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쪽 옛날이야기에 이런게 있더군요 (아마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어느 남자가 저녁때 집에 들아오니 낮에 집이 빈 사이에 도둑이 들어 살림살이를 싹 쓸어갔습니다.

 

부인이 원망스럽게 말합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나올때 문을 잡그지 않았더군요. 이제 어떻게 할거에요?"

옆집 사람도 질타합니다. "오전에 지나가면서 보니까 창문도 활짝 열려 있었더군.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나?"

다른 이웃도 거듭니다. "게다가 커튼도 젖혀져 있어서 안에가 훤히 다 보였었네. 그러니 도둑이 들지"

앞집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개는 왜 또 데리고 나가셨던 거에요? 개가 집만 지키고 있었어도 도둑을 맞지 았았을거에요"

 

남자는 반론합니다. "아니, 집에 도둑이 든걸 가지고 왜 다들 나를 탓하는 거요? 물건을 훔쳐간건 도둑인데, 도둑을 탓해야지!"

 

 

 

정말 왜 그럴까요? 왜 사람들은 도둑 대신 피해자인 남자의 실수를 탓하고 있을까요?  

사실 안타까운 마음에 "에휴...그러게 이러지 그랬어, 저러지 그랬어"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몰라도 이를 넘어 질타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왕따 당하는덴 이유가 있다느니, 밤 늦게 싸돌아다니나까 폭행을 당한다느니 등등 피해자를 오히려 비난하는듯한 별별 말들이 왜 나오는 것일까요?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제법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를 탓합니다.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냐? 그리고 심지어는 자초한거다.

이렇게 사람들이 피해자를 질타하는 심리에 대해서는 몇가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본성상 원래 나쁜놈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는 시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성범죄자든 도둑이든 살인자든, 이들은 자연재해마냥 인간사회에 항시 도사리는 위험이기 때문에 개인이 재주껏 피하고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우화 속 돼지 삼형제의 경우를 보면 지푸라기와 널판으로 집을 짓는, 형 돼지들의 전혀 문제가 없었을 행동이 늑대의 존재로 인해 게으르다는 질타를 듣습니다.

이야기 속 늑대의 존재도, 늑대가 돼지를 시시탐탐 노리는 사실도 돼지들의 책임이 전혀 아님에도 형 돼지들의 애꿎은 행동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돼지들에게 있어 늑대는 언제든 덮칠 수 있는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이처럼 항상 염두에 주었어야 할 위험에 대한 방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겠죠.

 

이런 시각에서 보면 돼지들에게 늑대의 존재가 자연재해이듯이,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에 있어 범죄자들의 존재도 어디에든 항상 도사리고 있는 재해입니다.

따라서 늑대가 존재 안한다면 모를까, "늑대들"이 엄연히 도사리는 사회 속에서는 개인들도 돼지 3형제마냥 "벽돌집"을 올리기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덧씌우는 것이랄까요?

 

그런데 문제는 벽돌집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벽돌집의 존재가 늑대를 지워주지는 않습니다.

이야기속에선 돼지들이 늑대를 매번 잘 물리치고 끝나지만 실제론 어느 순간에고 늑대가 침입에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늑대가 도사리고 있는 이상 위험은 상주하죠. 늑대를 다 제거하면 되다는 것은 철 모르는 이상주의일 뿐이고...

 

나주 사건의 경우 부모가 질타를 받게 되는 이유는 늑대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결국은 개인들이 조심을 하고 주의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겠죠.

다만 살펴보면 사실 부모가 무언가를 딱히 잘못했다기 보다는 늑대가 상주하는 사회 안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이를 부모 책임이라 주장하는 것은 주객전도구요.

 

 어쩌면 여기엔 다른 이유가 있을수도 있겠습니다. 남들이 저지른 "잘못"을 찝어냄으로써 자신은 그같은 잘못은 저지르지 않기에 안전할 것이라는 자기 위안 말입니다.

 

뭐, 아무튼간에 범죄 예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특히 사회가 험난하면 할수록 당연히  문 단속 같은 안전수칙은 최대한 지켜야 할것입니다만,

자연재해의 특징이 사람이나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듯 사회의 재난 앞에서도 역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기치 않게 그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죠.

때문에 피해자에의 비난은 바닷가 마을에서 평화롭게 잘 살다가 쓰나미에 휩쓸린 이들에게 내륙 고지대에 살지 왜 바닷가에 살았냐고 질타하는 것처럼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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