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2 07:00
심란하고 그래서 넥스트 노래 몇 곡 듣다가, 무릎팍도사 신해철 편을 발견하게 돼서 다운받아 봤습니다.
2007년에 방송된건데 아직 프로그램 극 초창기라 그런지 어수선하고 방송 포맷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느낌이더군요.
신해철이란 사람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고 그냥 싱거운 농담 따먹기 하다가 끝나는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강호동과 신해철의 다른 점이었는데, 딱히 깊이있는 대화가 이뤄진건 아닌데도
두 사람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특히 강호동은 신해철의 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신해철이 보편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가치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말을 하면 강호동은 화들짝 놀랍니다.
물론 소위 진보적인 신해철의 발언을 방송에서 중화시키기 위한 태도였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강: 기왕이면 욕 먹지 않게 겸손하게 사는게 좋지 않나?
신: 겸손은 미덕이니까 겸손하면 칭찬해주면 되지, 겸손 안하다고 욕할 필요는 없지 않나?
강: ?????
*****
강: 고민 상담 프로에서 남친 있는 여성의 다른 남자가 좋아진다는 고민에 대해, 슬기롭게 양다리를 걸치라고 조언했다. 뭔뜻인가?
신: 연애시기에는 아무래도 서로에게 구속되는 부분이 덜하니까 남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여러 사람 만나볼 수도 있다.
결혼하고 바람나는 것보다 나으니까 결혼 전에 놀아둬라.
강: 안놀고 잘살면 안되나?
신: 놀아봐야 잘살건데. 당신도 놀아봤잖아?
강: (엄청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침) 하늘이 보고 땅이 알고있다. 내가 노는거 본 적이라도 있나?
신: 놀고 나오는건 본 적 있다.
강: ????? (강하게 부인)
*****
강: 백분토론에서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했다.
신; 합법화 아니고 비범죄화.
강: 비범죄화나 합법화나 같은거 아닌가?
신: 다르다.
강: 어쨌든 대마초를 피우는건 '옳은 일'은 아닌거잖아?
신: 민주사회에서는 옳으냐 아니냐 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냐 안주냐가 더 중요하다.
강: ?????
*****
강: 네티즌, 악플이 두렵지 않나?
신: 두렵지 않은데.
강: 왜? 여론이잖아?
신: 짜증은 나도 두렵진 않은데.
강: ????? 평소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
제 기억에 강호동은 무릎팍도사에서 '그래도 그게 여론이잖아요'라는 말을 가끔 하곤 했습니다.
욕먹을까봐 신경 쓴다기보단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보수적인 올바름 같은 것에 민감하고.
그래서 세금 문제 불거졌을 때 정말로 은퇴하려고 했었다는 뒷얘기가 수긍이 갔었습니다. 대중스타로서 대중을 존중하는건 사실 좋은 태도이죠.
한 편으로는 전 신해철의 관점을 오히려 상식적 혹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이런 생각이 지극히 일반적인 정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강호동의 반응을 보면서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생각할수록 우리나라 대중스타 중에 신해철을 대체할 사람은 없는거 같아요.
그의 생각에 늘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말하고 행동하는 그 존재만으로 든든했던 사람
카리스마 있는 뮤지션, 친근한 오빠 형님, 한 가정의 다정한 가장, 시대의 논객이자 멘토, 이 모든게 동시에 가능했던 유일한 사람
아까운 사람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가버리고 말았어요.
2014.11.02 08:00
2014.11.02 08:48
지극히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어요.
2014.11.02 10:29
유튜브에 올라와 있길래 봤는데, 강호동은 대체 어떻게 토크쇼진행자가 된 겁니까? -.-;; 고 신해철 씨는 여학생 교복은 아내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을 하고 있느데, 거기에 대고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아세요?"라니, 무례의 끝을 봅니다. 열린 마음도 없고, 타인이 하는 얘기를 이해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 프라임타임 토크쇼 진행자라니. 여튼 대단.
