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 고구마

2010.07.19 21:06

Laundromat 조회 수:5121

고구마를 한 소쿠리 사왔습니다.

해피쿡 직화오븐이 있었다면 하고 간절히 생각했지만 전 그저 보잘것없는 가난뱅이 자취생입니다.

 

전자렌지에 구우면 신기하게 단맛이 다 빠져나가서는 종이 뭉쳐놓은 듯한 맛이 나지요.

가스렌지는, 전 가스렌지를 잘 안 켜서 이상하게 거부감이 갑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조리할까요.

 

아항

싱크대 한 구석에 쳐박혀있던 전기밥솥이 보입니다. 백미, 죽, 현미 이런 기능 없이 오로지 꾹 누르면 취사, 올리면 보온의 버튼만 갖고 있는 놈입니다. 얘한테는 전원을 키고 끄는 개념도 없습니다. 코드를 콘센트에 꽂으면 turn-on 이자 보온이요, 누르면 취사, 취사가 끝나면 보온, 콘센트를 잡아 빼면 turn-off입니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아트키친 미니멀리즘의 정점을 보여주는 제품이죠.

 

고구마를 정성스레 씼습니다. 저는 껍질까지 먹으니까요.

그리고는 왠일인지 베란다 한 구석에 쳐박혀있던 보온밭솥 통을 대충 물로 부신뒤에 고구마를 넣고, 고구마가 잠길정도의 물을 붓습니다.

(근데 대체 왜 보온밥솥통이 빨래 너는 거 외에는 일절 사용않는 베란다에 가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보온밭솝인지 밥솥인지 밭솥인지 마구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코드를 꼽은 뒤, 취사를 누릅니다.

 

잠시 듀게질을 합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데 달큰한 내가 납니다. 이게 무슨 냄샌가 깜짝 놀랍니다. 

건망증이 심한지라 고구마를 밥솥에 않혀놓은걸 깜빡잊고 있었습니다.

밥솥에서 부글부글 소리와 함께 김이 올라옵니다. 저김을 쐬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해서, 냉큼 달려가 김을 조금 쑀습니다.

집에서만 쓰는 못난이 뱅그르르 안경에 김이 서려 좀 불쾌하더군요.

 

한참을 지나도 계속 취사입니다. 계속 부글부글 끓고 김이 납니다.

 

언제나 익을까 조바심이 나서, 앞에서 기웃기웃하다가 그냥 뚜껑을 열었습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쇠젓가락으로 가장 위로 솟아있는 놈을 푹 찔렀습니다. 이미 뜨겁게 끓여진 놈을 다시 확인사살. 고구마를 두 번 죽이는 일이죠.

한 놈 가지고는 성이 안 찹니다. 옆에 있는 놈, 저 밑에 숨어 있던 놈, 서넛을 그렇게 더 푹푹 찔러서 완전히 푹, 먹기좋게 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런, 물이 좀 많았어요.

고구마가 완전히 잠길정도가 아니라 자작자작하게만 넣었어야 했나 봅니다. 고구마는 쌀이 아니니까요.

 

맛있게 익어졌나 먹어볼려고 하는데 너무 뜨겁네요.

식혔다가 이따가 먹어볼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84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87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256
1287 인셉션 아이맥스로 예약했어요. + 디카프리오 잡담 [7] Laundromat 2010.07.15 3324
1286 저도 묻어가는 크록스 질문.. [18] 들판의 별 2010.07.15 4259
1285 01410님 미워요 [8] art 2010.07.18 3191
1284 창의적이고 특이한 신발들 + 바낭 [7] wadi 2010.07.18 5400
1283 자두맛사탕님 힘내세요 [4] 셜록 2010.07.19 3381
1282 새로 발견한 수학공부의 효용 [1] 살구 2010.07.19 2192
1281 [19금] 자두맛 사탕님께 제 경험담을... [8] 1분에 14타 2010.07.19 7278
» 전기밥솥 고구마 [9] Laundromat 2010.07.19 5121
1279 트윗 [5] Lain 2010.07.20 2071
1278 현진아, 누나는 롯데 팬이라구. [6] 미유키 2010.07.22 2757
1277 다 나가주세요 게시판에 혼자 있고 싶습니다(따라하기 입니다 내용 없습니다) [2] 가끔영화 2010.07.22 2399
1276 개신교·불교계 '살얼음판' [15] TooduRi 2010.07.23 3958
1275 많이들 보셨겠지만, 스타크래프트 2 예고편 [3] 에이왁스 2010.07.23 1914
1274 애인같은 남자친구. [7] 서리* 2010.07.26 3967
1273 새로고침을 몇십번을 한 것 같아요. 사춘기 소년님 힘드시겠네요. [3] 스위트블랙 2010.07.26 2487
1272 휴가 어디로 가시나요? (부제 : 우유부단한 내자신) [9] zaru 2010.07.27 2636
1271 남자가 부르는줄 알았던 노래 [1] 가끔영화 2010.07.27 1890
1270 [단상] "내 깡패같은 애인"을 보고.. [7] 서리* 2010.07.28 3010
1269 [이것이 바낭이다] 박찬욱의 신비한 tv서프라이즈- 더 무비 망상 [7] 룽게 2010.07.29 2895
1268 김대중 자서전 내일 출간이에요. [3] 꽃개구리 2010.07.29 19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