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후기] 5th. 아이아스

2013.01.10 16:13

brunette 조회 수:1766

 

 

지난 토요일 다섯 번째 희곡모임이 열렸습니다. 현전하는 소포클레스의 일곱 작품 가운데 가장 초기에 쓰였다는 [아이아스]를 읽었습니다. 소포클레스보다 한 세대 전 작가인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가 그의 제자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의 영향이 남아 있는 작품이라는데, 이때까지 읽어온 소포클레스 작품들에 비하면 다소 투박한 편입니다. 이날은 책 얘기를 별로 안 하고 와서 후기에 대체 뭘 적어야 하나 싶은데, 일단 아이아스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볼께요. 트로이 전쟁과 그리스 영웅 이야기는 신화와 문학이 뒤섞여 있는데다가 후대에 워낙 개작과 첨작이 많이 되어 정설을 가린다는 것은 부질없고, 그냥 몇 가지 버전 중에서 골라 적겠습니다.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집>,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 로마 신화사전>, 강대진의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리고 구글검색 결과를 참조했어요.  

  

아이아스는 살라미스 섬의 통치자로 트로이 원정에 12척의 배를 이끌고 참전하여, 가장 위험하고 가장 명예로운 자리라는 진영 맨 가장자리 중 좌측을 지휘했습니다. 그리스 전사들 가운데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용맹했다고 전해지며 아킬레우스와는 사촌지간이자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친구 사이입니다. 아가멤논을 대신해 잠시 그리스군 최고사령관 자리를 맡기도 했고, 아킬레우스가 참전을 거부하고 있는 동안 거의 혼자 앞장서서 트로이군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오딧세우스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고, 헥토르가 아킬레우스 절친(이자 그 이상이었을)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탈취해가려 할 때 이를 저지한 이도 아이아스입니다. 트로이 약탈 중 아테나 여신상 뒤에 숨어있던 카산드라를 폭행한 로크리스 출신 아이아스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적장 헥토르와 여러 차례 대결을 펼쳤는데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는다'는 운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꾸 신들이 개입하는 바람에 승부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헥토르가 어떤 그리스 용사와도 단독 결투를 하겠다고 도전해왔을 때 그 도전을 받아들인 것은 헬레네의 남편이자 이 원정대를 소집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가 아니라 바로 아이아스였습니다. (이때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분노로 전쟁에서 발 빼고, 헥토르가 그리스군대를 도륙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음.) 이 대결에서 아이아스가 전반적으로 우세했지만 헥토르는 아폴론의 가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결말도 나지 않은 채 결투는 밤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은 무승부 끝에 선물을 교환했는데 아이아스는 자신의 가죽허리띠를, 헥토르는 자신의 검을 내놓습니다. 후에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이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인 후 시신의 발목을 뚫고 이 가죽허리띠로 꿰어 자신의 마차에 묶고는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를 새벽마다 돌았죠. 헥토르의 죽음은 신들의 예언상 아킬레우스 죽음의 전주곡쯤 되는지라 아킬레우스도 트로이 함락을 보지 못한 채 죽습니다. 이때 적진 한가운데를 뚫고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진영으로 옮겨 온 이도 아이아스입니다. 

 

