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30 00:07
- 2003년작이구요. 런닝타임은 1시간 30분이구요.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
(보시다시피 영어 제목은 '하이 텐션'인데요. 어딜 보면 또 'X-Tension'이라고도 적혀 있고 그렇네요. 제목마다 런닝타임도 조금씩 달라요.)
- 사람 없는 깊은 숲 속에서 큰 상처를 입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여성의 모습을 한참 보여주다가... 암튼 그 여성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대학 동기 겸 절친과 차를 타고 절친의 집으로 가고 있어요. 주말 동안 빡세게 시험 공부를 할 계획... 인가 본데 이틀간 조용히 공부할 곳을 찾아서 몇 시간을 차로 달리다니 좀 괴상하군요.
암튼 그 곳에서 친구 아빠, 엄마, 어린 남동생까지 만나 환대를 받고 잠자리에 들 시간인데요. 사실 우리 주인공은 친구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샤워하는 걸 훔쳐 보고선 혼자 자위를 해요. 그것도 꽤 한참을 하는데, 그때 도입부에 잠깐 나와서 사람 머리통을 내다버리는 장면을 연출했던 정체불명 살인마가 이 집에 도착하고. 가족들을 하나씩 도륙하기 시작하는데 주인공은 운 좋게도 그 살인마에게 존재를 들키지 않았네요.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은 당연히 주인공과 그 살인마의 숨막히는 숨바꼭질이...
(그들의 행복했던 시절... 이 생각보다 좀 깁니다. 20여분 정도? 그래도 심심하지 않게 불길한 장면들 넣어가며 관객들 배려해 주고요.)
- 21년 전의 저도 호러를 좋아했어요. 이것저것 열심히 챙겨보는 편이었는데요. 문제는 21년 전의 저도 고어는 싫어했다는 겁니다. ㅋㅋㅋ 그래서 사람들 평 보고선 쫄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21년이 흘렀네요. 세월아...
근데 어쨌든 워낙 유명했던 영화니까, 언젠간 보기는 해야겠지? 하고 찜만 해놓았다가 '왓챠 찜 숫자 좀 줄이자!'라는 생각으로 큰 맘 먹고 봤습니다. 그랬는데요.
(엔딩까지 다 보고 나서 이 짤을 보면 좀 어색한 장면인데요. 애초에 각본이 그렇게 섬세한 물건은 못 됩니다. ㅋㅋ)
- 일단 그 고어에 대한 부분은 생각보단 견딜만 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 봤음 멘탈이 갈려 나갔겠지만 그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런 고어도 보고, 저런 고어도 구경하다 보니 제게 내성이 좀 생긴 거겠죠.
그리고 단순하게 고어만 갖고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었어요. 고어에 덧붙여서 굉장히 가차 없는, 그러니까 질질 끌고 이런 거 없이 걍 단숨에 챱챱챱(...) 하는 스타일로 연출을 해대니 지금 봐도 임팩트는 상당하더군요.
덧붙여서 긴장감 유지를 꽤 잘 해낸 영화입니다. 살인마가 굉장히 속도감 있는 분(...)이어서 주인공도 쉴 틈이 없고. 계속 새로운 상황으로 전환해가며 쉴 틈 없이 결말까지 우다다 달리더라구요. 20년이 넘게 살아 남으며 현역으로 활동할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네요.
(정체불명의 살인마! 당연히 맷집 쩔고 힘도 어엄청 셉니다.)
- 다만 그 시절 영화다운 무신경함이랄까... 위악적이랄까... 그런 부분들이 2024년에 이걸 즐겁게(??) 보는 데 좀 방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지라도 동성애에 대해 좀 부정적인 인상을 풍기는 부분이 있죠. 또 지나치게 센 거, 더 센 거!!! 에 집착하느라 사람 신체를 너무 무자비하게 다룬다는 느낌도 좀 들구요. (바로 전에 나름 B급 스플래터 무비라는 걸 봤는데도 이 영화가 훨씬 더 거슬렸습니다. ㅋㅋ) 특히나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다 평범하게 무력하고 선량한 사람들 뿐이어서 더 그래요. 호러판이 아무리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는 업계라지만 그래도 희생자들을 조금은 존중해주든가, 아님 마구 죽어 나가도 별 부담이 없는 캐릭터로 그려주든가... 하는 게 그 동네의 아름다운 전통인데 말입니다. 하하(...)
(주인공 배우님 비주얼이 꽤 멋진 것도 영화를 심심하지 않게 보는 데 공헌을 했습니다. 뭐랄까, 좀 튼튼하고 다부진 스타일 미인이더라구요. 이후 활동에서의 비주얼은 모르겠구요... 아직도 현역이시죠.)
