단한 줄 알고 클릭해서 봤더니 별거없네......시시하네.....허접하네.....낄낄거리고 조소하면서 자기 자존감을 채웁니다.
물론 그들의 공동점은 있습니다. 바로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그것을 보고 평하고 즐기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거죠.
다만 사람에 대한 예의나 창작에 대한 존중 이런건 기대할 수 없지만요.
애초에 도착적 쾌감을 위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일런지도 모르죠.
하기사 뭐 씨네필...필의 그 필리아가 도착증을 의미하는 것이니.
덧붙여서..........
아 참고로 다른 얘기 잠깐 하자면 과거 영화동호회에 활동하던 시절 제 친구가 애니메이션 동호회와 메탈음악 동호회에 나간적이 있었습니다.
그 애니메이션 동호회는...........진짜 말그대로.............오타쿠들이 모인 그런 곳이었는데 진짜로 이상한 개똥철학 읊어대고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언행을 일삼아
너무 불쾌하고 답답해서 있을 곳이 못되더라더군요. 거기다 대놓고 소아성애를 드러내는 인간쓰레기들도 다수.
메탈동호회는 게시판에서 너무 자주 음악관련해서 논쟁이 일어나서 오프에 가기 망설여졌다는데 막상 가보니 다소 마초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괜찮은 편이었다더군요.
결국 그 사람들과 친해져서 밴드까지 결성하게 되었다는......
그때 그 시절 동호회 얘기였습니다.
2024.02.13 02:38
2024.02.13 20:30
그나마 그때는 그렇게 옆에서 짚어주는 사람이라도 있는데 요즘 방구석 씨네필들은 그런게 없죠. 보고싶은것만 보고 듣고싶은것만 듣고 나머진 눈닫고 귀막고 있으니....온라인이란 공간이 편리하긴 하지만
이런면에선 참으로 단절된 공간이기도 하네요.
GV 진상 질문자들은......심지어 자기가 사회자랑 감독에게 역으로 가르치려들려는 사람도 봤습니다만....
2024.02.13 17:35
대학에 입학하고 친구와 영화동아리에 갔었는데 동아리방에 뭔가 찐따스럽고 어두운 분위기의 사람들만 가득했고 신입생을 전혀 환영하거나 챙겨주지 않는 분위기에 질려서 금방 나와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동아리방에서 트뤼포 영화를 봤던 것 같은 기억도 나네요. 저와 달리 친구는 계속 더 갔는데 항상 그런 식이었다는 것 같아요. 놀이동산 가서도 각자 놀았다나..
2024.02.13 20:32
음~ 신입생을 전혀 환영해주지도 않고 챙겨주지도 않았다니 거긴 찐영화동아리였을 확율이 매우 높습니다. 진짜 영화'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곳이요.
2024.02.13 23:47
현역 영화평론가분께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요. 조직적으로 GV를 깽판치는 사람들이 있었데요. 일일이 상대할 수는 없으니 아예 질문을 받지않았다고 해요.
2010년에서 십년 쯤 웬만한 GV 다 다녔는데요 :) 물론 머리가 맑아지는 좋은 질문들도 많았지만, '이상한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2024.02.14 01:47
와~ 조직적 깽판이라니? 감히 상상도 안되는 일이 현실에 벌어지고 있었군요.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왜 그러는지 궁금해지는군요.
GV라는게 많은 사람들이 돈이랑 시간내서 이뤄지는 행사이고 엄연한 비지니스인데 그 정도면 영업방해군요.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들의 범위가 좀 다양하긴 합니다.
진짜 영화 지식 뽐내고 내말만 옳다식의 진상들도 많았지만 그런 의도는 없는데 사회성이나 공감능력, 인지능력이 좀 떨어져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죠.
이런분들은 사회자가 적절히 콘트롤을 해서 어찌어찌 잘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분위기가 확 죽어버리는 상황도 빈번하게......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GV에서 관객들의 질문을 받아야하는지 좀 의문이긴합니다. 진행자가 준비한 내용으로 연출자랑 썰풀기도 시간이 모자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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