아이아스는 헬레네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며 그녀를 간통죄로 처형하라고 요구했는데, 이 요구로 인해 헬레네를 살려두고 싶어하던 아가멤논 형제의 미움을 받게 됩니다. 반면 오딧세우스는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다시 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해요. 아킬레우스 사후, 그리스 전사들 중 가장 뛰어난 자에게 물려주기로 한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투표 끝에 자신이 아닌 오딧세우스에게 주어지자 아이아스는 격분합니다. 그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 그리고 오딧세우스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보초들을 세웠으나, 다음날 아침 아이아스는 자신의 검에 찔린 채 발견됩니다.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바로 이 부분을 극화하고 있습니다. 무구재판 결과 자존심에 타격을 받은 아이아스가 밤에 그리스 장군들의 막사를 습격하는데 아테나 여신이 그를 미치게 하여 장군들 대신 가축 떼를 살육하고 돌아온다는 설정입니다. 극은 다음날 아침 아이아스 막사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는 오딧세우스와 지난밤 자신의 장난을 즐거워하는 아테나 여신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다시 정신이 든 아이아스는 부끄럽고 참담하여 자신을 위로하는 여인과 전우들을 거짓말로 안심시킨 뒤 한적한 바닷가로 나가 헥토르에게 선물받은 칼의 칼끝을 위로 가게 땅에 고정시키고 그 위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여기까지가 극의 절반을 차지하며, 그의 장례절차를 두고 벌어지는 얘기가 나머지 절반입니다.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이 그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자 아이아스의 이복동생 테우크로스가 나서서 목숨을 걸고 형을 묻어주려 합니다. 이때 오딧세우스가 나서서 매장을 허락하도록 설득하면서 극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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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숙함?

 

-드라마가 좀 밋밋하네요.

-[오이디푸스 왕]이나 [안티고네]의 강렬함에 비하면 이 작품은 소품으로 여겨질 정도에요.

-신화와 서사시에 등장한 아이아스 관련 일화들을 살펴보면 화려한 장면도 많은데 소포클레스는 그런 걸 다 놔두고, 심지어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무구재판이나 습격신도 다 건너뛰고 맞바로 그 다음날 아침 이야기로 극을 시작하잖아요. 작가가 멋진 장면들 과감하게 생략하고, 아이아스의 슬픔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재미없었어요. 내용도 겨우 따라갔고요.

-그냥 초기작의 한계 같아요.

-슬픔을 극적으로 형상화해내지 못하고 대사로만 나열하는데 그쳤지 싶어요. 표현이 압축적이지 못하고 장황한 것은 작가가 아직 미숙해서라고 봐요.

-액션신이나 여러 명의 배우가 나오는 장면을 소화할 금전적, 물리적 여건이 안 되서 드라마가 단순해지고 대신 대사가 길어졌을 수도 있겠죠. 

-아이아스와 트로이전쟁 이야기가 당시 관객들에게 워낙 친숙한 소재라 자초지종 설명 없이 바로 들어갔는지도요. 우리에게 아이아스는 낯선 이름이지만 그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옛날옛적부터 들어온 베드타임스토리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위대한 작품이라면 배경지식 없이 작품만 봐도 한눈에 딱 들어오는 드라마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 작품은 그런 흡인력은 없네요.

-로마시대에도 그리스작가들의 희곡을 번안해서 무대에 올렸대요. 세네카가 쓴 [오이디푸스 왕]도 있더라구요. 소포클레스 원작과 거의 동일한 얘기를 하는데 다만 테이레시아스가 신탁을 받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장면 같은 걸 그리스극에서는 코러스 대사로 처리한 데 반해 로마극에서는 실제로 무대 위에서 동물의 배를 가르고 피를 뿌려요. 이오카스테 왕비가 목을 매는 장면이나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르는 장면도 전령의 입을 통해 전하는 게 아니라 선정적으로 재현했고요. 그리스극은 그에 비하면 청순할 정도인데 특히 [아이아스] 같은 작품이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저는 조촐한 매력을 느꼈어요.

  

 

2. 언더독의 비애

 

-이 극이 왜 비극인지 모르겠어요. 어느 대목에서 슬퍼해야 하나요?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그럴까요? 그래도 중간에 주인공이 죽는데...

-이 사람의 자살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느껴지질 않더라구요.

-아, 아이아스라는 인물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구나...

-호감가는 인물은 아니죠. 아이아스가 무구재판에서 진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용맹한 무사였을진 모르나 큰 인물, 좋은 정치인감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끝까지 자기 자존심 세우다가 가버린 느낌이라... 