- 덧붙여서 각본도 뭐랄까. 잘 썼다고 말하긴 많이 난감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살인마와 주인공이 숨바꼭질하는 장면들은 거의 괜찮거든요. 근데 '이야기'란 게 흘러가는 부분들이 되게 엉성합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도 뭐 대애충 '이야기'의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정도구요. 막판을 위해 준비한 야심찬 반전은 시작하자마자 바로 눈치를 채게 만들어놔서 별 감흥이 없고. 또 그게 되게 앞뒤가 안 맞습니다. ㅋㅋㅋ 아무리 작가님 편에 서서 머리를 굴려봐도 절대로 해결 안 되는 장면들이 여럿 있어요. 그래도 그게 2003년에는 그럭저럭 먹혔겠지만 2024년에는... 이게 올해 영화였다면 정말 어림도 없이 욕만 먹었을 겁니다. ㅋㅋ
(빨간 물감!! 빨간 물감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 그러니까 피칠갑 난도질 신체 해체류의 호러 무비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썩 괜찮은 영화일 수 있습니다. 특히 구체적으로 기억에 남을만한 호러 장면 몇 개만 있으면 다른 건 뭐 관대하게 봐 줄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 그렇죠. 그래서 당시에도 비평가들 평은 별로 안 좋았지만 열성 팬들이 만들어져서 영화도 히트하고, 감독님 커리어도 길게 이어갔던 거겠구요.
하지만 장르 불문하고 일단 말은 되는 이야기를 원한다든가, 보고 나서 뭐 하나라도 마음 속에 남는 이야기를 선호한다든가... 결정적으로 앞서 말한 그런 '무신경함'에 예민하신 분들이라면 굳이 21년의 세월을 넘어 재생 버튼을 눌러 볼만한 가치는 없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심심하지 않게 잘 봤지만 제 기준으로 이 감독의 영화 중 최고는 2019년에 나온 '크롤'이 아니었나 싶네요. 뭐 그렇습니다.
+ 20세기말 한국인들에게도 몹시 사랑 받았던, 영화 내용과 참 안 어울리는 노래 하나가 나오죠.
근데 전 이 노래를 몇 년에 한 번 들을 때마다 프랑스 노래로 머릿 속 지식이 조작되어 버리는 병이 있습니다. ㅋㅋ
아마 '귀여운 반항아' 때문이겠죠.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살인마가 나타나 문을 두드리고, 마침 일어나 있던 친구 아빠가 뉘시오~ 하고 나갔다가 다짜고짜 면도칼에 얼굴과 목을 베여 피흘리며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데요. 느긋하게 쫓아 온 살인마가 계단 난간 사이로 아빠 머리를 집어 넣고 커다란 서랍장을 콱! 하고 밀어서 목과 머리를 분리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큰 소리가 나자 자던 엄마가 일어나 아랫층으로 내려갔다가 비명 지를 상황을 당하구요.
이때 주인공은 눈을 떴는데, 살인마가 자신에게 올까봐 자기가 있던 손님방에서 자기 흔적을 다 지우고 침대 밑에 숨어요. 살인마는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주인공을 못 찾고 옆방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향해 가죠.
주인공은 경찰에 신고를 해보려 하지만 2003년인데도 핸드폰 하나 없는 관계로 선이 없는 집 전화기를 붙들고 쌩쑈를 하다가 옆방에서 나온 살인마에게 들킬 뻔 하는데... 의외로(?) 안 죽고 그 방까지 올라와 무선 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던 그 집 엄마 덕에 안 들키고 넘어갑니다. 물론 엄마는 목의 절반이 잘려서 사망... 하는데 숨어 있던 곳에서 나온 주인공을 붙들고 "왜... 왜..." 라는 유언을 남기네요.
마침 그때까지 방에 숨어 있던 그 집 어린 아들래미가 뛰쳐나가는 바람에 살인마는 갸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들리는 샷건 소리로 아들도 사망. 그 틈을 타서 주인공은 어찌된 일인지 안 죽고 그냥 재갈 물려진 채로 묶여 있는 절친을 구해보려 하지만 강철로 된 재갈과 사실 때문에 실패하는데요. 절친을 데리고 집을 떠나는 살인마의 차에 몰래 올라타서 함께 길을 갑니다.
그 다음엔 살인마가 주유소에 들려서 기름을 넣는 동안 후다닥 달려가서 점원에게 신고를 부탁해 보지만 그때 바로 살인마가 나타나고. 어찌저찌 하다가 점원도 살인마의 도끼질에 사망. 주인공은 또 숨바꼭질을 하지만 여전히 전혀 안 들키고 숨는 데 성공하고. 살인마가 차를 타러 가는 사이에 경찰서에 전화해서 신고는 하는데 이 곳이 어디인지 설명을 못 해서 대충 끊고 떠나 버린 살인마를 주유소에 있던 직원 차를 타고 쫓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눈치 챘는지 차와 함께 숨었다가 확 나타난 살인마에게 들이 받히고 차가 전복되어 부상을 입네요. 하지만 또 다시 술래잡기(...)에 성공하고, 결국 살인마 처단에 성공해요. 장하다 주인공!!! 이긴 한데. 그러고 돌아가서 절친의 포박을 풀어주는데 이 녀석 반응이 이상합니다. 그러다 재갈까지 풀어주니 이 놈이 주인공을 쳐다보고 소리를 지르... 려는 순간. 장면이 바뀌며 주인공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이 편의점 cctv를 돌려보는 게 나와요. 그리고 뭐 당연히도, 점원을 도끼로 찍어 죽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사실 미치광이 살인마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까지의 피칠갑 난리들은 쭉 주인공이 한 짓이었던 거죠. 다만 의도적인 건 아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아주 크게 있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ㅋㅋ
그 뒤야 별 거 없죠 뭐. 이제 주인공의 자리는 절친이 차지했구요. 또 다시 술래잡기, 피칠갑 난도질이 한참 이어진 후에 절친이 승리. 주인공은 죽지는 않고 재판 받은 후에 아마도 정신병원에 가게될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서, 경찰서 매직 미러 반대편임에도 절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원래 주인공님의 모습으로 끝입니다.
