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공허한 퍼포먼스 ‘다크나이트 라이즈’

 

 

 

 

한참을 망설인 다음 이 영화를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망설였을까. 무언가 이 영화는 병들었기 때문이다. 병든 영혼과 가짜 육신 사이의 거래. 그 안에서 어떤 일관성도 보증받지 못한 채 정의의 이름으로 신체적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폭력적인 힘의 예찬. 아무리 그래봐야 결국 실패할 것이다. 정의는 무능하고, 도덕주의적 분노는 무력하며, 그 사이에서 스펙터클한 투쟁들은 소란스럽긴 하지만 어둠 속에서 냉소적인 대상이 된다. 나는 니체에 관한 수사학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대안도 없이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파괴된 영웅 서사를 음울하게 노래한다.

 

 

 

 

(중략)

 

 

 

...맙소사. 혁명은 테러가 되고, 배트카를 뒤쫓는 미사일은 9·11을 떠오르게 만든다. 지하 감옥은 신화적이지만 죄수들의 복장은 중동의 테러리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런 다음 온갖 우여곡절의 결과가 고작해야 시민사회를 국가로 되돌려 보낼 때 배트맨은 해피엔딩인 척하는 거의 물신주의적이자 반동적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정말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2011년 뉴욕이 1789년 파리에 느끼는 창백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결과는 푸념이다.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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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등장인물 : 니체, 보드리야르, 지젝, 그리고 당연하게도 디킨스, 곁다리로 마이클 샌델.

 

하지만 이름만 언급되는 편이어서 술술 잘 읽힙니다 ㅎ

이제야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막을 내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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