-무구로 상징되는 권력을 놓쳤다 해서 정치를 못하는 건 아닐텐데. 작은 의미의 정치는 못하게 되었지만 큰 의미의 정치는 계속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 의미에서 마음을 가다듬었으면 좋으련만 분에 못 이겨 장군들을 다 죽일 마음을 먹은 게 비극의 원인 같아요.

-모르죠. 당시 정치지형에서 선거에 패배한 아이아스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가 죽인 짐승들 한가운데 식음전폐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서 언더독의 비애가 느껴졌어요.  

-초한지로 치면 항우 같은 인물이잖아요. 장수로서의 능력은 최고치이나 정치력 부족으로 결국 패배하고 하늘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울부짖는... 그런 애잔함이 있죠.

-드라마 측면에서 아이아스가 오딧세우스에 비해 아무래도 매력이 떨어지네요.  

-실제로도 패했고 문학 속에서 한번 더 패하는 아이아스.

 

 

3. 아테나 여신

 

-아테나 여신이 아이아스에게 미망을 씌워 미쳐버리게 했다고 하지만, 그건 나중에 지어낸 말일 테고 현대인의 관점에서 실제로 일어났음직한 일은 뭘까요?

-오딧세우스가 아이아스에게 약을 먹여 정신착란을 유도하지 않았을까요.

-프롤로고스에서 아테나 여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리는 걸로 나오는데, 오딧세우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양가감정을 표현한 거 아닐까요. 아직 인간심리에 대한 묘사가 발달하지 않아서 오딧세우스의 음모를 자꾸 신을 빌어와 얘기하는 것 같아요.

-어, 저는 오히려 아이아스가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신이 시킨 일이라고 자기변명한다고 봤어요.

-아테나 여신은 과연 누구의 자의식일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잔인한 신인 것만은 분명해요. 사람을 모욕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네요. 차라리 그 자리에서 번개를 쳐서 죽여버리지 어쩜 짐승들을 살육하게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자존심 강한 아이아스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을 정말 교묘하게 잘 찾아냈죠. 

 

 

4. 오만함

 

-아이아스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신의 가호를 빌어주는 아버지께 자기는 신들의 도움 없이도 승리할 수 있노라 자신했고, 전투 때 자신을 도와주려던 아테나 여신에게도 내가 싸우는 곳에서 전열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테니 가서 다른 그리스인들이나 도우시라고 했죠. 이에 아테나가 앙심을 품고 아이아스를 벌했다는 건데 이게 벌받을 일인지 참.  

-희곡모임에서 읽은 작품들을 집에 가서 아들한테 얘기해주거든요. 그러니까 얘도 저한테 몇편 들은 가락으로, 그리스 신들이 인간의 오만함을 벌 준다든가 신탁은 인간의 성격적 결함과 맞물려 실현된다든가 하는 얘기를 대강 알아요. 엊그제는 제가 아이아스 얘기를 죽 해주고 나서 '자, 너는 아이아스가 왜 죽은 거 같아?' 하고 물었더니, '아테나 여신한테 도움 필요없다고 했잖아. 오만해서 벌 받은 거지, 뭐.'라고 아주 쉽게 대답해버리는 거에요. 에라이..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아직 어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인간이 선전선동에 쉽게 감염된다는 걸 새삼 느껴요.  

-아이아스와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형제 사이에 권력투쟁이 있었고 이들이 오딧세우스를 내세워 아이아스라는 정적을 제거해놓고는, 여론수습용으로 신이 오만한 그를 벌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퍼트렸다고 생각해요. 

-그런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서 '아이아스는 오만해서 벌받은 거야'라고 얘기하는 건, 아이아스를 두번 죽이는 일이겠고요. 

-작가가 아이아스의 죽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 같아요. 대놓고 그렇게 얘기하진 않지만 극을 읽다보면 거물급 악당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형제한테 우직한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 형제가 핍박받는 느낌도 들고, 막판에 가면 부정개표 얘기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죠.

