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매씨낭자수발기

2012.11.14 17:38

늘보만보 조회 수:2966

박스를 싫어하는 콧대높은 냥반 매오매오입니다.


이제 6개월쯤 된 거 같은데 몸무게는 2.5kg, 처음 왔을 때처럼 팍팍 올라가지는 않네요.

정말 쇤네와는 너무 다르게 먹을 만큼만 먹고 숟가락 딱 놓으시는 대쪽같은 성품 때문일까요.

처음엔 그렇게 허덕허덕하던 씨이푸드 파우치도 요즘엔 "배는 찼지만 없는 살림에 비싼 거 사 온 자네 정성을 봐서 내가 다 먹어주는 거네"라는 느낌으로 겨우 한 끼 깨끗하게 드십니다.

그리고 제가 뒷간 치워드리는 걸 굉장히 부끄러워하셔서,

아침에 제가 혼미한 정신으로 뒷간에서 나무젓가락으로(동네가 미개하여 똥삽 같은 문명의 혜택을 못 받고 있습니다-_-;;) 감자며 땅콩이며 캐고 있으면

마구마구 달려들어 제가 기껏 캐놓은 작물들을 도로 파묻어버리시죠. 그러다 감자가 바스러지고 땅콩이 두쪽나기 일쑤여서 뒷간 문을 닫고 은밀히 작업을 할라치면

역시나 문 밖에서 슬피 우십니다. 아무래도 제 귀에는 "고얀 놈, 내 똥 내어놓아라" 하시는 걸로 들립니다.


"네놈이 건방지게 아침에 내 똥을 숨겼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어디선가 늘어지게 주무시다가 겨우 부스럭거리며 나와서

"음 오늘도 돈 많이 벌어 왔냐, 니가 고생이 많다"시며 기지개에 하품을 또 한바탕 신명나게 하신 다음,

낚싯대 2종을 보관해두는 책장 앞에서 꼿꼿한 자세로 "엇흠, 내가 잠깐 놀아줄테니 얼른 니가 좋아하는 그 낚싯대를 꺼내보아라" 하십니다.

낚싯대를 하릴없이 휘두르면 "어허, 어째 자세가 그런가, 좀 더 감질나게 책 사이에 숨기기도 하고 저어기 소파 밑에도 넣어보기도 해야 하지 않겠나" 호통도 치시지만

천성이 땀내는 일을 싫어하시는지라 곧 배를 뒤집고 발라당 누워서 손끝으로 쥐돌이를 틱틱 건드리다 슬금슬금 자리를 뜨십니다.

장옷자락을 촤락 펼친 채궁뎅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보통 가시는 곳은 창가 정자나 침상 아래 찹찹한 타일바닥이죠.

깊은 잠을 주무실 때는 컴컴한 침상 밑으로, 기양 적당히 게으름 피실 때는 정자 위입니다.


"(뒷길에 쏘다니는 동네 개들을 내려다보시며) 허허, 저런 잡스런 것들을 보았나. 백주대낮에 붙어먹다니, 목불인견이로다"


늘 이렇게 근엄한 매오매오님이시지만 저는 이 분이 근엄근엄하실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얼굴에 반영구문신으로 해놓은 화장 때문에요. 연극배우처럼 콧대를 세우고, 콧날에 하이라이트 칠하고,

어두운 색 볼터치로 하관이 V라인으로 쏙 잘 빠지게 만들어 놓았죠. 가끔씩 조명빨 이상하게 받으면 딱 이 표정입니다.



아무리 근엄하게 계셔도 쇤네는 자꾸 불가사리군이 떠오르는 걸 어쩌라고요. 그리고 식사 중에는 왜인지 꼭 눈물을 흘리시거든요.

무슨 망국의 선비가 꺼이꺼이 울면서 "나라가 망했는데 이몸이 구차한 생명을 이어본들 무엇하리오"하면서 밥먹는 것 같아요.

(요 대목에서 잠깐 듀나인 : 고양이가 밥먹을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감정적인 건 아닐 것 같은데...;;;)


 

"집사 네깐 게 우국충정에 대해 뭘 안다고 까부냐? 고이 글 접지 않으면 내 다크써클의 다크포쓰를 느끼게 될 것이야"


이상 새침한 냥반님 뫼시고 사는 미천한 집사의 뻘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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