2014.11.02 13:02
역설적으로 이후의 무릎팍도사의 내용적 발전을 보면 강호동이 노력하는 사람이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해철 편이 6회니까 프로그램이 거의 막 시작했을 즈음이고, 게스트와 대화 자체가 안되는 느낌인데, 일년 쯤 지나고 나서의 회차들을 보면 나름 공부하고 노력한게 느껴지는거 같거든요. 교복 부분은 게스트가 현명하게 대답해서 다행이었죠. 집에서는 동물이 돼라, 밖에 나가서 안보이는데서 엄한짓 하지 말고 등등. 강호동의 반응에 개인적으론 무례하단 생각 이전에, 지극히 보수적이고 대중적인 사고를 하는 쪽의 반응은 저런거구나 싶더군요. 마누라한테 교복을 헉.. 이런 느낌ㅎㅎ
2014.11.22 10:15
이 댓글 뒤늦게라도 보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무릎팍 김영임 편을 유튜브로 보는데, 김영임 씨가 남편 이상해 씨한테 납치당해 결국 결혼하게 됐다고 하는데, 김영임 씨가 말씀은 귀엽게 하고 계시는데, 음.... 근데 출연진 세 명이 모두 배꼽잡고 있네요. 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느낌입니다.
엄한 여자 남치 강간 협박으로 결혼에 골인은 -> 푸하하ㅏ!!! 아이고 배꼽이야
자식도 있는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교복 한번 입어보라고 하는 건 제 기준엔 전혀 문제가 없는데 그건 또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모르는 파렴치?는 아닌 것 같고 변태적인 행동으로 보고 무례하고 대응하고 있고요.
2014.11.02 10:35
보기드문,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중의 하나였어요
2014.11.02 12:33
2014.11.02 13:33
2007년이면 참여정부 말기니까 아직 방송에서 토론프로, 교양예능 등이 활발한 때였던 것 같아요. 내놓고 토론을 하니 세대별 가치관의 충돌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 자체로 민주적인 분위기였다 싶고. 지금의 격세지감은 그때의 사회문화적 자양분 덕이 아닌가 해요. 이젠 '느낌표' 찍던 엠비씨에서 교양국이 해체됐더군요. 백분토론에서 배출한 많은 스타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2014.11.02 15:06
강호동이 신해철 같은 사고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하고 별개로 저런 극성적인 반응은 어느 정도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 무릎팍 도사 자체가 원래는 꽁트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호동이 굳이 자기 자신을 '강호동' 이 아니라 '무릎팍 도사'라고 지칭하는 게, 과장스러운 꽁트 캐릭터와 현실의 강호동 사이의 구분을 두려는 그런 의도였지요. 원래 무릎팍 도사의 컨셉은 꽁트 속에 실제 인물(최민수든 신해철이든 이경규든)이 들어와서, 무릎팍 도사와 건방진 도사라는 과장스러운 캐릭터와 대담을 하는 뭐 그런 컨셉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전 차라리 저 무렵의 무릎팍 도사가 더 낫더라고요. 나중에 가서는 그냥 게스트한테 맞춰주는 토크 쇼로 변했지만 저때는 최민수나 신해철 같은 게스트를 불러다 놓고 그들의 솔직한 얘기를,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색다른 프로그램이었지요. 저기에서 강호동이 맡은 역할, 굉장히 유치하고 섬세하지 못하고 무례하지만 어느 정도는 주류 사회의 시선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그런 연출을 위한 의도적인 악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4.11.02 15:17
2014.11.02 16:55
2014.11.02 16:25
강호동의 당시 캐릭터는 일종의 범퍼 역할이었다는걸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신해철편은 박진영편과 더불어 참 재미있게 봤었네요.
뻔하게 유명인사 모셔놓고 뻔한 토크를 하는게 아니라 '문제적 인간'을 여과없이 드러내어 보수적 편견이나 기류와 대비시키며 발생되는 긴장감을 강호동이 적절히 완충시켜준게 대중적으로 흥했던 거였죠.
2014.11.02 19:31
강호동은 제가 싫어하는 촌스러운 사고방식의 전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