 

 

5. 용비어천가

 

-반면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에게도 충분한 발언기회가 주어지는데요. 그들은 투표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상대를 악당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법질서를 해치는 일이라 얘기합니다. 정당한 경쟁에서 지고도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이죠. 또한 황소가 아무리 크다 해도 조그만 채찍 하나면 부릴 수 있다면서 아이아스를 조롱하구요.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힘세고 어깨넓은 자들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자들이라면서.

-오딧세우스를 이 작품에서는 야비하고 교활한 음모꾼보다는 인간적이고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고 있죠.

-두려움과 존경심을 보여주지 않는 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얘기도 길게 하고요.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저 아이아스처럼 쓰러지고 만다는 얘기를 읽는데, 이 작가가 무슨 용비어천가를 쓰고 있나 이게 뭐지 싶었어요.

-스토아 철학자들은 오딧세우스를 현인의 전형으로 생각했대요.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으니 근육보다 회색뇌세포가 앞선다는 얘기는 진일보한 관점이었을 수도 있겠죠. 요즘엔 오딧세우스 같은 인간형이 얍삽해 보이지만. 

-소포클레스가 권력을 옹호하느냐 혹은 권력투쟁장에서 밀려난 이들에 동정적이냐 하는 것은 읽은 사람마다 달라서, 어느 하나가 소포클레스의 입장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6. 소포클레스가 슬픔을 느낀 지점  

 

-아이아스의 독백 중, '나의 유일한 빛인 어둠이여'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신들에게 미움받고, 몸바쳤던 그리스군대에서 배척당하고, 그렇다고 트로이에 정착할 입장도 못 되고, 고향으로 가자니 대단한 아버지 뵐 면목이 없고, 차라리 장렬히 전사하자니 정적들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고...그야말로 사면초가. 남은 선택지는 자살 뿐이란 얘기를 '오직 하데스의 암흑만이 찬란하게 빛난다. 빛나는 어둠이여, 찬란한  암흑이여, 나를 동거인으로 받아주오!'라고 표현하니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아이아스 외에도 그리스군에 포로로 잡혀온 이들의 고통도 잘 묘사되고 있죠.

-저는 주인공보다도 오히려 그의 아내 테크메사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리스군이 9년 동안 진치고 있는 동안 약탈한 트로이 주변국의 공주였다가 아이아스의 전리품이 된 여자죠.

-자기 나라를 파괴하고 부모를 죽인 남자와 살을 섞고 아이까지 낳아 살았으니 그 속이 어땠겠나 싶어요. 아이아스마저 죽으면 자신은  아들과 함께 종살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제발 죽지 말라고 울먹일 때 좀 슬프더라구요.

-아이아스는 그 지경까지 떨어지지 않고 자기 명예를 지키는 선에서 자살을 선택했죠. 부모, 자식, 아이보다 자신의 명예가 더 우선이었던 이기적인 남자로도 보이네요.   

-이복동생 테우크로스도 슬픈 인물이죠. 이 사람은 자기 어머니 편으로는 트로이 왕가에 속하는 사람인데 그리스군 궁수로 참전한 거잖아요. (부친 텔라몬이 헤라클레스의 트로이 원정에 참가하여 잡아온 트로이 공주 헤시오네가 그의 어머니. 헤시오네와 프리아모스는 남매지간) 트로이왕 프리아모스가 숙부고, 헥토르와 파리스 왕자는 사촌뻘인데 맞서 싸운 거에요.

-아가멤논 형제로부터 엄청 무시당하죠. 종년이 낳아준 서자 주제에 나선다는 둥, 노예의 말은 못 알아먹겠으니 널 대변해줄 자유인을 데려 오라는 둥.

-심지어 아버지도 자신을 재산 가로챌 요량으로 아이아스 배신한 놈으로 여길 거라고 몹시 걱정하죠. (걱정대로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한 테우크로스는 형을 지키지 못한 데다 원수조차 갚지 않았다고 텔라몬에게 몹시 비난받고 추방당함)

-테우크로스가 서자인 자기 사연 얘기할 때 보면 죽은 아이아스보다 더 불쌍함. 