2024.06.30 00:44
2024.06.30 15:15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강한 고어는 아닌데 말입니다. 하긴 21년이니... ㅋㅋ
2024.06.30 13:03
오랜만에 제가 본 영화글을 올리셔서 오랜만에 댓글을 다네요. ㅋㅋ 이것도 2000년대초 반전영화 추천목록에 종종 보였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봤을 당시에는 수위도 그렇고 반전도 그렇고 하여간 임팩트 하나는 강렬해서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감독님 작품은 언급하신 '크롤'도 괜찮았지만 저는 넷플 오리지널로 나왔던 멜라니 로랑 주연의 'O2'가 개인적으로 더 재밌었던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미녀배우 주연의 호러를 추구(?)하는 감독이신듯? ㅋㅋ
세실 드 프랑스는 프랑스 배우가 이름이 국적이네? 했는데 벨기에 출신이셨더군요.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에서 처음보고 반해서 출연작들 열심히 찾아봤었어요.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타는 소년'에서 제일 좋았었네요.
2024.06.30 15:21
이 영화의 반전이 추천 목록에 오를 정도였다니 그 시절은 참 관대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요즘 기준으로 보면 논리적으로 구멍이 너무 많은 반전인데요.
말씀대로 임팩트는 지금 봐도 꽤 있는 수준이고 보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았으니 깎아 내릴 생각은 없지만, 뭔가 구멍 투성이 줄거리를 에너지와 긴장감으로 돌파해버리는 식의 영화였네요. 뭐 그것도 분명히 능력이고 장점이겠습니다만. 'O2'는 저도 재밌게 봤어요. 뒤져보면 듀게에 글도 있을 텐데... 근데 그 영화도 이 영화처럼 굉장히 구멍 투성이 스토리를 긴장감으로 뚫고 나가는 경우였죠. 감독님 특성인가 봐요. ㅋㅋㅋ
아 맞아요. ㅋㅋㅋ 저도 이름 보고 똑같은 생각 하고서 검색해 본 후에 '왜 프랑스인이 아닌 건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2024.06.30 14:31
그 시절 이 영화를 필두로 "New French Extremity"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고어 영화들이 인사이드 프론티어 마터스 등등이었던가요
저도 당시에 호러팬이긴 했지만 고어 역량(?)은 부족했어서 엄청 최근에서야 이 영화를 보긴 했습니다ㅎㅎㅎ
말씀하신 크롤이나 무려 3D로 고어 난장판을 벌인 피라냐도 전 좋게 봐서 이 영화도 뒤늦게 찾아볼 마음이 들긴 했는데.. 나머지 프렌치 익스트리미티 영화들은 엄두가 잘 안납니다ㅎㅎ
인사이드 정도 시도해봤는데 고어 장면은 손으로 가리고 본 정도...ㅎ 마터스는 엄두가 안나서 블로그글로 감상을 대체...ㅎㅎ
언뜻 기억에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도 반전으로 유명했던 것 같은데, 워낙에 구성이 막 치밀하지는 않은 면도 있고 요새 넘치는 장르영화에서는 이런 식의 반전이 좀 흔해졌죠ㅎㅎ 말씀대로 따지고 보면 말이 안되는 부분도 꽤 있고요ㅎ
2024.06.30 15:28
이제 언급하신 영화들 중에 '프론티어' 하나 빼고 다 봤습니다. ㅋㅋㅋ 호기심에 검색을 해서 스포일러까지 다 봤는데... 뭐 굳이 안 봐도 될 것 같구요.
'인사이드'가 이 영화보다 전 훨씬 보기 힘들었어요. 이 영화는 참 화려하게(?) 고어질을 하긴 하는데 워낙 과장이 되어서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더라구요. 반면에 '인사이드'의 고어는 워낙 실감나는 성격의 것들이 많아서 화려함(??)은 부족해도 견디기 힘들었네요.
세월이 흐를 수록 관객들이 점점 더 엄격해지니 작가들도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장르물 쓰는 사람들은요. 80~90년대 같았음 우왕 짱이야! 대박이야!! 했을 반전들을 요즘 관객들은 다 씹고 뜯고 맛보고 분석하며 비판해대니... ㅋㅋ
당시 제한상영가, 사실상 상영불가 등급을 받았던 영화죠. 보도가 있었어서 기억이... 쏘우정도 고어도 1편으로 보고 말아서 이런 영화는 저와는 인연이 없는걸로...(...)