-오랜 전쟁에 시달리는 군인들의 코러스(1185~1210행)도 애처로워요. 마치 반전가요 같아요.

-소포클레스가 영웅의 죽음 뿐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슬픔도 같이 그렸다는 점이 좋아요.

 

  

7. 도서출판 숲에서 나온 천병희 역의 <소포클레스 전집>을 택한 이유

 

-정암학당 연구원 강대진이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머리말에 적은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 작품 전체를 보실 분은 도서출판 숲에서 펴낸 판본을 이용하시기 바란다. 다른 데서 나온 번역들은 모두 구미나 일본의 번역에서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라서 내용도 달라져 있고, 무엇보다 행수가 나와 있지 않아서 인용문을 정확히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번역들은 최악의 경우엔 내용을 일부 빼먹기도 하는데, 행수가 없으니 얼핏 보아서는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희랍어에서 직접 옮긴 번역을 보는 것은 실질적인 이득을 줄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조금 과장하자면) '정의로운' 선택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번역을 위해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한 역자에게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반론도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연습과 과정의 기록>에 나온 강태경 인터뷰에서 발췌. 

 

"김남수 : 불경은 반드시 산스크리트어를 하는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 것처럼, 고전도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식의 억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태경 : 중역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다원성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가능성, 경로, 접근방법 등을 열어 두는 것이죠. [...] 번역 얘기를 하면서, 다들 동의하듯이 독일어 번역이 가장 정평한 것이고 영어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원전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번역도, 상당 부분 추정적인 번역을 한다는 것이죠. 그리스 학자들에게도 그리스 고전 비극의 언어는 굉장히 접근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리스 원전 번역이라는 것이 독일이나, 영어권 학자의 경우에도 남아 있는 필사본 그 언어를 그대로 하는 것은 극히 드물고 중세 그리스어, 현대 그리스어로 바꾸어보는 것이죠. 따라서 원본성(authenticity)를 주장하는 것은 허구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천병희 번역본으로 보려면 영문판도 같이 놓고 보라는 얘기도 있고요. 그 정도 열의를 가진 독자들이 얼마나 되려나 싶지만.

-모임에서 다른 번역자의 소포클레스를 읽어보면 천병희 역이 다소 문어적이고 덜 자연스러운데, 행수를 맞추려고 원전에 보다 가깝게 번역하다보니 요즘 문장과는 다른, 좀 딱딱한 느낌을 주는 문장체가 된 건지도 모르겠네요. 

 

 

8. 나이들수록 꼰대가 되어 가는 느낌

 

-모임에 나가면 자꾸 자신이 꼰대가 된 기분이 들어요. 특히 뒷풀이가 어렵더라구요. 

 -50~70대가 주축인 모임을 한번 나가봐요. 그럼 꼰대된 느낌 안 들거에요. 심지어 반항심도 막 느껴질 거에요.

-그런 모임은 어디 가면 있나요?

-한살림 독서모임이라든가, 녹색평론 독자모임이라든가... 주로 경전이나 고전읽기 모임 나가보면 40대 이상 분들 많이 계세요.

-분위기가 어때요, 그런 데는?

-어느 연령대든 나름의 고민들이 있는데, 나이드신 분들이 겪는 문제의 상당 부분은 아무래도 죽음과 관련 있으니까 대화하다 보면 묵직한 감이 있죠.

 

 

9.  공지

 

다음 모임은 1월 19일(토) 12시 카페 소소 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음악소리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회의실에서 해야겠습니다. 추위가 심하니 난방기 하나 들여주지 않겠나 싶지만, 혹시 모르니 방한용품 착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읽을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 여인들]입니다. 슈퍼스타와 결혼한 여자가 얼마나 마음고생하며 사는지 잘 묘사한 작품입니다. 헤라클레스와 그의 아내 데이아네이라 얘기에요.:) 그럼 긴 후기 이만 마치고 그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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